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의원의 새정치민주연합 탈당과 신당 창당은 야권 파국과 세력 확장이라는 두 가지 상충적인 의미를 가졌다. 파국이라 함은 야권 분열의 현실화로 인해 정권교체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반면 세력 확장은 두 야당이 혁신 경쟁을 통해 체질을 개선할 경우 전체 야권 세력을 키우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안 의원의 탈당은, 명시적으로는 당내 혁신의 강도 차이에서 비롯됐던 게 아니던가. 야권은 어차피 한몸이니 혁신의 방식과 강도 차이로 인해 영원히 갈라설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국민의당 창당준비위가 발족하면서 혁신 경쟁을 통한 야권 세력 확장의 기대는 무망한 것처럼 보인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원래 한몸이었다는 생각을 좀체 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정치집단이 통합의 가능성을 열어두려면 최소한 동일한 역사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특히 민주화운동으로 획득한 1987년 개정 헌법을 자랑스럽게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국민의당은 이를 부정하는 역사인식을 드러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당 공동창당준비위원장인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얼마 전 4·19민주묘지를 참배한 뒤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국부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이승만,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굳게 세우신 분'으로 평가했다.
한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엄중한 역사적 사실을 건드린 것이며, 결과적으로 헌법정신을 훼손하고 있다. 잘 알다시피 우리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돼 있다. 한 위원장의 말대로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굳건히 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4·19혁명을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 또 이 전 대통령을 '국부'로 인정하는 순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은 사라지게 된다. 이뿐인가. 3·1운동에서부터 광복까지 치열한 독립운동의 역사는 물론 친일 인사의 만행도 잊혀지게 된다. 진보 지식인이자 정권교체를 벼르는 야당 창당준비위원장의 이 같은 역사인식에 대해 놀라움과 실망감을 감추기 어렵다.
한 위원장의 역사인식은 국민의당의 그것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야당의 역사인식이 일부 신우익보수 집단의 편향된 역사인식과 궤를 같이한다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뉴라이트가 이승만 정부 수립일(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제정하자는 주장은 '이승만 국부론'과 꼭 같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의 핵심도 이 부분이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역사전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결의를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의당은 그 역사전쟁에서 집권여당과 신보수우익의 편을 들고 나선 것이다.
안 의원도 역사인식에 관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2014년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의 통합 추진 당시 안 의원 측은 신당의 정강·정책에서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을 빼자고 주장했던 것이다. 논란 끝에 두 선언이 포함되긴 했으나 안 의원의 역사인식에 의문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안 의원은 2011년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현 집권세력이 확장하는 데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신당 창당 선언 때도 새누리당의 세력 확장을 막겠다고 했다. 새누리당을 비롯한 집권 세력과 같은 역사인식을 공유하면서 그들의 세력 확장을 막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한 위원장은 '이승만 국부' 발언이 논란을 빚자 "국민 통합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해치는 발언이 국민 통합의 취지였다고 정당화될 수는 없다. 진정한 국민 통합은 엄정한 역사적 평가 위에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일본에게 역사 인정과 진정한 사죄를 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 위원장의 발언은 중도층뿐 아니라 보수우익층까지 포섭해 국민의당의 외연을 확장하겠다는 정치적 포석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정치세력 확장을 위해 엄중한 역사를 이용하는 것은 책임 있는 정치인의 태도가 아니며, 진리를 탐구한 학자의 자세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한국사회의 변혁을 설명하는 한 위원장의 중민 이론은 꽤 설득력이 있다. 중산층과 민중의 정체성을 융합한 중민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등 역동적인 역사의 행위주체였고, 미래에도 중민의 역할과 의미는 유효할 것이라고 한다. 한 위원장은 1980년대 민중의 시대를 지나 오늘날 시민시대에 맞는 중민의 실천적 함의를 날카롭게 다듬는다고 했다. 필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다만 한 위원장은 한국사회 변혁의 주체이자 이론의 주인공인 중민이 과연 자신의 역사인식에 동의할지 먼저 자문해 봐야 할 것이다. 동의하지 않는다면 국민의당은 역동적인 한국사회에 발붙이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