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황제 조훈현 9단에게는 체스와 관련된 유명한 사례가 있다. 체스 초심자인 그가 유럽 챔피언을 꺾었다는. 이것은 약간 과장되고 신화화한 것인데, 조 9단이 밝힌 실화는 다음과 같다. 1979년 독일에서 열린 유럽 바둑선수권대회에 한국프로사범으로 초청돼 갔다. 초청 다면기를 끝내고 옆의 체스 게임을 관전하고 있는데, 대국자가 체스를 아느냐고 해서 고개를 끄덕였더니 한 판하자고 했다. 첫 판은 졸 하나 차이로 졌다. 두 번째 판에서 상대가 제일 센 말이 조 9단의 졸을 먹다가 잡히자 손을 들었다. 대국이 끝나고 실력이 어느 정도냐고 물었더니 '마스터'라고 했다.
체스의 마스터는 바둑으로 치면 프로급에 해당한다. 바둑으로 치면 아마 10급쯤 되는 사람이 프로기사를 이긴 대사건이 벌어진 셈이다. 체스니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바둑 대국에서는 아마 10급이 좀체 프로 초단을 이길 수 없다. 그래서 이런 말이 나왔나 보다. '체스는 인간이 만든 가장 재미있는 게임이다. 그런데 바둑은 신이 만들었다'. 바둑판의 세계가 체스에 비해 무한정 깊고 넓다는 뜻이다.
바둑판에서 나타날 수 있는 대국의 수는 수학적으로 최소한 361!(361×360×359…) 개이다. 이는 무한대에 가깝다. 그래서 바둑의 최절정 고수는 신의 경지와 비교된다. 바둑 9단을 입신(入神)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바둑계에서는 심심파적 삼아 고수와 신과의 핸디캡(치수)을 가늠해본다. 린하이펑 9단은 "넉 점이면 목이라도 걸겠다"고 했고, 서봉수 9단은 "이창호라면 두 점이면 족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최근 컴퓨터(인공지능) 바둑이 인간을 위협하고 있다. 체스는 인공지능에 정복당한 지 이미 오래됐으나 바둑은 인공지능의 불가침 영역으로 간주돼 왔다. 최근 중국에서 열린 제1회 미림합배 세계컴퓨터바둑토너먼트에서 한국의 '돌바람'이 일본의 강호 '젠(zen)'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돌바람의 기력은 아마 5단 정도. 프로기사에 4점 치수다. 돌바람 개발자는 컴퓨터 바둑이 인간을 꺾을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장담했다고. 인공지능과 머신러닝 기술에 투자하고 있는 구글과 페이스북도 사람을 이기는 바둑 알고리즘을 연구하는 중이라니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인공지능 바둑의 기력이 아무리 향상된다 하더라도 이미 입신의 경지에 든 인간을 따라잡지는 못할 것으로 믿는다. 왜냐하면 바둑은 신이 만든 반면, 인공지능은 인간이 만들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