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의 후폭풍이 거세다. 학자·전문인 단체가 국정화 규탄 성명을 발표하는가 하면 학생·사회시민단체들은 불복종 운동을 벌이고 있다. '난 반댈세' 스티커와 손팻말이 SNS에서 빠르게 확산되면서 불복종 운동의 상징문구가 됐다.
확정고시는 통상 '상황 종료'를 뜻한다. 그런데 국정화 확정고시는 불복종이라는 새로운 상황을 불렀다. 민의를 외면하는 오만한 정권에 대한 항의시위다. 한 여론조사기관에 의하면 확정고시에 대해 국민의 60%가 '잘못했다'고 평가했다. 국정화 찬성 여론이 압도적이었던 대구·경북지역에서도 '잘했다'와 '잘못했다'가 엇비슷해졌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부당성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 진리의 말씀이라는 복음서조차 한 권이 아니라 네 권이다. 하물며 평가가 다소 엇갈리고 있는 근현대사 부분의 내용을 정권의 입맛대로 재단해 강요하는 것은 전체주의적 발상이라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현 정부 지지층도 현행 교과서에 다소 문제점이 있다며 개선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방향이 국정화인가에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의 '합리적 보수층'이 침묵하는 데는 '올바른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한 기대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라는 비판에 대해 "나오지도 않은 교과서를 비판하지 말라"는 정부와 여당의 입장을 옹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같은 기대는 무망하게 됐다. 황교안 총리의 확정고시에 대한 국민담화, 그리고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의 교과서 편찬기준 발표에서 이미 '올바른 국정 역사교과서'의 본색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황 총리는 담화에서 현재 학교에서 99.9%가 편향 논란이 있는 교과서를 사용하고 있다고 전제했다. '편향 논란'은 사실상 좌편향이라는 표현이다. 황 총리가 옹호한 교과서는 0.1%만이 선택한 교학사 역사교과서다. 그런데 이 교과서는 2년 전 '교학사 파동'에서 친일·독재 미화 등 '올바른'과 거리가 먼 것으로 드러났다.
'올바른 역사교과서'의 정체가 다름 아닌 '친일 독재 미화 교과서'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는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의 발언으로 현실화했다. 황 총리의 담화 발표 다음 날 김 위원장은 헌법 정신과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해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편찬 방향과 편찬상의 유의점이 명확하고 균형 있게 제시되는 편찬기준을 개발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황 총리 담화 내용이 교과서 편찬 기준에 반영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 모든 것이 다 포함된다"고 답했다. 황 총리의 담화를 '편찬 방향과 유의점' 즉, 역사교과서 편찬의 가이드 라인으로 삼는다는 얘기다. 이는 곧 0.1%가 선택한, 좌편향 논란이 없는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국정 역사교과서의 모델로 생각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여당 수뇌와 교육부 수장, 국사편찬위원장이 왜 국민의 절대다수가 반대하는 역사교과서를 기준으로 삼으려는 걸까.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박 대통령은 2008년 5월 뉴라이트의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뉴라이트 교과서) 출판기념회에서 "청소년들이 잘못된 역사관을 키우는 것을 크게 걱정했는데 이제 걱정을 덜게 됐다"면서 "이 책의 출판은 그 자체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극찬했다. 박 대통령이 극찬한 뉴라이트 교과서와 교학사 역사교과서는 초록동색이다.
이쯤 되면 비록 '나오지도 않은 교과서'이긴 하지만 '올바른 국정 역사교과서'의 실체를 짐작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결론적으로 '올바른'이라는 수식어에 전혀 어울릴 수 없는 역사교과서이기 십상이다. 게다가 우리 사회의 '90%의 역사학자'와 99.9%의 학교가 생각하는 상식 수준에 못 미치리라는 것도 분명하다.
새삼 공자의 정명(正名) 사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공자는 정치를 맡기면 무엇부터 하겠느냐는 질문에 "이름을 바로잡겠다(正名)"고 했다. 공자가 말한 정명이란 이름에 부합한 실체가 있어야 그 이름이 성립한다는 말이다. 공자 시대에도 권력자들이 불의를 저질러놓고 그것에 '정의'라고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흔했나 보다. 공자가 "이름을 바로잡겠다"고 한 것은 불의에 정의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며 그것을 불의라고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공자는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결국 백성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게 된다, 즉 사회가 혼란스럽게 된다면서 정명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건강한 학교 99.9%를 좌편향으로 몰고 나머지 0.1%가 선택한 문제투성이의 역사교과서와 쌍둥이를 '올바른 교과서'라고 이름붙인다면 그것은 과연 정명일까. 공자는 안정된 사회를 이루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정명의 확립이라고 했다. 정부와 여당 그리고 청와대는 '올바른 국정 역사교과서'가 과연 정명에 부합한지 성찰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