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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한국, 진짜 정신 차려야 한다" /박창희

재일동포 서용달 교수, 부산서 '주체성' 강조…한국 곳곳서 위기 징후

일본 저의 정확히 파악, 한일 신협력 조약 역설

  • 국제신문
  • 대기자 chpark@kookje.co.kr
  •  |  입력 : 2015-10-29 18:33:57
  •  |  본지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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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학자는 조국을 걱정했다. 일본 생활 73년. 우여곡절 끝에 이국 땅에서 교수가 되었으나 일본은 여전히 낯선 나라다. 일본에 살면서 한시도 한국인임을 망각한 적이 없다. 한국을 생각하면 북한(일본에선 '북조선'이라 부름)이 늘 따라다닌다. 내 조국은 어디이고, 종래 어떤 모습이어야 하나. 현해탄 건너 들려오는 소식들은 답답하고 불안하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제국의 전차를 몰고 '전쟁할 수 있는 일본'으로 성큼 나아가고 있다. 유사시 일본 자위대의 북한 진출 문제가 쟁점이 된 것도 괴상하다.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은 일제 한반도 침탈의 데자뷔가 아닌가. 우리의 주적이 북한인지, 일본인지도 헷갈릴 지경이다. 컥컥, 노학자의 목이 메인다.

지난 22일 서면 영광도서 사랑방에서 목요학술회 주최로 일본 모모야마가쿠인(桃山學院) 대학의 서용달(83) 명예교수가 강연을 했다. 주제가 흥미로웠다. '한일 신시대 개척에 신협력 조약을: 한국인의 주체성에 호소한다'.

부산 태생인 서 교수는 일본의 한인 교수 1호로서 재일동포 참정권 확보 투쟁의 선봉장이었다.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시립대를 졸업하고 고베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당시 지도교수는 일본 국적만 취득하면 일류대 교수가 될 수 있다고 했지만, 그는 민족차별에 굴복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한국 국적을 유지한 채 1963년 모모야마가쿠인대 전임교수가 되었다. 1982년 일본 국회가 '국공립 대학 외국인 교원 임용법'을 공포, 시행한 데에는 서 교수의 지난한 투쟁이 있었다. 그가 쓴 '다문화공생 지향의 재일 한조선인' '아시아시민과 한조선인'같은 책은 역저로 꼽힌다. '한조선인'이란 말이 눈길을 끈다. 처음엔 '한국·조선인'이라 쓰다가 '국'자를 빼고 양쪽을 갈라놓는 가운뎃 점(·)을 없애 통일지향적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분단 조국이 낳은 서글픈 조어다.

모처럼 고향을 찾아 감회 어린 강연을 한 서 교수지만 그의 심중은 복잡한 듯했다. 아베 정권의 우경화 폭주가 걱정스럽고, 미국과 중국의 패권 구도 속에 샌드위치처럼 끼인 한반도의 앞날도 우려스럽다. 국론분열 없이 똘똘 뭉쳐도 시원찮을 판에, 한국 안에서 좌우 편을 갈라 밑도 끝도 없는 역사전쟁을 벌이는 모습이라니!

서 교수의 상황 진단은 명쾌했다. 구한말 일제의 한반도 침탈과 식민 지배, 해방 후 남북분단과 한국전쟁은 모두 '대일본제국의 원죄' 때문이라는 것. 그 대신 일본은 한국전쟁때 경제부흥의 발판을 마련했다. 일례로 토요타 자동차는 한국전쟁 와중에 트럭 1000대의 주문을 받아 도산 직전에 회생했다. 토요타 결산서를 보면 1950년 6월 1억3000만 엔 적자가 1951년 9월 5억 엔의 순이익으로 돌아섰다. 그런데도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 커녕 독도를 내놓으라 요구하고, 자위대의 한반도 진입 문제를 쟁점화한다. 일본의 저의가 뭔지는 물어보나 마나다.

어디서 고리가 잘못 끼워진 걸까. 서 교수는 1904년부터 1910년 사이 반강제로 맺어진 일련의 한일 조약들이 많은 문제를 안고 있고, 결정적으로는 1965년 한일협정이 졸속 추진되어 문제가 더욱 꼬여버렸다고 주장했다. 잘못 꿴 단추는 반세기가 지나도 그대로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한일 간 '국교 정상화'와 진정한 '우호관계' 회복을 위해 신협약이 있어야 한다는 것. 프랑스와 독일이 맺은 '엘리제 협력 조약'이 좋은 참고 사례다. 1963년 초 드골 프랑스 대통령과 아데나워 서독 수상이 조인한 엘리제 조약은 외무장관 회담의 정례화, 외교 정책의 상호 협의, 양국 군대 간 인사 교류, 청소년 교류촉진 같은 실질적 협력 방안을 담고 있다. 이 조약은 수세기에 걸친 적대국이 실질적 협력 관계를 확립, 강화해 역사에 남을 EU 사회 건설의 밑바탕을 만들었다.

강연 후 쏟아진 질문 세례 속에서 서 교수는 비장한 어투로 말했다. "한국이 정신 차려야 합니다. 정말입니다. 이대로 가면 또 당할지 모릅니다. 내 고향에 와서 큰 소리로 말합니다. 모두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한일 정상회담이 다음 달 2일 열린다고 한다. 꽉 막힌 한일관계의 물꼬가 트일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벌써 '만나는 게 유일한 성과'라는 말이 나온다. 사실 본질에 닿지 않는 겉치레 회담은 백 번을 한들 겉치레일 뿐이다. 꼬인 역사의 매듭을 푸는 근원적이고 거시적인 담론이 필요한 때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1965년 한일협정 체제를 극복할 새로운 공동선언을 바라는 건 철 모르는 기대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아베 총리를 향해 '역사 건망증'과 '논리 결핍증'을 따지며 "미래를 여는 한일 신협정을 맺자"고 요구하는 당당한 모습을 그리는 것도 꿈일 텐가. 스스로 족쇄를 차고 운신이 자유롭기를 바랄 수는 없다. 73년간 일본생활을 통해 일본의 본질을 읽어온 노학자의 걱정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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