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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칼럼] 재생과 혁신은 둘이 아니다

거리 풍경 바뀌지 않으면 정체됐다고 느끼는 한국사회

도시재생은 오히려 참신함에 익숙함을 더해야 성공한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6-06-09 19:03:58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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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처럼 변화를 좋아하는 나라도 많지 않은 것 같다. 겨우 몇 달 사이에 집이 헐리고 새 건물이 올라선다. 우리는 이런 변화를 당연하게 여기는 편이지만, 일본과 유럽은 20년 전, 30년 전 거리 풍경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변하지 않는 풍경이 안정적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으나 한국인의 관점에선 다소 '정체'했다는 느낌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은 혁신을 사랑하는 나라다. 도시가 바뀌지 않으면 '낙후'됐다고 느낀다. 지난 세월 동안 한국이 눈부시게 성장하고, 유럽연합(EU)의 '종합혁신지수', 또 미국 블룸버그통신이 발표하는 '세계혁신지수'에서 올해까지 3년 연속 세계 1위에 오른 것도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사회에서 혁신이라고 하면 1993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을 시작하며 토해낸 일갈이 떠오른다.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이건희 회장은 이때 삼성의 혁신뿐 아니라 한국적 혁신의 한 모델을 제시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이 모델이 잘 적용되지 않은 영역이 있다. 그 대표적 영역이 도시재생이다.

도시재생은 오히려 '익숙할수록 호감이 간다' '낯설면 거부감을 느낀다'는 원칙을 따르는 것 같다. 부산시 사하구가 감천문화마을의 관광상품으로 '소금'을 선정한 것에 대해 시민들이 약간의 당혹감을 느낀 이유도 여기에 있을 법하다.

■ 익숙할수록 호감이 간다

도시재생에서 '익숙함'은 특히 '역사적 맥락'을 말한다. 이런 뜻에서 부산 서구의 '구덕운동장 명품 시민공원 조성' 계획의 경우 '시민 스포츠' 공간을 일부 포함한다면 시민의 환영을 받을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한다. 이곳에 공원을 만든다는 참신한 발상에 '공설 운동장'이란 역사성을 더하는 것이 성공의 열쇠인 셈이다.

한편 '익숙할수록 호감이 간다'는 경구는 오늘날 도시재생뿐 아니라 혁신에서도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첨단의 독창성을 요구하는 영역에도 참신함으로 시작해 익숙함을 더할 때 성공적 아이디어가 만들어진 사례가 많다. 심지어 출판계는 요즘 베스트셀러의 조건이 90%의 기존 지식에 10%의 새로움이 더해진 책이라고 말한다. 독자는 자신이 아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을 좋아하고 신뢰한다는 뜻이다.

독창성만으로는 사람의 호응을 얻을 수 없고, 친숙한 요소를 더해야 한다는 것. 이는 심리학에서 '단순 노출 효과'라고 부르는 것으로 '자주 접한 것일수록 더 좋아하게 된다'는 현상과 연관이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의 경우 제작자가 이 시나리오와 '햄릿'이 닮았다고 말할 때 이런 일이 일어났다.

제작자의 말에 따라 시나리오 원안에 약간의 익숙한 요소를 더하자 작가는 사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참신한 내용을 고전명작과 연결시킬 수 있었고, 그것이 성공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참신함에 익숙함을 더할 때 성공한다는 원칙은 도시재생과 혁신 모두에 적용될 수 있다. 다만 혁신이 자신의 생산성을 소비자와 투자자를 통해 검증받는 것인데 비해 도시재생은 '주민 중심' 사업이다.

주민 중심이란 말은 주민 각자의 삶, 생활이 걸렸다는 말이다. 그만큼 단번에 결론이 나기 어렵다. 도시재생 사업에는 주민에게 낯선 일이 많고, 누구에게나 낯선 일은 불편한 법이다. 이때 행정 마을운동가 전문가는 주민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새 사업을 받아들이는 상황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이 사업이 주민의 실생활과 행복에 도움이 된다고 납득하게 만드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끈질긴' 소통이 관건이다. 지난 2009년 예술단체인 '오픈 스페이스 배'는 부산 동구 산복도로 재생 사업을 맡았다. 예술가들은 사닥다리 형태의 '산복도로 전망대'를 만들자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안했으나 끝내 무산됐다. 주민 일부가 사생활 침해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도 아쉬운 결과였다.

■ 소통이 관건이다

반면 부산 중구 광복동이 아름다운 간판이 즐비한 명품 거리로 거듭난 데에는 부산MBC 부설 '문화도시네트워크' 전문가들이 무려 3년이 넘게 주민들을 만나 설득한 과정이 있었다. 분명 작은 간판이 좋다는 생각은 낯선 것이다. 주민들이 이처럼 생소한 생각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의 지속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

산복도로 고도제한 문제도 비슷할 것이다. 산복도로 일대는 부산 역사가 중첩된 문화재적 공간이고, 전국적으로 보기 드문 조망과 미관을 갖췄다. 고도제한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부산시는 이런 당위성만 내세우기보다는 국내외 도시계획가, 건축가와 함께 이곳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실질적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긴 시간을 두고 주민과 대화하기 바란다.

사람들은 새로운 아이디어에 10회에서 20회 정도 노출될 때 호감도가 커지고, 약간 복잡한 아이디어는 횟수가 그보다 조금 더 늘어날 때 호감도가 커진다고 한다. 도시재생뿐 아니라 혁신을 이끄는 기업가 정치가 행정가 모두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새 아이디어를 실행하고 싶다면 적어도 열 번이 넘게 이해당사자를 만나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새 사업에 대한 호감을 높이는 방법은 사업의 개념을 이미 사람들에게 친숙한 개념과 연관시켜 제시하는 것이다. 앞서 도시재생에서 친숙함은 역사적 맥락이라고 했는데, 또 다른 친숙함의 요소로 '스토리텔링'이 있다. 우리는 영화 '국제시장' 덕분에 '꽃분이네 집'이 일약 관광명소가 된 사례를 안다.

오늘날 혁신과 도시재생의 주요한 흐름은 '다 바꿔'도 아니고, '무에서 유를 만드는' 방식도 아니다. 역사성 또는 친숙함을 창의적 발상에 덧붙이는 업그레이드 방식이 더 의미 있고, 성공 가능성이 큰 걸로 인정받는다.

   

이 점에서 혁신과 재생은 둘이 아니다. 격의 없는 대화로 재생에 혁신을 도입하고, 혁신에 재생을 도입할 때 부산의 독창성이 태어날 것으로 믿는다.


철학박사·필로아트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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