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이지훈 칼럼] 열린 사고의 힘

15세 소년의 상상력과 연구로 마야도시 깜짝 발견

보통사람의 신사고 존중해줄 사회적 토양마련 절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6-05-12 18:49:46
  •  |   본지 30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한낱 '아마추어 역사가'가 역사학 발전의 신기원을 연 경우가 꽤 있다. 독일 기업가인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이 대표적이다. 어릴 때부터 애독한 호메로스의 이야기를 진실로 믿은 이 기업인은 마침내 '프로 역사학자'들이 전설로만 여기던 트로이와 미케네 유적을 발굴해내었다. 또 경기도 연천 전곡리에서 구석기 유적을 발견한 사람은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던 '일개'(?) 병사였다.
1977년 당시 25세의 공군 상병인 그렉 보웬은 한탄강변에서 구석기 시대 주먹도끼로 보이는 돌을 발견하고, 서울대에 조사를 요청했다. 세계 역사를 새로 쓰는 순간이었다. 동아시아 구석기가 유럽보다 훨씬 늦게 성립한다고 보던 세계적 통설이 무너지고, 한반도에는 구석기 시대가 없었다고 생각하던 일본 학설이 뒤집힌 것이다.

한갓 아마추어가 어떻게 이런 발견을 할 수 있었을까. 미국 경영학자 에릭 데인은 "전문성과 경험이 깊어질수록 세상을 보는 특정한 방식에 매몰"된다고 말한다. 특정 분야에서 오랜 세월 지식을 쌓으면 기존 지식의 포로가 될 수 있다는 거다. 또 미국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는 "특정 분야에 보통 정도의 전문지식이 있을 때 과감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가장 열린 사고를 지닌다"고 말한다.

'보통 정도의 전문지식'과 '열린 사고'? 독학으로 고고학을 연구한 슐리만, 또 미국 대학 학부에서 인류학 수업을 들었던 보웬은 확실히 '보통 정도의 전문지식'을 갖췄고, '열린 마음'을 지녔다. 그래서 이들은 전문가의 집단사고와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역사적 진실에 다가설 수 있었던 것 같다. 지난 8일, 캐나다에서 들려온 소식도 흥미롭다. 한 소년이 고대 마야 도시를 발견한 이야기다.

■ 소년의 상상력

캐나다 퀘벡에 사는 15세의 소년 윌리엄 가두리(William Gadoury)는 2012년 '마야 달력' 이야기를 듣고 고대 마야 문명에 흥미를 가졌다. 그러다 이상한 사실 하나를 깨닫는다. "마야인은 어째서 강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나 산속에 도시를 세웠을까요?" 이때부터 그는 혼자 연구를 시작한다. 3년째가 되던 해 윌리엄은 마야 도시의 위치와 함께 그곳에서 관측되는 별자리 위치를 '구글 맵'을 이용해 겹쳐봤다.

그러자 놀랍게도 지금까지 발견된 마야 도시 117개의 위치와 고대 마야인이 기록한 별자리 22개의 배열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었다. 더욱이 윌리엄은 마야인이 기록한 23번째 별자리 위치에 상응하는 도시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 그는 캐나다 우주국에 연구 보고를 올리고, 캐나다 우주국은 미국 나사(NASA)와 일본 우주국으로부터 그 별자리에 해당하는 위치의 위성사진을 제공받는다.

전문가들이 사진을 분석하자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대형 피라미드와 건물 30채로 보이는 윤곽이 발견된 것이다. 어쩌면 이곳은 고대 마야 도시 가운데 가장 큰 도시인 것으로 짐작되며, 윌리엄은 멕시코 남동부 '유카탄' 정글에 있는 이 도시에 '불의 입'(bouche de feu)이란 이름을 붙였다.

마야인이 별자리의 의미를 각별하게 여겼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별자리와 도시 배열을 상응시킨 것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렇게 해서 윌리엄은 값비싼 장비도, 연구비도 없이 혼자 집안에서 컴퓨터 한 대로 지난 수백 년 동안 어떤 세계적 연구자도 몰랐던 도시를 찾아낸 것이다. '창조적'이란 말은 바로 이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윌리엄의 발상을 '열린 사고'로 불러도 좋고, 상상력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자유로운 사고가 현대 과학기술과 만날 때 얼마나 멋진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한 소년의 상상력을 존중한 캐나다 우주국의 태도는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지. 오늘날 누구나 지식의 융합을 말한다. 하지만 진짜 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각 분야의 전문지식만큼이나 상상력이 중요하고, 그 상상력을 대하는 각 분야 전문가의 열린 사고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1984년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특이한 실험을 했다. 전직 재무장관 네 명, 대기업 회장 네 명, 옥스퍼드대 학생 네 명, 런던 환경미화원 네 명에게 앞으로 10년 동안의 경제 예측을 요청한 것이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각 집단의 예측 적중률을 살펴보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기업 회장과 환경미화원이 1위를 차지한 것이다. 특히 유가변동 예측에서는 환경미화원이 가장 정확했다고 한다. 그러면 꼴찌는? 전직 재무장관 집단이었다.

■ 전문가 집단의 맹점

전문가 집단의 '맹점'을 생각하게 만드는 결과다. 그러나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환경미화원의 경제예측에 귀를 기울이는 전문가는 별로 많지 않을 거다. 아마추어의 새로운 사고가 세상을 바꾸는 힘으로 연결되기 어려운 이유다. 기업의 역사를 봐도 뛰어난 경영진이 반대한 제품 가운데 나중에 성공한 제품이 수두룩하다. 제록스(Xerox)도 처음에는 레이저 프린트가 비실용적이고 가격이 비싸다며 생산을 취소했다.

그럼, 전문지식이 아닌 예술적 창의성에 종사하는 전문가는 어떨까. 아쉽게도 상황은 비슷한 것 같다. 영화 '스타워즈' '이티'(ET) '펄프 픽션'의 성공을 예측한 제작자는 거의 없었다.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안네 프랭크의 일기' '파리 대왕' '해리 포터' '나니아 연대기'는 모두 출판사의 퇴짜를 맞았다. 메이저 출판계가 '해리 포터'를 거절한 까닭은 어린이가 읽기에는 너무 길다는 것이었지만, 지난해까지 J. K. 롤링이 250억 달러를 벌어들인 것은 오히려 소설이 길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마추어의 신사고가 그 가치를 알아보는 다른 전문가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고귀한 것은 모두 힘들고도 드물다'는 스피노자의 말처럼. 다만 분명한 것은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멋진 역사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집단사고와 통념에서 자유로운 개인, 그리고 이런 별종의 잠재성을 귀하게 여기는 사회적 토양을 마련할 때 우리의 앞날이 밝다는 말이다.

철학박사·필로아트랩 대표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재개발 대어 ‘광안3’ 삼성물산이 꿰찼다
  2. 2[부산 법조 경찰 24시] ‘최장수 부산청장’ 우철문, 차기 경찰청장 기대감
  3. 3가덕도신공항 여객터미널 설계안 ‘라이징 윙스’ 선정(종합)
  4. 4정현수 사사구 남발…선발투수 데뷔전서 조기 강판
  5. 5부산 유엔평화센터 건립 본격화
  6. 6첫 장맛비 40㎜에 부산 옹벽 와르르, 가로수도 우지끈(종합)
  7. 7檢, 일동서 돈 받은 혐의 前 양산시 공무원에 징역 3년 구형
  8. 8나이 잊게한 손맛과 성취감…20만 어르신 파크골프 ‘홀인’
  9. 9월성4호기 저장수 2.3t 바다 누설…원안위 “인근 해수 세슘 검출 안돼”(종합)
  10. 10‘산은 부산행’ 우군 늘었다…개혁신당도 법 개정 공조(종합)
  1. 1여야 원 구성 또 결렬…與 7개 상임위 수용여부 24일 결정
  2. 2대대적 물갈이 예고…부산시의회 인기 상임위 경쟁 치열
  3. 3음주보다 벌금 낮은 마약·약물 운전…與 김도읍 처벌 강화 법안 대표발의
  4. 4결심 굳힌 이재명…‘또대명’ 명분이 고민
  5. 5與 “협상 중단”…野 “더는 못 미뤄” 25일 본회의 강행 예고
  6. 6한 “수평적 당정” 나 “당정 균형” 원 “尹과 원팀” 출마 일성
  7. 7‘채상병 특검법’ 野 내달초 본회의 처리 방침(종합)
  8. 8[단독]나경원, 당권주자 중 처음 부산 당심 공략
  9. 9국민의힘, 정무위 등 7개 상임위원장 수용…원 구성 마무리 수순
  10. 10"4년 중임제 개헌, 지금이 적기"…우원식, 尹 대통령에 결단 촉구
  1. 1재개발 대어 ‘광안3’ 삼성물산이 꿰찼다
  2. 2가덕도신공항 여객터미널 설계안 ‘라이징 윙스’ 선정(종합)
  3. 3월성4호기 저장수 2.3t 바다 누설…원안위 “인근 해수 세슘 검출 안돼”(종합)
  4. 4‘산은 부산행’ 우군 늘었다…개혁신당도 법 개정 공조(종합)
  5. 5내달 2일 ‘블랑써밋74’ 1순위 청약…998세대 본격 분양
  6. 6김형균 부산TP 원장, ‘2+1 임기’ 뒤 첫 연임
  7. 7CES 부산통합관, 내년 덩치 키운다
  8. 8세계 60개국 3000명 우주과학자들, 내달 부산 모인다
  9. 9MZ 입맛 잡은 롯데칠성 ‘크러시’
  10. 10가덕도신공항 부지 조성 공사 사전 적격심사(PQ) 다시 유찰
  1. 1[부산 법조 경찰 24시] ‘최장수 부산청장’ 우철문, 차기 경찰청장 기대감
  2. 2부산 유엔평화센터 건립 본격화
  3. 3첫 장맛비 40㎜에 부산 옹벽 와르르, 가로수도 우지끈(종합)
  4. 4檢, 일동서 돈 받은 혐의 前 양산시 공무원에 징역 3년 구형
  5. 5나이 잊게한 손맛과 성취감…20만 어르신 파크골프 ‘홀인’
  6. 6“결혼하면 전세금까지 쏩니다” 중매 팔 걷은 사하구 파격제안
  7. 7[속보]"화성 아리셀 화재 현장에서 시신 20여구 발견"
  8. 8다문화가정도 저출산…미취학아동 감소 전망
  9. 9전세사기범 126명 신상 공개…평균 19억 떼먹어
  10. 10업주, 기계 끼어 숨진 직원 안전 소홀 책임…2심도 집행유예 2년
  1. 1정현수 사사구 남발…선발투수 데뷔전서 조기 강판
  2. 2호날두 골 대신 골배달, 대회 통산 8도움
  3. 3김하성 10호 홈런…3연속 두자릿수 포
  4. 4부산시장배 세계합기도선수권 성황
  5. 5김민규 2년 만에 한국오픈 정상 탈환…박현경 4차 연장서 윤이나 꺾고 우승
  6. 6롯데 지시완 최설우 김서진 전격 방출 통보
  7. 7김태형 감독의 승부수…“선발투수 한명 불펜 기용”
  8. 8태권도 큰 별 박수남 별세, 향년 77세…유럽서 활동
  9. 9전차군단 독일 헝가리 꺾고 16강 선착
  10. 10BNK 이소희·안혜지 농구대표팀 승선
우리은행
후보가 후보에게 묻는다
부산 서동
4·10 총선 지역 핫이슈
원도심 숙원 고도제한
강동묵의 디톡스 [전체보기]
노동자 건강을 위한 국제사회의 경향
소규모사업장 중처법, 투약 중단이 필요한가?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더 많이 두들겨 보아야 할 산복도로라는 돌다리
옛 부산세관 복원, 진정한 새로운 전통이 되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연대(連帶)의 중요성과 과학자의 역할
준설, 유일한 치수대책은 아니다
국제칼럼 [전체보기]
길 들이기와 길 들지 않기
‘3요’와 칸 레드카펫을 빛낸 조연들
기고 [전체보기]
‘남북호’, 부산항의 헤리티지와 원양산업 미래
갑진년 김해시의 ‘값진 주민과의 대화’
기자수첩 [전체보기]
영화에 대한 열렬한 환호와 예우…‘축제의 궁전’ 품격이 달랐다
영화의전당 대표 연임…소통 외치는 현장에 귀 기울여야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전체보기]
아직 명당 덕을 덜 본 것일까?
노무현이 옳았다
김용석의 시사탐방 [전체보기]
신문은 살아 있고, 칼럼은 말을 건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공존과 양립으로서의 국악 컬래버
디아스포라의 노래 영천아리랑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천덕꾸러기’ 북항재개발 이대로는 안된다
소통을 이기는 무기는 없다
데스크시각 [전체보기]
가덕신공항과 박형준의 정치적 미래
도청도설 [전체보기]
노줌마존
‘디지털 치료 허브’ 부산
메디칼럼 [전체보기]
일하는 사람의 1차 의료, 근로자 건강진단
100세시대의 건강관리법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대만과 밀크피시
조식전쟁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뇌력(腦力)을 키우는 다섯 가지 비결
뇌, 팩트 체크!
사설 [전체보기]
가덕도신공항 딴지걸 일 없도록 차근차근 추진을
산복도로 빈집 6000채 도시재생 새 모델 될 수 있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다시 아날로그의 세계를 생각한다
포위된 정치, 제22대 국회에 대한 기대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건강주치의 제도가 의료 개혁의 핵심인 이유
의대 입학정원 갈등의 올바른 해법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기회의 바다, 우리네 함장은 어디로 키를 잡을까
부산항, 글로벌 물류 허브 플러스 알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푸틴의 행보와 러시아 경제
경제문제가 풀려야 인구문제가 풀린다
인문학 칼럼 [전체보기]
인문 정신은 언제나 곡선으로 간다
호모 사피엔스의 바다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나만의 생각’을 길러주려면
한국교육의 새 지평을 여는 IB교육학회 창립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건강과 재물을 얻는 명당아파트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당원 중심주의’의 함정
비례대표 제도는 죄가 없다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오페라 와인
와인이란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바로크 음악
낭만오페라의 종언! 푸치니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꽃피는 부산항’에서
처음 보는 ‘무릉도원’
CEO 칼럼 [전체보기]
가덕도신공항 경제권
우리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
  • 유콘서트
  • 국제크루즈아카데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