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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칼럼] '좌고우면'이 가능한 정치

한국 보수가 '철학의 빈곤'에도 당당할 수 있는 것은

부패·분열 함께 보여주는 지리멸렬한 진보 때문이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5-12-10 19:08:30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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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 카드 결제단말기를 놔두고, 자신의 시집을 공공기관에 '강매'한 의원이 있다. 또 로스쿨 졸업시험에 떨어진 아들을 구제하기 위해 압력을 행사한 의원도 있다. 그리고 대기업에 자신의 딸을 채용시키려고 압력을 넣은 의원도 있다. '당연히(?)' 여당 얘기일 것 같지만, 모두 야당이다. 그것도 '갑'의 횡포로부터 약자를 지키겠다고 만든 새정치민주연합 '을(乙)지로위원회' 소속이란다.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이래서야 누가 진보를 믿겠나. 좋은 야당이 있어야 좋은 여당이 있고, 진보 좌파가 건강해야 보수 우파도 건강하다는 것이 '백만인'의 상식이다. 이들이 지은 죄가 크다. 진보란 단어를 오염시켰기 때문이다. 노동운동계의 상황도 비슷하다. 민주노총이 지난달 14일 '1차 민중총궐기' 대회를 계획하며 일감을 빌미로 '폭력시위'를 하도록 비정규직 노동자를 협박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진보의 오염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노동자를 상대로 '슈퍼 갑질'을 한 거다. 지난 2일 부산 민주노총은 이른바 '복면방지법'을 비판하는 뜻에서 '복면시위'를 벌였다. 이를 두고 정부 권력을 조롱한 유머라고 자평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민주노총 스스로가 이미 '슈퍼 갑'이 됐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좋겠다.

어떤 사람은 현재 한국 진보세력의 분열을 걱정한다. 특히 제1 야당의 분당·탈당 사태를 우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근본적으로 한국 진보 진영의 '정신분열'이 걱정스럽다. 진보가 본연의 가치와 일관적 정체성을 잃은 것 같다는 말이다. 지난달 13일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주제로 한 TV 토론에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 문제를 자유경쟁에 부치고, 시장경제에 맡기자고 했다.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발언이다. 필자는 교과서가 진실을 담아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역사 교과서의 선택에 경쟁이 있어야 한다면, 진실의 경쟁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정의당'에 속한 좌파 정치인이 상품시장에서의 성패로 역사의 진실을 결판내자고 말한 것은 자가당착으로 보인다.

진보가 추구하는 정신적 가치를 시장경쟁에 맡기면 어떻게 될까. 소수자(약자)를 위한 보건복지 정책을 경제논리로 결정하면 어떤 정책이 살아남을까. 진보의 정신분열이 걱정되는 이유다. 시장정책에 '일상적으로' 반대하며 사회적 공공성을 내세워 온 진보가 정작 '핵심 가치' 영역에선 시장원리를 내세운다? 그런 논리라면 정부는 예술가 지원도 끊고, 자유경쟁에 부쳐야 하지 않겠나.

■진보의 자가당착

시장 논리는 보수 우파의 '홈그라운드'다. 좌파 진영의 맞수인 자유경제원 사무총장 전희경은 이미 오래전에 밝혔다. 국정 역사 교과서는 그동안 '좌파 카르텔'이 만든 독과점을 바로잡기 위해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라고. 특정 업자들의 담합에 맞서 국가가 '공정거래법' '독과점금지법'을 시행하는 격이라고.

이처럼 우파는 처음부터 시장 논리와 자유경쟁을 전면에 내걸고 있었다. 달리 말해 좌파가 시장 논리를 내세우면 자기모순에 빠지는 동시에 맞수의 위치를 잃고 필패한다는 말이다. 얘기가 길었지만, 요점은 간단하다. 진보 진영은 정부와 새누리당이 '부자 정당' '대기업 정당'이라고 비판해왔지만, 제 스스로 신뢰를 떨어뜨리며 피아(彼我) 식별조차 어려울 정도의 혼란을 빚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에 대한 새정치연합의 정책도 문제다. 새정치연합은 영화진흥위원회 신사옥 건립을 왜 반대했나. 문재인 대표는 '부산국제영화제 및 부산 영상콘텐츠밸리 지원 특별법'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래놓고 새정치연합이 영진위 신사옥 건립에 반대한 것은 진보 정책의 하나인 지방분권 정책에 역행하고, 부산 시민을 우롱한 게 아닌가. 또 한국거래소(KRX) 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법률 개정 과정도 어처구니가 없다.

새정치연합이 발목을 잡은 탓에 개정안의 핵심사항인 지주회사 '부산 본사' 조항을 부칙에서 뺐단다. 여기에 합의한 여당 의원도 잘못됐지만, 새정치연합 김기식 의원이 이 '꼼수'를 주도했다는 것은 더 큰 문제다. 김 의원은 박원순 서울시장 선거대책위원회 보좌관 출신이며 박 시장은 지방분권을 강조해온 진보의 아이콘이다. 그런 박 시장도 금융중심이 서울에 있어야 한다는 낡은 생각을 고집한 것이다.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는 이들을 어떻게 진보라고 부르겠나. 진보는 '시계 제로(0)'의 혼돈에 빠졌다. 또 이런 상황은 곧바로 보수의 정신적 나태함으로 이어진 것 같다. 필자는 아직 한국 보수가 추구하는 가치가 뭔지 잘 모르겠다. 산업화와 민주화란 틀로 보면, 보수 우파의 토대는 산업화 세대이다. 이 세대 덕분에 한국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분명하다. 반면 이 세대가 확립한 정신적 가치는 불분명하다.

■보수의 정신적 나태함

보수는 경제성장을 넘어 삶의 품격을 생각하고, 제안하는 단계로 올라서야 한다. 삶 문화 정치의 바탕이 되는 철학을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다. 유럽 보수는 본질적으로 '정신적 귀족주의'를 지향한다. 그들이 나치와 공산권의 전체주의에 맞선 힘은 단순한 개인주의나 자유주의가 아니라 정신적 귀족주의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현재 한국 보수에는 이런 정신적 가치가 부족한 것 같다. 이것이 아마도 좌파의 '승복'과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이유일 거다. 그러나 이 '철학의 빈곤' 속에서도 보수가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진보가 지리멸렬하기 때문이다. 원래 우파는 부패로 망하고, 좌파는 분열로 망한다는데, 지금 좌파는 부패와 분열을 함께 보여주는 것 같다.

이런 상황은 좌파에도, 우파에도 나쁘다. 결국, 한국의 미래에 나쁘다는 말이다. 좌파와 우파가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논리와 품격을 갖춘 정책 대결을 펼치기 바란다. 시민들이 둘 사이에서 망설이고 '좌고우면'(左顧右眄, 좌우를 살핌)할 기회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필로아트랩대표·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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