단일 국가 안에서 치르는 전쟁을 내전(Civil War)이라고 한다. 노예해방전쟁이라 나중에 치켜세우는 미국 남북전쟁도 'American Civil War'라 부르는 이유다. 내전이란 동족상잔인 한국전과 베트남전의 참혹상을 전 세계에 생생히 전한 대표적 사진 두 장이 있다. 폭격으로 엿가락처럼 뒤엉킨 대동강 철교 위의 피란민 행렬과 생화학무기인 네이팜탄의 불길에 휩싸인 벌거벗은 어린 소녀가 비명을 지르며 내달리는 장면이다. 공교롭게도 AP통신 기자들에게 의해 포착돼 1951년과 1972년 풀리처상을 수상했다.
'베트남'보다는 '월남'이 기성세대에겐 아직 더 입에 익숙한 표현이지 싶다. 지리상 멀리 떨어진 베트남이지만 그만큼 우리 현대사와 함께해 온 애환이 서린 나라다. 파월장병으로 통칭되는 월남전 참전에서부터 자유를 찾아 말 그대로 일엽편주에 몸을 맡기고 망망대해를 떠돌던 '보트피플'(Boat People)을 받아들인 곳도 우리나라이기 때문이다.
베트남전 아픔을 담고 있는 지역으로 부산이 둘째가라면 서럽다. 북항재개발 지역 내 3부두는 파월장병 환송장이었다. 중·고교생들이 맹호부대, 백마부대가를 부르고 태극기를 흔들며 무운장구를 빌었다. 전쟁 후 바다를 표류하던 난민들에게 임시거처를 제공하기도 했다. 1977년 9월 15일 베트남 난민수용소가 지금의 센텀시티 내 나루공원과 영화의전당 자리에 들어서 1993년 2월 8일 공식적으로 문을 닫기까지 1300여 명의 난민을 보살폈다.
베트남전에 우리만 참전한 게 아니다. 북한의 공식적인 부인에도 불구하고 참전 사실이 2000년 4월 드러났다. 북한 고위층이 베트남 방문 일정으로 북한군 전사자 위령탑과 묘지를 찾은 사실이 공개되면서다. 북한은 공군 공병 심리전 요원들을 파병한 것으로 알려졌다. 먼 이국땅에서조차 우리끼리 총부리를 겨눈 셈이다.
4월 30일은 베트남전 종전일이다. 1975년 오늘 사이공(현 호찌민) 미국 대사관 옥상에서 헬기로 부리나케 퇴각하는 미국인 피란행렬이 있은 지 꼭 40년이 된다. 조정래는 소설 '정글만리'에서 세계에서 유능하고 독한 세 민족으로 유대인과 함께 우리 민족, 베트남인을 들었다. 분단과 내전의 원인 제공자인 일본과 미국이 더욱 굳건히 손을 맞잡는 형국이다. 북의 오판을 부른 한 요인인 애치슨 라인이 연상되는 요동치는 주변 정세다.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안기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