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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사가살불가욕(士可殺不可辱) /김찬석

유일한 공천 미정 유승민…벌거벗겨 조리돌린 격

이제라도 당이 결단 내려 마지막 명예 지켜 주는게 우리 정치도 살아남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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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든 제도 중 선거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다. 자신이 선거의 당사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대통령제의 발상지이자 현대 민주주의의 선두주자라는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민주주의에 대해 가장 건강한 사고를 갖추고 있다는 미국민들이 연일 막말을 쏟아내는 도널드 트럼프를 공화당 대통령 후보 1순위로 지지하고 있다. 공화당 지도부는 트럼프를 저지하기 위해 중재전당대회를 열어 새 대선 후보를 뽑는 방안까지 만지작거린다.

4·13총선을 보자. 역대 어느 선거보다 시선을 끄는 장면이 많다. 부산만 놓고보면 조경태 의원의 변절(?)을 첫 손에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부산 어느 곳에 출마해도 경쟁력이 충분하다던 허남식 전 시장이 고르고 고른 사하갑의 당내 경선에서 김척수 부산시 대외협력 정책고문에 패한 것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전국적으로 보자면 4·13총선의 하이라이트는 유승민(대구 동을) 의원의 향배다. 유 의원은 새누리당의 전체 253개 지역구 가운데 유일하게 공천 심사 결정이 지연되고 있다. 새누리당의 7차례에 걸친 공천 중간발표에서 번번이 제외됐고, 경선 지역에서 경선 결과가 속속 발표되는 시점에서조차 여전히 홀로 남겨졌다.

유 의원 처리 방식을 두고 잔인하다거나 비인간적이라고 말한다면 세상물정 모르는 양반집 도련님으로 핀잔받기 십상이다. 공천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이라고 새누리당 김정훈 정책위의장이 시의적절하게 정곡을 찔러주지 않는가. "에이~ 공천 한두 번 해 봅니꺼. 다 그런 거지."

현직 대통령이 집권 여당의 공천에 개입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이유에서 당적을 떠나더라도 친청와대계 의원들을 통해 공천에 관여한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유별나다. 역대 어느 대통령이 이렇듯 집권여당의 공천 과정에 노골적인 살의를 품고 달려든 적이 있었을까.

유 의원 핍박은 그 정점이다. 대통령이 유 의원을 배신의 정치라고 공개 질타한 것이 지난해 6월 25일 국무회의 석상이다. 그로부터 9개월 가깝도록 칼날을 거두지 않고 있다. 당시 국무회의 석상에서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를 국민들이 반드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이라며 유 의원을 겨냥한 바 있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은 국민을 제치고 스스로 심판자가 됐다.

유승민이라는 나무는 가지가 모두 잘린 채 벌거벗은 몸으로 만인의 구경거리가 된 지 오래다. 아름드리 나무라도 이런 식으로 난도질을 당하면 봄이 와도 푸르름을 되찾지 못한다. 설령 무소속으로 출마해 생환하더라도 자신 때문에 식솔이 화를 당했다는 자괴감을 털어버리기 어려울 터이다. 정치인으로서 참담함의 극한을 맛본 경험이 우리 정치의 후진성 탈피를 위한 긍정적 자양분으로 작용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문제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문제 가장이 되듯 그 역시 올바르지 못한 공천의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친이·친박계처럼 친유계가 등장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예기(禮記) 유행(儒行)편의 구절이다. 선비란 친하게 지낼 수야 있지만 협박해서 의로움을 버리게 할 수 없고, 가까이 할 수야 있지만 핍박해서 도리를 벗어나게 할 수 없으며, 죽일 수야 있지만 욕을 보여 뜻을 버리게 할 수 없다. 선비는 차라리 죽일지언정 욕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사가살불가욕(士可殺不可辱)은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정치판에서도 유효한 경구다.

관우는 조조 휘하의 맹장 방덕을 수전을 이용해 사로잡았다. 방덕의 옛 주군인 마초가 유비의 오호대장으로 있는 것을 거론하며 귀순을 권했으나 방덕은 이를 거부하며 빨리 자신의 목을 자르라고 맞받았다. 관우는 미련을 버리고 목숨을 거둔다. 그것이 상대를 더 욕보이지 않는 길이라는 것을 조조의 온갖 보화와 미녀를 마다하고 유비에게 돌아간 자신이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지금이라도 유 의원을 자르는 것이 옳다. 정치에 최소한의 권도가 있다면 정치인을 이렇게 욕보이는 것이 아니다. 공관위가 유 의원에게 온갖 모욕을 안겨놓고 이제와서 불출마를 스스로 결단하라고 압박하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이 시점에서 혹시라도 공천을 주는 것은 유 의원을 두 번 죽이는 짓이다.

유 의원은 파렴치범이 아니다. 자녀의 취업을 청탁하지도, 카드결제기까지 갖다놓고 시집을 강매하지도, 보좌관의 월급을 상납받지도 않았다. 그는 '청와대 얼라'들의 외교 업무 미숙을 나무라고, 상위법의 취지에 위배되는 행정부의 각종 시행령에 대해 국회가 시정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이끈 양심범이다. 비난이 아니라 칭찬을 들어야 할 일이다.

'선거의 여왕'과 '배신의 정치가'의 싸움은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선거가 끝나면 국민들이 누구의 손을 들어줬는지 판가름날 것이다.

수석논설위원 chans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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