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안철수 의원이 언론에 보도되는 횟수가 늘고 있다. 안 의원은 의사 출신임에도 지난번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정국에서조차 존재감을 보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에게 '새 정치'를 기대하던 사람들도 이제 정말 관심을 철회 중이었다. 그러나 이번 국정원 해킹사건에서 안 의원은 그의 전문성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마침 해킹 프로그램에 관여한 국정원 직원이 숨졌기에 이목이 더 쏠리는 국면이다. 야당은 이번 주부터 시작되는 국정원의 해킹 의혹 관련 국회 상임위원회 현안보고에서 청문회에 버금가는 철저한 조사를 벼르고 있다. 여당은 이를 '의혹 부풀리기'라며 맞대응하고 있다.
정치인은 모름지기 이슈에 강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슈를 주도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러한 활동을 통해 그가 생각하는 미래의 비전과 그만의 리더십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것이다. 이슈 투쟁에 약했던 그에게 이번 해킹정국은 그의 전문성을 돋보이게 하여 대중적 관심도를 결집할 기회인 것 같다. 마침 안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에서 구성한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공개 해킹 시연도 하면서 시선을 끌었다. 또한, 보안 기업에 국정원의 해킹 프로그램인 원거리통제시스템(RCS)을 탐지할 수 있는 백신 프로그램을 개발하자는 제안을 했다.
야당 의원으로서 그의 활동은 국민의 우려에 대한 응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개인 데이터를 통한 사생활 감시 문제는 정치인에게만 맡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는 사안이 너무 중요하고 대중인식은 너무 취약하기 때문이다.
과거 인터넷이 오늘날처럼 널리 사용되기 전에 사생활 보호 문제는 연예인이나 정치인 등 소수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요즘 디지털 개인 정보 침해는 모든 사람에게 치명적이다. 문제는 아직도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해킹·도청 당했을 때보다도 누군가가 자신의 서랍을 뒤졌을 때 더 흥분한다는 사실이다.
개인이 어떤 생각을 하고, 누구를 만나며, 어디에서 얼마나 돈을 쓰는지가 실시간으로 타인에게 알려진다고 생각해보라. 개인의 노트북과 휴대전화 그리고 SNS는 개인의 생명이나 재산의 안전과 완전히 동일한 의미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에게 휴대전화는 그 주인의 정체성과 동기화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라도 개인정보의 안전에 대한 주체성을 확립하는 일이 기본적인 권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런데 이 문제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국가는 기본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생성함으로써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범죄자나 탈세자를 잡기 위해, 그리고 빈틈없는 복지 혜택을 주기 위해서라도 늘 데이터를 수집해야 한다. 데이터에 근거한 과학적 정책이야말로 늘 우리가 주장해왔던 것이 아닌가? 그러니 국가의 데이터 수집 활동을 반드시 나쁘게만 해석할 수 없다. 그러나 동전의 양면처럼 해킹이나 도청 또는 감청은 우리의 일상을 흔들고 신뢰사회를 위협한다. '빅 브라더'의 어두운 공포가 함께 있다.
결국, 이 문제에서 관건은 개인의 인권 유지와 국가의 존재 유지라고 하는 모순적 가치를 어떻게 양립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런데 걸핏하면 극단의 정쟁으로만 치닫는 한국 정치가 이 문제를 풀 수 있을까? 평생 정치를 했던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도 말년에 정치야말로 '허업'이라고 했는데, 그 허업의 종사자들이 이를 풀 수 있을까?
나는 반드시 지켜야 할 준칙은 법으로 나타날지라도 이 법을 뒷받침하는 것으로서 신뢰의 문화를 만들고 각자가 내면화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날이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에 비해 법과 제도의 대응력은 너무 더딘 것도 안타깝기 때문이다.
나는 빅 브라더와 대비된 개념으로 '리틀 시스터'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형'으로 번역되어 사용되는 빅 브라더는, 조지 오웰의 소설 속에서 '텔레스크린'을 통해 곳곳을 감시하며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했다. 반면 리틀 시스터는 '작은 자매들'로 번역할 수 있겠다. 이들은 디지털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면서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디지털 감시의 필요성을 인정할지라도 개인의 자율성 신장·공동체의 연대성 보장 등 우리가 중요하게 간주해야 할 가치 유형을 공론화하고, 이를 지키는 사람들이다.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권을 두고 다투지 않는 사람들이다. 디지털 기술을 자본의 가치 증식이나 국가 유지에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시민의 창의력 증진의 과제와 조화를 이루도록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한국정보화진흥원 수석연구원·사회학 박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