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학상 좋은 집터는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이다. 뒷산이 겨울철 북서풍을 막아주고, 앞강에서 생활용수를 얻는다. 그래서 배산임수는 곧 장풍득수(藏風得水)다. 조선의 도읍인 한양은 진산인 북쪽의 북한산(810.5m)과 남쪽의 한강으로 배산임수의 큰 틀을 짰다. 부산의 동래로 치자면 금정산(801.5m)과 수영강이다. 서울이 오랫동안 강북 중심으로 발전한 것이나, 부산 본토가 아직도 동래라고 믿는 이가 적지 않은 것은 그런 까닭이다.
지금은 서울하면 강남을 떠올리지만 강남이 서울의 일부로 제대로 취급받기 시작한 것은 1966년 윤치영 서울시장이 강남 개발 구상을 내놓으면서부터다. 강남 개발을 가능하게 했던 요인은 많지만 핵심은 서울로의 끊임없는 인구 유입이다. 1960년대 서울의 연평균 인구증가율은 10%에 달했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당장 주거와 교통 교육이 문제가 됐다. 당시 서울의 상황은 토지 투기를 통한 정치자금 조성이라는 정권적 차원의 목적이 아니더라도 인구 문제의 돌파구로 한강 이남이 필요했던 것이다.
부산으로 눈을 돌려보자. 서부산 개발이 부쩍 탄력을 받고 있다. 에코델타시티, 사상스마트시티와 같이 이름만으로도 글로벌한 대형사업이 진행 중이고, 최근에는 서부산청사 건립까지 거론된다.
서부산사업은 말하자면 서울의 한강처럼 낙동강을 부산의 도심하천으로 만들자는 구상이다. 낙동강 하류 지역이 배산임수의 주거터였다면 부산은 낙동강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산은 동래가 주거의 중심이었고, 일제 치하 정책적으로 부산항을 육성하면서 항구도시로 자리매김했다. 낙동강은 관심 밖이었다. 남포동 광복동이 흥청거리던 시절에도 부산의 관심은 딱 거기까지였다. 바로 곁의 낙동강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뒤늦게 서부산을 개발하려니 부산으로서는 힘에 부친다. 부산의 현재 역량에서 동·서부산 동시 개발은 과부하다. 부산시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동부산관광단지조차 민자 유치가 어려워 진척이 더딘 판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부산을 개발해 동·서부산 양 바퀴로 달리겠다는 부산시의 구상은 진창에 빠진 수레 신세가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서울과 달리 부산은 인구 변수가 호의적이지 않다. 부산 인구는 1995년 389만 명을 정점으로 줄곧 감소세다. 지난해 말 현재 351만 명이다. 동부산 인구를 서부산으로 옮기는 서울 방식의 서부산 개발은 어림도 없다.
부산시는 다음 달 강서 북 사상 사하 등 4개 구와 함께 서부산권 개발 정책협의회를 발족한다. 협의회에서 서부산청사나 서부산의료원의 입지에서부터 낙동강 하굿둑 개방, 나루터 복원 등을 논의하겠다고 한다.
한 가지 아쉽다. 낙동강을 부산쪽에서만 쳐다보는 느낌이다. 낙동강과 서낙동강을 건너면 김해와 진해가 있고, 낙동강을 조금 거슬러 오르면 양산이다. 낙동강 건너편을 어떤 형태로든 정책협의회에 포용할 수는 없을까. '서부산권' 개발 정책협의회라는 명칭이 걸린다면 '낙동강 하류권' 정책협의회라 이름할 수도 있다. 전북의 남원 장수, 전남의 곡성 구례, 경남의 하동 산청 함양 등 7개 지자체는 벌써부터 지리산권 지자체 협의회로 활동하고 있다.
부산에서 낙동강을 바라보는 시선 못지않게 김해 진해 양산에서 낙동강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하다. 예를 들면 인구 13만 명의 장유 신도시 주민들이 낙동강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는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보는 것이 훨씬 피부에 와닿는다. 이런 식으로 낙동강 양안이 북적거려야 인구 유입도 배가 된다.
박정희 정권은 강북에서 강남으로의 인구 유출을 위해 특단의 정책을 동원했다. 1964년 서울시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이 서울의 도시계획이 부진한 이유를 물었다. 당시 윤치영 서울시장은 지금도 서울로 인구가 몰려오는데 도시계획을 잘 수립해 시행하면 인구가 더 유입되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답변했다. 강북 생활이 불편하도록 만들어 시민들이 떠나가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 있다. 1972년 양택식 서울시장은 강북 지역에서 나이트클럽 술집 다방 호텔 여관 등 유흥시설의 신규 허가는 물론 이전까지 금지한다고 밝혔다. 낭비 풍조 방지와 인구 과밀 억제를 명분으로 유흥시설을 강남으로 쫓아보낸 것이다. 박정희 정권은 이처럼 강남을 제2 서울, 남서울도 모자라 새서울이라는 명칭까지 부여해가며 육성했다.
서부산개발이 아무리 부산을 먹여살릴 차세대 과업이라고 해도 그런 방편을 쓸 수는 없다. 다만 지금처럼 동부산에 난개발이 계속 허용되어서는 서부산 개발은 어렵다. 서울의 강남 개발은 정권의 비호가 뒷받침됐지만 서부산 개발은 정부의 수도권 규제 완화 정책으로 인해 더욱 어려운 처지다. 서부산 개발은 풍수학상으로도, 인구 측면에서도, 정부 정책으로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그런 삼각 파도는 파도에 익숙한 부산으로서도 힘겹다.
수석논설위원 chans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