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경제를 책임진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요즘 벙어리 냉가슴 앓는 심정일 거다. 자신만의 경기회복 비책을 써보지도 못하게 생겼으니 오죽할까. 기업인 특별사면이다. "기업인에게 너무 심한 법 집행은 경제살리기 관점에서 도움이 안 된다"고 특사 전도사를 자임한 그였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경제위기가 심각하니 기업인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이렇게 무르익던 지난해 12월 정부 여당 내 특사 분위기가 '특' 자도 꺼내지 못할 정도로 돌변했으니.
공휴일인 어린이날 갑작스럽게 소집된 '특별사면제도 개선 관계기관회의'는 이를 웅변한다. 국민들도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한 광경이지만 마치 시급을 다투는 사안이라도 되는 양 모였다. 전날인 4일 박근혜 대통령의 하교(下敎)를 지체없이 받드는 모양새를 연출하는 관료들이다. 박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투명한 사면권 행사 개선방안'을 주문했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은 성 전 회장이 이전 정권에서 두 차례 사면을 받지 않았으면 애당초 벌어질 일이 아니란 시각이다. 불과 반 년 만에 사면권이 경제를 살릴 천사에서 정치사회를 어지럽히는 마귀로 둔갑했다. 지켜보는 국민들로선 뜨악하다는 말이 부족할 지경이다.
현 정부는 국민들이 까마귀 고기를 먹는 사람으로 아는 모양이다. 아니면 자신들이 까마귀 고기를 먹고 국사를 논하고 있든지.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어제 이랬다 오늘 이랬다 사면권을 자반 뒤집기 하듯 할 수 있는가. 박 대통령은 자신의 뜻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초기에 칼로 무를 자르듯 선을 긋는 통치 스타일이다. 지난해 '상하이 개헌' 발언으로 김무성 대표의 모양새가 우습게 된 것도 그 한 예다. 수시로 각료는 물론이고 여당 지도부에 노골적 경고음을 보냈다. 그런 대통령이 '기업인 사면'엔 가만히 있다 이제 와서 색안경을 끼고 보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사실 대통령의 특별사면권 행사에 호의적인 국민들은 별로 없다. 그동안 경제살리기다, 국민화합이다 하는 명분으로 비리의 대기업 총수나 정치인, 정권 실세들을 깨끗한 인물로 화장시키는 통치 도구로 비쳤다. 정권 말기 단행된 2013년 1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특사만 보자. 당대표 경선에 금품선거를 벌인 박희태 전 국회의장, 최측근 최시종 전 방송통신위원장에다 김효재 정무수석 등 청와대 핵심참모 3명의 멍에를 벗겼다. 누가 봐도 '보은' 사면이었다.
이명박 정부만이 아니라 전 정권 모두 특사를 마치 호주머니 속 공깃돌 다루듯 사용했다. 어떤 경우엔 여야 정략적 담합거리가 되기도 했다. 홍준표 경남지사와 이명박 전 대통령이 그런 경우다. 두 사람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광복절 특사' 동기다. 앞서 김대중과 이회창의 여야 영수회담에서 '대화와 협력의 큰 정치'를 표방하면서도 은밀히 물밑 거래한 결과다. 두 사람 다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 배지를 날렸다 이로써 기사회생해 대통령도 되고 도지사도 됐다.
특사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이를 남용하는 게 문제다. 비리를 저지른 대통령의 측근이나 정치인의 최후 구제용으로, 정경유착의 주요 고리용으로 전락한 게 현실이다. 이를 바로잡겠다는데 누가 반대하겠나.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이를 실행하면 될 일이다. '기업인 사면' 말이 나올 때 가만 있다 전·현직 비서실장을 비롯한 측근들의 비리 의혹 사건이 나오자 문제 제기자의 사면 전력을 들어 사면제에 원죄를 돌리는 듯한 태도는 달을 가리키는 데 손을 보는 격이다.
현실적으로 사면제 개선도 쉽지 않다. 헌법 제79조에 부여된 대통령 사면권 제약엔 한계가 있다. 그동안 야당의 사면법 개정안에 여당이 위헌소지를 들어 반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참여정부 말기인 2007년 12월 사면법 제정 이후 처음으로 개정됐다. 사면심사위원회를 둬 권한 남용을 막도록 했지만 이명박 정부의 사면으로 무용지물임이 드러났다. 결국 제도가 아니라 사면권자의 의중이 열쇠다.
박 대통령은 길을 두고 뫼로 갈 게 아니다. 자체 정치·사회 개혁을 원한다면 '성완종 리스트'의 검찰 수사에 승부수를 걸어야 한다. 자신의 측근 실세라도 비리 혐의가 있으면 재판에 세우겠다는 용단이 요구된다. 사면제 손질도 따져보면 측근 챙기기를 더는 하지 않겠다는 다짐 아닌가. 검찰은 자신의 손아귀에 있는 준사법기관이다. 검찰이 의혹 대상자들을 탈탈 털어 옥석을 가린 뒤 돌이 나오면 사법부에 최종 판단을 맡기는 것만으로 이런 메시지는 십분 전달된다.
대통령이 사면이 아니라 검찰수사에 정치·사회 개혁을 걸어야 하는 이유다. 이런 통치권자가 내미는 사면 대상자를 국민들이 비판하겠는가. 오히려 짠한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검찰수사는 흐지부지하면서 사면권 손질에 부산하다면 제2의 성완종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수사 결과가 사면 개선 의지의 리트머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