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과 군 복무 때 연애편지를 부탁하거나 대필한 경험은 한 번쯤 있을 법하다. 스마트폰과 이메일이 보편화된 요즘은 어떨까. 인터넷엔 '연애편지 대필' 광고가 흔하다. 대필 시장이 형성될 정도니 당연히 수요가 있다는 뜻. 2012년 1억 원 고료 세계문학상 당선자 전민식 씨는 문학청년의 출발이 연애편지 대필이었다고 고백하기도.
또 얼마 전 연애편지 대필이 전문직업인 쿠바 여성 리우드밀라 킨코세의 스토리가 외신을 탄 적이 있다. 그녀는 15년간 종이에 연애편지를 대필해왔는데, 세계 20여 개국의 고객으로부터 주문을 받고 있다고. 종이 편지가 여느 소통 수단과는 다른 특별한 공감능력을 갖고 있으며, 이 같은 소통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연애편지 대필작가가 인공지능 컴퓨터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의 이색 영화도 있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그녀(her)'. 2014년 아카데미 각본상, 골든 글로브 각본상을 수상했다. 기발한 상상력의 각본을 바탕으로 완성된 매우 독특한 로맨스영화다.
'아름다운 손편지 닷 컴'에 근무하는 대필작가 테오도르는 고객의 심리 파악의 명수이고, 감성적이고 로맨틱한 글쓰기의 대가다. 아내와 별거 중인 테오도르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인공지능 운영체제를 구입한다. 실체(육체)는 없는 이 운영체제는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진 여성 사만다(그녀)다. 그녀는 배려 깊고, 활기차며, 유머러스하고, 지적 능력도 매우 뛰어난데다 아름답고 섹시하기까지하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와의 관계에서 '소통의 완전함'을 느끼고 사랑에 빠진다. 사만다와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인간 여성과 관계는 왠지 불편하고 불완전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인공지능과의 관계에서 완전함을 느꼈던 주인공에게 공허함이 엄습한다. 실재하지만 실체가 없는 사만다와의 사랑이 마치 '자신이 쓴 남의 연애편지'를 연상시킨 것.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 구글이 자동으로 이메일 답장을 보내는 기술을 개발해 곧 서비스에 들어간다는 소식이다. 사람을 대신해 인공지능이 이메일 답장을 해주는 '스마트 답장(Smart Reply)' 서비스다. 기계가 마치 사람처럼 학습해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예측하는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기술 덕분이다. 컴퓨터가 이메일을 보낸 사람의 마음을 읽어 정교한 답장을 보내는 수준으로 가고 있다. 글로벌 IT기업들이 타깃 마케팅에 이미 이 기술을 응용하고 있다. 하지만 스마트 답장이 아무리 정교해지더라도 '대필 편지' 느낌을 지우지는 못할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