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이름의 대회가 연중 열릴 정도로 마라톤이 대중스포츠로 자리 잡았지만 1960, 70년대엔 그렇지 못했다. 일반인은 범접할 수 없는 극한 운동쯤으로 여겨졌다. 마라톤 하면 고작 베를린올림픽에 우승한 손기정 선수와 '맨발의 왕' 아베베가 많이 회자되던 시절이었다. 월계관을 쓴 교과서 속 손 선수 사진은 식민 청년의 쾌거이자 민족 자부심이었다. 신발도 신지 않고 맨발로 42.195㎞를 달려 우승한 1960년 로마올림픽을 시작으로 최초 올림픽 마라톤 2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에디오피아 청년의 활약상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페르시아전쟁에서 아테네가 승전했다는 소식을 알리고 숨진 전령사를 기리기 위해 나온 마라톤은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이라 할 만큼 힘든 운동이다. 서구 사회에서 마라톤이 주목받게 된 데는 이탈리아 출신 마라토너의 '불굴의 투혼'이 큰 역할을 했다. 도란도 피에트리다. 1908년 런던올림픽에서 1위로 달리던 그가 결승점 앞에서 다섯 차례나 쓰러졌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주위의 부축을 받아 끝내 골인점을 밟았다. 비록 우승은 날렸지만 당시 알렉산더 여왕이 특별제작한 골드컵을 수여하며 그의 투혼을 높이 샀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로 유명한 미국 대중음악작곡가 어빙 벌린이 '도란도'란 노래를 지어 헌정하면서 마라톤 붐에 기여했다.
특별한 기술을 요하지 않고 언제든 혼자 할 수 있는 마라톤은 오늘날 단순히 체력 단련만이 아닌 자기 극복 운동이기도 하다. "초원이 다리는?", "백만 불짜리 다리!" 대사로 많은 화제를 뿌린 영화 '말아톤'이 그 한 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자폐아를 둔 어머니가 아들이 좋아하는 달리기를 시키면서 장애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실제 주인공의 그림일기에 '내일의 할 일-말아톤'이라 적어놓은 것을 그대로 제목으로 사용한 이 영화는 2005년 국내 영화상을 휩쓸다시피 했다.
멀리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에서 92세 할머니가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해 최고령자로 신기록을 세웠다는 소식이다. 장장 7시간24분36초를 쉼없이 달려 일궈낸 성취다. 아베베는 "가장 강한 적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말할 만큼 마라톤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구순의 할머니는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자신을 이긴 셈이다. 산만 높다 탓하지 않고 산에 직접 오른 결과다. 우리는 매사 산 타령만 하고 있지 않는지 되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