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국제칼럼] 최해군 선생의 못다 부른 사부곡(思婦曲) /박창희

부산학 틀 세운 작가, 먼저 떠난 치매 부인에 남모를 思婦曲 남겨

진실한 지역문학으로 중앙과 승부하라 충고

  • 대기자 chpark@kookje.co.kr
  •  |   입력 : 2015-08-06 18:56:44
  •  |   본지 27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큰 어른 떠난 자리의 공허가 크다. 달 그림자가 표표히 허공에 흩어진다. 황망히 떠나보낸 임처럼 가슴 한구석이 먹먹하고 허전하다. 세상에 호상(好喪)은 없다던 한 시인의 말은 맞다. 가신 이가 남은 이들을 위로한다.

솔뫼 최해군. 1926~2015. 우리 나이로 아흔. 그래도 오래 사셨다는 말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해놓은 일과 해야 할 일, 풀어놓아야 할 이야기가 그만큼 많았음이다. 그의 생몰연도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고 부산의 지역사를 관류한다. 단순히 조류에 휩쓸리듯 흐른 게 아니라 노잡이로서, 개척자로서 흐름을 꿰뚫어냈다. 그가 한평생을 던져 일군 지역학의 텃밭에는 지금 '부산학'이 자라고 있다. 선생이 쓴 '부산포'(3권, 1985~87년), '부산의 맥'(2권, 1990년), '부산항'(1992년) 등 부산사 3부작은 누구도 접근 못한 부산에 대한 실체적 기록이다. 그는 올곧은 교육자였고 속 깊은 작가였으며 행동하는 향토사학자이자 시민운동가였다.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도 넘치거나 눈총받는 일은 하지 않았다.

선생은 천생 휴머니스트였다. 사람을 대하는 자세나 일을 처리하는 모습이 그랬다. 유유자적해 보이셨고 후덕한 표정 뒤엔 천진난만함을 감추고 있었다. 3년 전쯤이다. 그를 인터뷰하면서 뜻하지 않게 선생의 아픈 가족사 일단을 들추게 되었다. 선생은 "인생이 그런 거여. 나이 들면 외로워지고 아프면 서럽고…. 그렇게 강물처럼 흘러 바다가 되는 거여"라며 신선처럼 웃으셨다.

선생은 1990년 초부터 부산 연제구 거제현대아파트에서 부인 김기분(1928년 생) 씨와 함께 살았다. 부인은 15년 전부터 인지장애, 즉 치매를 앓았다. 게다가 선생의 막내딸(60)마저 오랜 병치레를 겪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뇌성마비를 앓아온 막내딸은 50대에 이르러 뇌졸중까지 겹쳐 지금도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아파트에 시간제 파출부가 출입했다지만, 부인의 수발과 딸 간호는 선생의 몫이었다. 선생은 어떤 모임에서도 이런 사정을 드러내거나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삶의 고해(苦海)를 혼자서 걸어갔다.

그 부인이 지난해 12월 말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선생도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했고,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양산의 요양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도 했다. 여기서도 선생은 펜을 놓지 않았다. 흐려지는 시력을 다잡고 손아귀의 힘을 모아 한 땀 한 땀 글을 썼다고 한다. 그동안 써놓은 일기와 단상 등을 모아 도서출판 해성에서 책으로 펴내기로 한 터였다. 선생이 꼭 넣어달라며 출판사에 편지로 보낸 육필 원고 중에 '그대 간 지 한 달'이란 시가 있었다.

'그대 간 지 한 달/ 이 방 저 방을 비워두고/ 영영 돌아오지 않을건가/ 비워진 방에는 찬바람만 채워지고 있네.…/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네./ 이 비로 그대 무덤의 잔디는 뿌리를 내릴 것이고/ 새싹도 돋아날 것이네./ 이내도 쉬이 이 자리 뜨야 할 것이고/ 그대 곁으로 갈 것이네./ 기다려 다오. 그대와 이내의 그날들,/ 그날들을 그리며 기다려 다오.'(2015. 1. 30.)

절절한 '사부곡(思婦曲)'이다. 68년간을 해로하고 훌쩍 떠나버린 부인이 야속했던가. 오랫동안 병수발시키며 괴롭힌 부인 곁으로 가고 싶다고 한 건 삶의 초연인가 그리움인가. 휴머니즘이 인간에 대한 애틋함의 표출, 인간성의 회복이라고 할때 선생은 그 고갱이에 다가가 있다. 선생은 아픈 막내딸이 신나게 노래 부르는 모습을 단 한 번이라도 부인과 함께 볼 수 있기를 꿈꾸었고, 그 꿈이 현실이 되길 소망했다. 그게 꿈으로 나타나 부인을 깨울라치면 부인은 곁에 없었다.

선생의 내면에 감춰진 가족애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6일 장례식 하관 때 후배 작가가 선생이 쓴 위의 '사부곡'을 낭송했다니 가슴이 더욱 짠하다.

선생은 마지막까지 작가였다. 그런 선생을 지역 문단에서 '문인장'으로 챙긴 것은 기꺼운 결정이다. 평소 드리운 그늘이 크고 넓었던 만큼 조문객이 많았고, 선생에 대한 후일담도 많이 오갔다고 한다. 장례다운 장례가 치러진 셈이다. 다만, 중앙 언론들이 선생의 부음을 아예 무시하거나 극히 가볍게 다룬 것은 지적해둘 부분이다. 잘 해봐야 지역작가라서 그런가.

부산작가회의가 내는 계간 '작가와 사회' 2014년 여름호에는 최해군 선생이 기고한 자전 산문이 실려 있는데, 거기에 이런 대목이 있다. "글은 인간 존재를 찾는 일이다… 작품은 시공을 초월해야 한다지만 진실한 작품은 생산된 원천(지역)에서 우러나야 곰삭을 수 있다." 지역문학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원로 작가의 충고다. 진실한 지역문학으로 중앙과 승부하라는 주문이다.

요산 김정한과 향파 이주홍의 뒤를 잇는 부산지역 현대문학 2세대를 대표한 큰 작가가 떠나갔다. 최해군 선생이 펼쳐놓은 부산학의 후속 작업과 함께 진실한 지역문학을 누가 어떻게 꽃피울지, 진지한 성찰과 고민이 시작돼야 할 시점이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에 하나 뿐인데…‘부산예대’ 내년 2월 문 닫는다
  2. 2해운대 벗어나 우리동네로…부산이 온통 극장이네요
  3. 3“능인선원 매각 협상 나서라” 국제신문 사활 건 총력투쟁
  4. 4[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5. 5‘반쪽’ 자갈치 축제…내홍에 창립멤버 어패류조합 빠졌다
  6. 6준비 덜 된 경찰시대…‘대국민 수사 실험’ 우려
  7. 7전재수 ‘되돌릴 수 없는 해양수도 기반 조성’ 선언
  8. 8아침기온 경남 7도, 부산 15도…2일부터 쌀쌀해진다
  9. 9부산중수청 문 여는데 아직 공사중…외부 출입통제도 어려워
  10. 10“가덕 공사비 증액 법 개정 앞서 정부 약속부터”(종합)
  1. 1‘교정시설 조성 지원 특별법’ 발의…부산구치소·교도소 통합 뒷받침
  2. 2부산 국힘 “보좌진 유죄 선고…전재수 시장, 시민에 사과해야”
  3. 3[속보]우크라 외무 “한국 중요해…외교적 오해 해결바라”
  4. 4국힘, 중수청 앞서 “범죄자 천국될 것” 여론전(종합)
  5. 5李 “김지용, 친윤 아닌 반윤 검사” 중수청장 청문 요청키로
  6. 6靑 “이 대통령 ‘불의의 사고’ 표현, 부상 장병 위로한 것…북한 면죄부 주려는 것 아냐”
  7. 7이 대통령, 김지용 중수청장 후보자 청문요청안 재가
  8. 8전국 교정시설 수용률 126%…윤상현 “형사사법개편 앞두고 교도소 과밀 방치”
  9. 9정동영 “DMZ 지뢰 사고, 불행한 일…평화공존 더 절실해져”
  10. 10李대통령 “우크라, 상대국 원수 거짓말쟁이 만들어…사과 거부시 추가 조치”
  1. 1“가덕 공사비 증액 법 개정 앞서 정부 약속부터”(종합)
  2. 2동래 플래그십 문 연 ‘르노’…미래차 R&D센터 내년 오픈
  3. 3북극 누빈 아라온호, 항로예측 기틀 마련
  4. 4신한은행 해킹 서버서 “‘중국어 AI 침투도구’ 흔적 발견”
  5. 5신한銀 2만5000명 고객정보 털렸다…당국 조사
  6. 6대선주조 부산 문화 앞장…‘부산국제록페스티벌’ 8년째 후원 행보
  7. 7BPA, 5번째 해외 물류거점 구축…베트남 사업 본궤도
  8. 8리사이클링·항만운영·담수화…부산 미래산업 이끌 혁신기술
  9. 9부산 연구개발 우수성과- 우수학술 부문
  10. 10주가지수- 2026년 10월 1일
  1. 1부산에 하나 뿐인데…‘부산예대’ 내년 2월 문 닫는다
  2. 2“능인선원 매각 협상 나서라” 국제신문 사활 건 총력투쟁
  3. 3‘반쪽’ 자갈치 축제…내홍에 창립멤버 어패류조합 빠졌다
  4. 4준비 덜 된 경찰시대…‘대국민 수사 실험’ 우려
  5. 5전재수 ‘되돌릴 수 없는 해양수도 기반 조성’ 선언
  6. 6아침기온 경남 7도, 부산 15도…2일부터 쌀쌀해진다
  7. 7부산중수청 문 여는데 아직 공사중…외부 출입통제도 어려워
  8. 8“기관장 인선, 유능하면 지역 불문…산은 유치 채널 총동원”
  9. 9법리 복잡한 지능범죄 급증…“공부해 수사할 엄두 안 난다”
  10. 10부산 동구, 돔구장 유치 협의체 출범
  1. 1송교창·최준용 빠진 KCC…‘루이스 킹’ 희망될까
  2. 2KLPGA 대회 처음 부산서 여는 HJ重… “지역과 상생할 것”
  3. 3메치고 쏘고…한국 유도·양궁 ‘금빛 데이’
  4. 4한국 여자 양궁 단체전 인도에 져 은메달…8연패 무산
  5. 5돌아온 금빛 주역들, 프로야구 막판 순위·타이틀 경쟁
  6. 6HJ중공업, 8∼11일 KLPGA 챔피언십 대회 주최…부산서 처음 열려
  7. 7해볼 만하다…女축구, 8년 만의 AG 메달 도전
  8. 8중원 황인범·투톱 변화…승리 축포 쏠까
  9. 9윤규성, 태권도 품새 금메달…한국 남자 개인전 3연패
  10. 10아시안게임 사격 남자 속사권총 우승…한국 25번째 金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인공지능 정렬’ 골든타임 놓치지 말라
자동화의 세상에서 지능화의 세계로
국제칼럼 [전체보기]
개헌 말하려면 헌법 준수부터
나림 이병주, 더 일찍 법(法)으로 통(通)했다
기고 [전체보기]
전문대학을 소개합니다
상어가 떠난 뒤, 북항에 남겨야 할 것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영산회상, 불교음악에서 풍류음악으로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히말라야의 경고
도청도설 [전체보기]
민원인(들)
AI 패권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공동선(Common Good)’으로서 간병 복지
직업병에 대한 자세, 무지와 고의 사이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지독한 집념이 세운 로컬 자산, 대한도기
사설 [전체보기]
생곡소각장 정치적 셈법보다 원칙대로 추진해야
알래스카 LNG, 협력하되 국익이 최우선이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청년기본법, 청년친화도시
인공지능(AI)과 인류 멸종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아트부산, 숫자 이후의 질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 오해와 진실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무(武)
의료 전문성이 병원 밖 나가는 길 열어야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