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BIFF·비프) 사태는 어이없게도 세월호의 참상을 떠올리게 한다. 생각하기조차 싫은 대한민국 난파선의 악몽이다. 세월호를 다룬 영화 '다이빙벨'이 비프호(號)를 집어삼킬 기세다. 비프 난파선! 최악의 시나리오가 쓰여지고 있다.
엊그제 이용관 전 비프 집행위원장이 공금 부실집행 혐의 등으로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무슨 죄가 있는지도 모르는 비프 자문위원들은 검찰의 소환장을 받아쥐고 노심초사하고 있다. 모두 부산시의 고발과 가처분 신청에 따른 것이다. 부산시의 연이은 초강수에 영화인들은 실망과 분노를 표출하면서 '비프 지지'를 외치고 있다.
오는 10월 제 21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정상대로 열릴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이제 검찰과 법원에 가서 구해야 할 상황이다. 사태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세계 7대 영화제, 아시아 최고의 영화 플랫폼, 부산 시민의 자존심과도 같은 콘텐츠가 날개 없이 추락하고 있다. 비프의 위기요 수치다.
싸움은 점입가경이다. 영화계는 부산시가 비프를 계속 탄압한다면 올 영화제를 보이콧 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영화인들이 만든 '아이 서포트 비프(I SUPPORT BIFF)'라는 공식 웹 사이트에는 비프 정상화를 촉구하는 국내외 영화인들의 메시지가 줄을 잇고 있다. 젊은 영화인들은 비프와의 소중한 인연을 잇게 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부산시의 대응은 강경 일변도다. 지난 9일자 시보 '다이내믹 부산'(제1719호)은 무려 3개 면을 할애해 영화인들의 시도를 '비프가 일부 영화권력자의 놀이터냐' '사유화가 심각하다'는 식으로 따졌다. 비프를 놓고 지역사회에선 편이 갈렸고,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까지 터져 나왔다. 이에 부산참여연대는 "부산시는 지역주의로 부산영화제와 시민을 이간질 말라"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시민들도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SNS에는 비프 사태에 대한 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스무 살 성년, 막상 장가를 보내려고 하니 진짜 아버지는 입도 벙끗 못하고, 의붓아버지와 삼촌들이 자기 아들이라고 우기는 형국', '시와 영화계가 자신들이 갑(甲)임을 교묘히 숨기고 을(乙) 코스프레(가장해 즐기는 것) 행세를 한다'…. 이번 사태의 본질이 영화제의 패권(覇權) 다툼, 즉 헤게모니 싸움이란 시각이 있었는데 시민들의 날카로운 눈이 그것을 간파하고 있는 모습이다. 영화계의 패권도 무섭지만, 관료 패권주의는 더 무섭다는 말도 나왔다.
문제 해결을 위해선 이번 사태의 팩트(fact)를 체크할 필요가 있다. 팩트는 사건의 본질을 따져 판을 정확히 읽는 방법 중 하나다.
먼저, 영화 '다이빙벨' 상영 중단의 외압 여부. 여러 정황으로 볼 때 2014년 영화제 때 부산시가 상영금지를 요구한 사실이 드러난다. 비프에 대한 탄압은 이 요구를 거스른 데 따른 혹독한 대가라는 것이다.
둘째, 비프에 가해진 전방위 탄압 여부. '다이빙벨' 상영 이후 비프는 부산시와 감사원의 감사,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산 삭감, 부산시의 고발 조치 등을 당했다. 뭔가 조직적으로 비프를 압박, 탄압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셋째, 양측의 주장과 쟁점. 영화계는 비프의 독립성·자율성 보장에 관한 내용을 정관에 담으려고 한다. 부산시는 엄청난 예산이 들어간 비프의 공공성과 책임성을 제기하며 '라운드 테이블'에서 협의하자고 주장한다. 영화계는 시의 의도를 의심한다.
어쩌면 '다이빙벨' 상영은 지나간 쟁점이다. 현재 유튜브에서만 92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 중이고, 부산시도 그 때문이 아니라고 극구 해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항간에는 이번 사태의 배후에 '보이지 않는 손' 있다는 소문이 돈다. 그게 청와대일 수도, 국정원일 수도, 또 다른 기관일 수도 있다는 거다. 만약 그런 게 있다면 이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일이다. 국가 권력이 문화를 통제하려 들면 새로운 형태의 저항과 비극이 싹튼다. 악몽을 꾸고 싶지 않지만, 비프 사태가 계속 꼬여가니 그런 우려를 떨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비프는 국내외 영화인들의 우정과 시민적 참여를 바탕으로 성장했다. 그 성장의 이면에는 다양성을 수용하는 관대함이 있었다. 팩트를 중심으로 복기를 해 보면 관대함의 자리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영화계가 요구하는 자율성·독립성과 부산시가 말하는 책임성·공공성은 상충 가치가 아니라 서로 통하고 보완되는 개념이다. 화이부동(和而不同·서로 조화를 이루나 같아지지는 않는다)의 정신을 생각하면 라운드 테이블을 꾸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
판이 더 이상 깨져선 안 된다. 추락은 한순간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선진국에서 상식처럼 통하는 '팔걸이 원칙' 즉,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다'는 문화지원 원칙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라도 도출된다면, 모두가 지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다.
대기자 chpar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