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일을 마치고 귀가가 늦은 밤. 아내가 심야영화를 보러가자고 한다. 예상치 못한 제안에 심드렁하게 반응할 수 없었던 것은, 그 영화가 위안부 사건을 다룬 '귀향'이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심야의 데이트 신청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픈 사연'을 함께 들으러 가자고 촉구한 셈이다.
사실 아내는 '귀향'과 같이 개인적·역사적 아픔을 다룬 영화를 잘 보지 못한다. 마음이 힘들어서 보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럴 때면, 삼류 인문학자 남편은 '타인의 고통을 대면할 수 있는 용기를 지녀야 한다'며, 대학 강의실에서나 통할 법한 '역사적 개인으로서의 윤리' 타령을 늘어놓곤 한다. 하지만 그 말이 얼마나 아내에게 절실하게 다가갔는지는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일까? 일상의 고단함에 몸은 지쳤지만, 함께 '귀향'을 보러가자는 아내의 말은 일상의 피로를 잊게 만드는 피로해소제 같았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자정을 넘긴 상영관의 관객은 둘뿐. 아내는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을 훔쳤지만, 나는 마지막까지 눈물을 참았다. 마음을 때리는 장면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실존했고, 또 실존해 있는 분들의 고통이 기록돼 있는 역사적 소재를 '귀향'이 제대로 그려주기를 소망했기에, 눈물을 참으며 끝까지 스크린을 응시했다.
나는 이 영화를 미학적 차원에서 분석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점을 상기하면서도, 텍스트 내적으로는 다소 아쉬운 점들이 보여서 안타까웠다. 대표적인 부분이 위안소의 일본군 성폭력 장면을 전지적인 카메라의 시각을 통해 훑는 촬영 전략이다. 굳이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이라는 책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 카메라 각도는 창작자의 선한 의도와 달리, 피해자의 '고통'을 '전시'하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신중했어야 하는 부분이다. 아니나 다를까, 몇몇 영화평론가도, 이 장면의 카메라 각도가 영상미학적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은 미학적 완성도를 넘어 그 '시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여야 하는 역사적 텍스트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는 '귀향'의 소재 자체가 지닌 역사적 의미와 무게감을 고려한 보완적 평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이와 같은 논평은 자기모순적이다. 이러한 비평적 부조화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귀향'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창작자의 입장이나 텍스트 내적 자질 분석, 혹은 콘텍스트적인 역사적 함의 부여에만 치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영화는 창작자의 의도나 작품의 내적 자질에 대한 해석과 평가보다, 수용자인 '관객'의 입장에서 새롭게 그 의미가 해석되고 덧붙여져야 한다. 왜냐하면 '귀향'이 이토록 큰 울림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이 작품의 미학적 완성도나 대중적 상품성 때문이 아니라, 타자의 아픔을 더불어 나눌 줄 아는 '생산자로서의 관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귀향'은 시민과 관객이 함께 만든 '공통의 생산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130분에 육박하는 눈물겨운 '귀향'의 과정 자체에도 주목해야 하겠지만, 동시에 이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또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지 역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영화 '귀향'은 제작 14년 만에 개봉하였다. 투자자를 확보하기 힘들어 시민의 후원을 통해 제작되었지만, 초기에는 개봉관을 확보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이 영화가 동아시아의 예민한 정치적 폐부를 찌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악한 현실정치의 논리나 자본주의의 위력도 '귀향'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증례가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다. 영화 '귀향'의 엔딩 크레딧은 피해자 할머니들이 직접 그린 '그림'과 이 영화의 제작에 참여했던 수많은 시민 후원자의 '이름'이 함께 겹쳐져 있다. 10여 분을 육박하는 '귀향'의 엔딩 크레딧은 그래서 단순한 자막의 나열이 아니라, 이 땅에 여전히 상처받은 영혼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의 기록이다. 또 그 처절한 역사적 시·공간 속에서 누군가는 아파했고, 현재에도 아파하고 있다는 절규에 귀 기울이고자 하는 '마음의 연대'이다. 그러므로 '귀향'을 만든 사람들은 연출가나 스태프만이 아니라, 타자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아파할 줄 아는 7만5000여 명의 클라우드 펀드 후원자와 350여만 명의 익명의 관객 모두이다. 즉, 이 영화의 후원자와 관객은 '귀향'을 함께 완성시킨 또 다른 생산자('만든 사람들')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연출가의 의도나 작품 자체의 의미 해석을 초과하는 것이어야 한다.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의 문이 열린다. 아르바이트 학생이 마지막 심야영화 관객의 퇴장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눈치를 보면서도, 엔딩 크레딧을 끝까지, 끝까지 지켜보았다. 이것이야말로, '귀향'을 함께 만든 이들의 따뜻한 마음과 접속하는 인문학적 실천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 학생도 우리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 주었겠지? 집으로 가는 길, 아내와 함께 걷는 새벽 공기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부산외대 한국어문화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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