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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살기 좋은' 도시다. 이 말은 어폐가 있을 수 있지만, 너무 따지진 마시라. 얼마 전 한 포럼에서 서울로 출장을 자주 다니는 기업가 한 분이 얘기했다. "서울에서 KTX 타고 부산역에 도착해 플랫폼에 내려서면 기분이 살짝 들떠요. 서울보다 확실히 덜 춥고 코 끝에 닿는 청량한 바닷바람이 정말 좋은 거 있죠. 지친 영혼을 위로한다고나 할까. 부산은 살기 좋은 곳이에요."
서울사람들은 머리가 복잡하여 좀 쉬고 싶을 때 무작정 해운대를 찾는다고 한다. 부산이 힐링도시라는 말이 아닌가. 이건 사실 엄청난 의미다. 집을 나서면 산과 바다요, 발길 닿는 곳이 갈맷길이다. 물가가 비교적 싸고 사람들이 화통해 어딜 가도 적응이 쉽다. 외지인들은 이런 부산에 쉽게 매료된다.
그런데 '살기좋은 부산'은 두 얼굴이다. 자연환경이 좋은 건 틀림없지만, 정치·경제적 구조를 들여다보면 한숨이 나고 복장이 터진다. 인구 350만 대도시라고 하긴엔 떨어지는 게 너무 많다. 정치, 경제는 물론 교육, 문화 환경이 다 그렇다. 인재는 떠나고 젊은이들은 '헬(hell)!'하고 비명을 지른다.
각종 통계 지표는 '헬 부산'의 실상이다.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9.7%(전국 평균 9.2%), 고용기회 지표는 전국 최악이다. 인구는 작년에만 1만3000명이 빠져나갔다. 줄어든 게 이 정도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한국, 그 중에서도 부산의 20, 30대 자살률은 7대 대도시 중 가장 높다. 2013년까지 5년간 부산의 지역내총생산(GRDP) 성장률은 3.8%,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꼴찌다. 게다가 툭하면 공직 비리가 불거져 전체 청렴도를 끌어내린다.
어떻게 보면 '살기 좋은 부산'은 허울이거나 지독한 역설이다. 이 역설은 대개 무시되거나 가려진다. 원인을 캐고 처방하는 데도 무관심하다. 모두가 구경꾼 같다. '살기 좋은' 곳에서 '살기 힘든' 지표들이 쏟아지는 데도 '아몰랑'(아, 나도 모르겠어)이다. 정치는 경제를 탓하고 경제는 정치를 탓한다. 결국 한통속이다. 네 미락 내 미락 책임을 돌리다 제자리다. 지표가 개선될 수 없는 시스템이다.
부산에 3무(無)가 있다는 말은 지역정가에서 나온 얘기다. 무견제 무비판 무책임이 그것이다. 다 그런 건 아닐테지만, 지역정치가 따갑게 받아들여야 할 지적이다. 부산의 후퇴와 추락은 이 같은 3무와 연관이 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어느 누구 하나 책임을 진다거나 '내탓이오' 하고 말한 사람이 없다. 하긴 책임을 묻지도 않는데 누가 책임을 지랴.
정치시계는 어김없이 돌아가 4·13총선이 눈앞에 다가왔다. 선거판 돌아가는 꼴이 어지럽고 추레하다. 희망의 메아리는 들리지 않고 온갖 잡박(雜朴)이 난무한다. 친박 진박 원박 탈박 비박 복박 가박 따위는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이름들인가. 야권을 보면 더 기가 막힌다. 깨진 쪽박에서 물 새는 소리가 낭자한데도 '새정치'만 불러댄다. 희망은 고사하고 어디에 믿음의 끈을 대고 마음을 둬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조경태 의원의 '변심'은 어지러운 선거판의 한 정점이다. 그는 단순한 야당의 3선 의원이 아니다. 부산의 야성, 나아가 야권의 상징적 인물이 아니던가. 그를 통해 최소한의 견제와 균형감을 가져온 지역민들은 허탈함을 넘어 배신감을 토로한다. 새누리당이 바라는 대로, 부산에서 18 대 0 싹쓸이를 하면 그건 지역의 희망일 텐가.
어차피 믿음과 배신의 게임이 정치라면 그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게 삶일지도 모른다. 글쟁이 김훈은 '라면을 끓이며'라는 책에서 '인간 삶의 먹이와 슬픔, 더러움, 비열함, 희망에 대해 쓸 것이다'고 했다. 도처에 희망의 적들이 노려보고 있지만, 우리 삶이 끝내 사수해야 할 것은 희망의 진지다.
지역의 희망은, 역설적이지만 지금 여기에 있다. 그것은 '부산 3무(無)'를 잘라내고, 이를테면 '3자(自)'를 찾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자주(自主) 자립(自立) 자강(自强)의 정신이 그것이다. 주인의식을 갖고 스스로 사랑하고 주체적으로 설 때, 희망은 봄꽃처럼 피어날 것이다. 총선은 시민이 끌고 가는 희망열차다.
정파나 진영 논리를 떠나 지역의 난제인 동천 재생 프로젝트나 낙동강 하굿둑의 전면 개방, 지속가능한 서부산 개발을 위해 지혜를 경주하라. 누가 창조적이고 실천적인 콘텐츠를 내놓고 있는가. 저 고뇌에 휩싸인 청년실업자를 위한 지역적 대안을 제시하라. 서울시가 논의하는 청년수당은 남의 일일뿐인가. 몇 년 전 본지가 제기한 도시국가론도 다시 살펴보자. '3자(自) 실행'의 해법과 지방분권 전략이 거기에 있다. 총장 직선제라는 외통수에 발목이 잡힌 부산대 사태를 어떻게 슬기롭게 풀지 대안을 던져보라.
이런 의제들이 총선이라는 용광로에서 펄펄 끓어야 한다. 그 속에서 정제된 희망 의제가 새로운 정치 리더십을 만나면 지역이 달라지지 않겠는가. 그것이 부산의 희망이 아니겠는가.
대기자 chpark@kookj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