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일 오후 경남 통영시 산양읍 해상에서 요란한 선박 기관소리가 울려 퍼졌다. 경남도를 비롯해 통영해안경비안전서, 통영시, 거제시, 국립수산과학원, 수산자원연구소, 수산기술사업소 등 관련 기관이 참여한 '2015년 적조 대응 방재훈련'이었다. 앞서 이날 오전 경남도 적조대책위원회가 열렸다. 경남도는 황토 5만6000t을 확보하는 한편 전해수 황토살포기 6대, 중소형 황토살포기 11대, 적조경보기 16대 등 적조 방재 장비를 보강했다.

지난 2일 경남 연안에 올해 들어 첫 적조생물 출현주의보 발령에 이어 5일 경남 남해안에 적조주의보가 내려지자 경남도는 총력 방재체제에 돌입했다. 적조가 양식어장에 영향을 미치기 전에 전해수 황토살포기를 양식어장 부근에 배치했다. 전해수 황토살포기는 바닷물에 황토를 희석해 뿌리는 적조 대응 장비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적조는 '연례행사인 듯' 자식처럼 키워온 양식어류를 집단폐사로 몰고 갔다. 지난 17일 오전 경남 거제시 남부면 저구리 한 가두리양식장. 폐사한 참돔이 배를 드러낸 채 떠올라 양식장을 뒤덮고 있었다. 올해 들어 적조로 인한 첫 양식어류 피해다. 특히 양식어류 집단 폐사는 지난 13일 전남 고흥∼경남 거제 해역에 내렸던 적조주의보를 적조경보로 대체 발령한 지 불과 4일 만에 기습적으로 빚어졌다. 애지중지 키우던 어류를 잃은 양식 어민의 넋을 놓은 표정이 애달프다. 그 어민의 초점 잃은 시선을 따라 떠오르는 데자뷔는 적조에 관한 근본적인 반성을 요구한다.

우리나라 남해안에서 1967년 처음 적조가 보고된 이래 1980년대부터 적조 빈도가 두드러졌으며 특히 코클로디니움에 의한 유해성 적조는 1995년 764억 원이라는 기록적인 피해액을 기록하면서 매년 양식 어민을 괴롭히고 있다. 해갈이를 하듯 적조는 홀수해에 더 극성을 부리고 있지만, 뾰족한 해결책 없이 황토 살포와 선박을 이용한 적조띠 분산, 양식장 내 산소 공급기 가동이라는 대증요법에 의지하고 있다.

적조(red-tide)란 식물플랑크톤의 대량 번식으로 바닷물 색깔이 적색, 황색, 적갈색 등으로 변색하는 현상이다. 여름철에 적조가 창궐하는 것은 해류 및 조류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일조량, 수온, 염분, 영양염류 등 적조생물의 대량 번식에 알맞은 해양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8~10월 대규모 유해성 적조를 발생케하는 조건은 높은 수온 등 적조생물의 성장에 알맞은 환경과 적조 플랑크톤의 광합성에 필요한 풍부한 일조량, 장마·폭우 등으로 인한 육지 영양염류의 연안 대량 유입 등이다.

적조생물인 코클로디니움은 독성은 없으나, 다량의 점액질을 분비한다. 이 점액질이 어류 아가미 세포의 기능을 떨어트려 산소 공급을 원활하지 못하게 하니 어류는 질식 상태에서 폐사할 수밖에 없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이 적조생물에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황토가 꼽힌다. 응집력이 강한 황토는 적조생물에 달라붙어 바다 밑으로 가라앉으며 사멸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이 매년 이뤄지는 적조와 황토의 악순환이다.

이는 지난 19일 적조 피해 현장을 찾은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의 모습에서도 확인된다. 유 장관은 이날 적조 피해를 본 어민을 위로하고 적조 방재에 최선을 다해달라는 당부를 한 뒤 인증 사진을 찍듯이 황토를 살포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본격적인 적조 피해가 발생한 지 20년, 왜 적조 방재에는 황토뿐이어야 하는가? 현재 남해안 경남 해역 양식 면적만 420여 ha. 이 양식장서 자라고 있는 참돔 우럭 농어 등 어류는 줄잡아 2억5000만 마리에 달한다. 이 금싸라기 같은 어류가 지금 적조 내습에 풍전등화의 위기 상황에 놓였다. 남해 해역의 수온이 유해 적조생물이 잘 번식할 수 있는 24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맑은 날씨가 이어져 일사량이 늘어나니 적조생물인 코클로디니움이 성장하기 좋은 여건이 골고루 갖춰진 셈이다. 게다가 남해안 일대는 바닷물 흐름이 잔잔한 소조기에 접어들었다. 오는 25일까지 이어지는 소조기엔 바닷물이 정체되므로 적조생물의 고밀도화 가능성이 크고, 그만큼 양식어류 집단폐사 우려가 커진다. 그나마 예보된 비가 구세주 노릇을 해주길 바라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적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적조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고, 적조 발생 때 신속한 정보 수집, 통보 및 대응에 주력했다면 이제 적조 퇴치에 초점을 맞춘 마스터 플랜이 필요하다. 정치 개혁을 위한 정책 구상이나 경제 개발을 위한 연차 계획처럼. 적조 발생을 원천 차단하지 못한다면 확산을 최대한 억제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고 해마다 되풀이하는 집단폐사를 막아 '적조와 황토' 이야기를 먼 옛날 전설처럼 떠올릴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해양수산부 장관, 적조 퇴치의 주춧돌을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 해양수산부 장관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