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시를 쓰지 못하지만 인간은 시를 쓴다. 그래서 '시혼(詩魂)'이란 말이 생겼는지 모른다. 시인 김소월은 자신의 유일한 시론 '시혼'에서 그것을 영원의 존재, 변하지 않는 형체로 설명한다. 하느님은 인간을 불러 시를 쓰게 하고, 인간은 그 부르심에 답해 시를 쓴다고 한다.
이해인(71·본명 이명숙) 수녀는 하느님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혼을 불태우는 시인이다. 그의 시는 시혼의 불꽃이자 영혼의 예술이다. 그는 1968년 첫 서원을 받고 스스로 '해인(海仁)'이라 이름하고 글을 써왔다. 1976년 종신서원과 함께 펴낸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는 한국사회에 '이해인 현상'을 낳았을 정도로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그동안 그가 펴낸 10권의 시집과 8권의 산문집은 수도자로서의 삶과 시인으로서의 사색을 조화시키며 일궈낸 소중한 성과물이다. 그의 저작들은 지금까지 줄잡아 500만 권 넘게 팔렸다고 한다. 시집은 팔리지 않는 책이란 고정관념을 무너뜨린 놀라운 사건이다. 수녀 시인,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그의 위상은 날이 갈수록 공고해지는 모습이다.
필명인 '해인'은 '바다 같은 어진 마음' '어진 바다' '한량없는 사랑'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된다. 그 바다는 부산 광안리이고, 어짊은 '논어'가 가르치는 인(仁), 곧 인간됨이다. 해인이란 말 속에 광안리 바다의 넓고 깊은 휴머니즘의 가치가 깃들어 있는 셈이다.
해인 수녀는 1968년 부산 광안리의 성베네딕도 수녀원에 들어가 지금까지 50여 년간 줄곧 그곳에서 수도하고 일을 하고 시를 쓰면서 살아왔다. 광안리 바다는 그에게 둘도 없는 산책·휴식 장소다. 푸릇푸릇한 스무세 살의 청춘이 나이 일흔의 수더분한 할머니가 되는 과정을 광안리는 어미처럼 지켜봤을 테다. 광안리는 아마도 그의 삶 마지막까지 붙잡을 모양이다. 그가 쓴 '광안리에서'라는 시에 그런 예감이 비친다.
'바다를 보며/ 소나무를 보며/ 광안리에서/ 50년을 살았어요// 바다는 나에게/ 넓어져라 하고/ 소나무는 나에게/ 늘 푸르러라 하고// 말 잘 듣고 사느라/ 종종 힘이 들었어도/ 지금은 행복해요// 바다의 출렁임/ 소나무의 꼿꼿함/ 모두가 사랑이지요// 이젠 보기만 해도/ 그 마음 압니다'.
해인 수녀는 짬 날 때마다 광안리 백사장에 나가 흩어진 조가비를 줍는다. 그는 주어온 조가비를 다듬어 그림을 그려넣고 띠지에 기도문을 적어 붙여 방문자들에게 선물한다. 비워내고 단단해진 작은 조가비에 넓은 바다를 담아 선물하는 기쁨은 그가 추구하는 작은 행복론의 핵심이다. 이 모두가 광안리 바닷가에서 이뤄지는 일들이다.
해인 수녀는 그동안 부산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움직였다. 수도자라는 특수한 신분 때문이기도 하고, 2008년 이후에는 건강 탓이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부지런히 시를 써 베스트셀러를 만들었고, 언론에 기고를 하고, 신라대 부산가톨릭대 사상구청 등에서 특강을 진행했다.
시작(詩作)과 별도로 우리 사회의 아픈 곳에 다가가 위로하고 소통하는 것도 해인 수녀의 중요한 일상이다. 2002년 중국 민항기의 돗대산 참사 때는 마치 유족이 된 듯 위로의 글을 올렸고, 2년 전 세월호 참사 때는 국가적 아픔을 공유하고 치유하는 메시지를 띄웠다. 성베네딕도 수녀원 내 해인글방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겐 한 송이 꽃과 작은 선물을 나눠주고, 기도가 필요한 곳이면 병원이든 화장장이든 어디라도 찾아갔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혜민 스님과 서로 '이모 수녀' '조카 스님'이라 부르며 종교간 화합을 꾀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대장암이란 시련 속에서도 아픈 사람들에게 다가가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모습에선 마더(Mother) 데레사 수녀의 얼굴이 어른거리기도 한다.
내가 이런 해인 수녀를 인터뷰한 건 행운이었다. 그는 자칭 '부산 홍보대사'라는 말까지 했다. 우리(부산)가 그를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구축한 성베네딕도 수녀원 내의 '민들레 영토(글방)'는 치유·나눔·희망·평화의 성소가 되고 있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해인 수녀는 전국구 베스트셀러 시인이다. 부산에서 굳이 챙기지 않아도 그의 명성은 이미 빛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해인 수녀를 지역의 문화콘텐츠 또는 문화상징으로 챙겨야 한다고 본다. 섣부른 접근일지 모르지만, 그가 즐겨 다니는 광안리 바닷가에 '이해인 시의 거리'를 만드는 건 어떤가. 그 어디쯤에 '민들레 행복동산'이나 '치유·희망센터' '해인 문학관' 같은 것이 들어선다면! 명분만 있다면, 산 사람을 위한 시비나 노래비, 거리도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본다. '이해인 시의 거리'는 그의 시가 국민적 사랑을 받은 이상으로 사랑받는 명소가 될 것이다. 이런 게 지역에 숨겨진 콘텐츠의 원석이 아닐텐가. 광안리에는 그곳 모래알보다 더 많은 무량의 해인(海仁)이 숨 쉬고 있다.
대기자 chpar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