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보훈의 달'이다. 선열들의 나라사랑과 희생정신을 본받고 기리자는 뜻에서다. 그런데 올해는 모양이 영 사납게 되고 있다. 멀리 중동에서 날아온 메르스 공포로 6일 현충일 추념식마저 엉망이 됐다. 1985년 문을 연 국립대전현충원과 2001년 개원한 국립영천호국원은 처음으로 행사를 취소하고 참배객들의 방문 자제를 요청했다. 그나마 국립서울현충원의 추념식이 그대로 치러진 게 위안거리라 하겠다.
몹시 어수선한 가운데 보훈의 달을 맞았다. 사실 늘 일상에 쫓기고 대형사고로 점철되는 우리 사회라 6월이라고 각별히 보훈의 뜻을 되새긴다는 게 말과는 달리 그다지 쉽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렇지만 여느 국경일과 달리 조기를 걸면서, 또는 추념 사이렌에 맞춰 묵념하면서, 아니면 TV로 추념식 행사를 대하면서 다소 숙연해지게 되는 법이다. 이 평온하고 화목한 하루 일상이 누구 덕인지 한 번쯤 되새기면서.
반쪽 추념식이 말해주듯 올해는 예년보다 더 보훈정신을 찾기 어렵다. 메르스 공황을 자초한 데서 보듯 기본조차 갖춰지지 않은 정부라서 그런지 보훈 사업도 딱 그만큼 수준인 것 같다.
경남 산청군 단성면에 조성된 국립산청호국원의 사정은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알게 될까봐 민망할 지경이다. 국가 유공자들을 안치하기 위해 542억 원의 돈을 들여 완공하고도 방치돼 있다. 지난 4월 2일 국무총리까지 참석해 준공식까지 가졌지만 진입로가 제대로 확보되지 못해서다. 일반 시설도 아니고 국가 유공자 보훈시설을 이렇게 허투루 지어도 되는 것인가. 총리가 불법시설물 완공을 축하한 꼴이라니. 안치를 바라던 국가 유공자 유족들의 원성은 미뤄 짐작이 충분히 가능하다. 미국 따라하기 좋아하는 우리 위정자들이 65년 지난 한국전 전몰 용사의 유해 반환에 아직도 매달리는 자세에는 왜 눈을 감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외침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선열과 함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헌법적 가치를 실현시키는 데 공허한 이들은 민주인사들이다. 왕조적 세습독재국인 북한과는 달리 민주국가라는 자긍심과 함께 우리에게 이를 지켜야 할 이유를 더욱 뚜렷이 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최단기간에 달성한 나라로 세계의 주목받는 까닭이기도 하다. 하지만 4·19혁명 정신과 맥을 잇는 부마민주항쟁 평가 작업은 인색하기 그지 없다. '부마민주항쟁관련자 명예 회복 및 보상법'이 만들어졌지만 낮잠만 자고 있다. 출범한 지 7개월된 진상규명위에 전담조직도 인력도 태부족해 시간만 보내고 있다는 데 이르면 달리 할 말이 없다.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분들에 대한 예우가 이러해서야 누가 나라사랑하라고 가르칠 수 있겠는가. 이들을 기리고 합당한 예우를 하는 것 자체가 우리로선 실천적 교훈이기에 한 치의 소홀함도 있어선 안 된다. 보훈 정신 고취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우리는 이분들에 빚진 삶을 살고 있다. 이들의 뜻을 잊지 않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의무이자 소명이다. 보훈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선택 사양이 아니라 국가의 근간이다. 위기 시 이것은 더욱 빛을 발하는 법이다. 선진국치고 이를 소홀히 하는 나라가 없다는 건 모두가 아는 진리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 현충일 추념사에서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그 고귀한 뜻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의 자유와 번영은 이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면서. 현충일이면 우리가 늘 들어온 말이다. 메르스 탓도 있겠지만 올해는 이 말이 더욱 공허하게 들린다. 책속에만 존재하는 도덕경을 대하는 듯하다.
명색이 국무총리를 들러리쯤으로 만드는 얼치기 보훈행정, 부마민주항쟁정신을 훼손하는 시대역행적 보훈행정으로는 고귀한 뜻 계승은 빛 좋은 개살구나 마찬가지다. 공교롭게도 '보훈의 달'에 보이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행위는 희생·헌신과는 너무나 다르다. 개인의 입신영달이 최고의 가치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안중근 윤봉길 의사의 길보다는 이완용이 되길 권하는 사회다.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만해도 그렇다. 그는 일종의 두드러기 질환으로 군에 가지 않았다. 병무청의 신체검사에서 군면제 판정을 받은 6일 후 병원에서 '만성 담마진' 진단을 받는 신출귀몰한 수법으로. 애국지사가 되라는 것도 아니고 남들 다 가는 병역의무를 이렇게 벗었다. 앞서 이완구 전 총리도 석연찮게 평발로 군역을 면했다. 꼭 일 년 전 이맘때 정종섭 행자부 장관과 최양희 미래창조부 장관도 군복무기간에 박사과정을 거치거나 유학을 가는 수완을 발휘했다.
'보훈의 달', 우리 사회는 '역설의 달'이라 해야 일반인들의 이해가 쉬울 듯하다. 메르스 퇴치는 곧 되지 싶다. 하지만 이 역설은 좀체 우리 사회에서 사라질 것 같지 않아 솔직히 더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