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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범천(凡川) 찾기와 부산 정신 /박창희

동천 옛 이름은 범천, 호랑이 출몰 설화 많아

동천 복원 사업 맞춰 부산포 유래 정립해 임란 대첩비 세웠으면

  • 국제신문
  • 대기자 chpark@kookje.co.kr
  •  |  입력 : 2015-11-22 19:09:37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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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나 자연물이나 이름이 중요하다. 이름 속에 역사와 혼이 스며든다. 일제의 창씨개명이나 지명 바꾸기가 낳은 해악은 지금도 우리의 혼을 어지럽힌다. 이름은 곧 혼이다. 이름을 뺏기면 혼을 잃는다. 시민들 중에는 아직도 영도 봉래산을 고갈산(沽渴山), 서구 엄광산을 고원견산(高遠見山)이라 부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1990년대 중반 원래 이름을 되찾았는데도 일제의 잔재는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부산시가 동천 복원 로드맵을 내놨다. 2018년까지 부전천 복개를 걷어내고, 2020년까지 수질을 개선해 서울 청계천 이상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박수를 쳐 줄 일이다. 동천 복원은 부산의 얼굴을 씻는 사업이요, 혼을 찾는 일이다.

그런데 동천(東川), 그 이름이 문제다. 문헌에는 동천의 원래 이름이 '범천(凡川)'으로 나온다. 백양산 수정산 등에서 흘러내리는 지류들을 따라 호랑이(범)들이 우르르 출몰하던 모습이 그려진다. 이곳의 호랑이 이야기는 지역 촌로들의 한결같은 증언이거니와, 지명에서도 생생하게 확인된다. 범일동, 범천동, 범전동, 호계천(虎溪川), 범내골 그리고 동천의 다리인 범1호교에서 범5호교까지 모두 '범'이 들어가 있다. 범을 빼고는 동천을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다.

널리 알려진 동천의 유래는 '범일동 자성대(부산진)의 동쪽을 흐른다 하여 동천이라 했다'는 설이다. 부산시나 부산진구의 홈페이지에도 그렇게 소개돼 있다. 방위는 중심을 어디로 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데도, 그동안 의문없이 동천이라 불러온 것이다. 옛날에는 물이 맑아 풍만강(豊滿江) 또는 보만강(寶滿江)이라 했다는 기록이 보이지만, 그건 동천의 족보와는 관련 없는 이야기다. 고지도 자료를 검토해보면 동천이란 이름은 구한말 혹은 일제강점기에 붙여졌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 문헌자료에는 동천이 '범천'으로 뚜렷하게 나타난다. 임진왜란 때인 1595년 11월 2일 자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훈련주부 김경상이 적정을 탐색해 올린 서계에 '부산포 어귀에 적선이 680여 척이고, 동평(東平)으로부터 범천(凡川)에 이르기까지 우리 백성이 300여 호 거주한다'고 돼 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는 '부산포의 왜군이 부산진 동쪽 황령산 아래 깊숙이 배를 정박시키고 진을 치고 있어 공격하기가 어렵다'는 대목이 있는데, 그 장소가 바로 범천 어귀로 해석된다.

재일 사학자인 고 이진희 선생은 '부산포를 그린 각종 고지도'를 다룬 논문에 동천을 대놓고 범천이라 부르고 있다. 15세기 후반의 '동래 부산포(富山浦)지도'와 17세기 중엽의 '부산포(釜山浦) 조감도', 20세기 초의 '동래부사접왜사도' 등에 나타난 중심 하천이 범천이고 그 어귀가 부산포라는 것이다. 동천의 옛 이름이 범천이란 것은 거의 흔들림없는 사실이다.

최근 지역사학계에서 부산(釜山) 유래를 놓고 논쟁이 일고 있는데, 이것도 범천의 재발견과 무관하지 않다. 범천이란 이름을 찾게 되면 부산포의 연원을 더듬게 되고 결국 부산의 유래에 닿게 된다. 고고학자인 심봉근 전 동아대 총장과 나동욱 부산박물관 문화재조사팀장은 최근 각각의 학술논문을 통해 '부산의 유래는 동구 증산(甑山·가마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조선 후기 부산진성으로 활용된 지금의 자성대공원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폭넓게 용인되어온 증산설을 반박하는 내용이다.

문제가 단순하진 않다. 조선 성종 초기 부산(富山)이란 명칭이 부산(釜山)으로 바뀌고, 조선전기 증산 일대의 부산진성이 임진왜란 때 왜성으로, 그후 부산진성이 지금의 자성대로 옮겨지는 등 복잡한 변화가 결부돼 있기 때문이다. 부산의 정체성을 찾고 지역사를 바로 세우는 논쟁인 만큼 지역학계와 향토사학자들이 머리를 맞대 논란을 조속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학계 일각에선 자성대란 명칭도 일제강점기에 붙여진 것이라며 고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일들은 350만 거대도시 부산의 뿌리를 찾는 중요한 작업이다. 당연히 부산시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논쟁이 정리되면 동천은 범천으로, 자성대는 부산(釜山) 유래가 되는 부산진성으로 바뀌어야 하고, 나아가 부산포를 지키는 보루로서 부산진성 복원도 생각해야 한다. 이순신 장군이 대승을 거둔 부산포 해전 장소가 범천 어귀라고 하니, 이곳에 부산포 대첩비를 세우는 문제도 논의하자. 부산포 승첩을 기려 부산 시민의 날(10월 5일)이 제정되었으니 1차적 의미는 부여된 셈이다. 동천, 아니 범천 어귀에 부산포 대첩비가 우뚝 서게 되면 부산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됨은 물론 동천 복원의 훌륭한 상징물이 되지 않겠는가.

동천 복원은 부산의 100년 대계를 이야기하는 희망 프로젝트다. 진정한 동천 복원은 환경적·공학적 복원과 함께 인문학적 연구를 통한 명칭 개정 등 부산 정신까지 찾아낼 때 가능해진다. 부산은 지금 희망에 목이 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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