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도냐 밀양이냐. PK(부산·경남)냐 TK(대구·경북)냐.
다시 악마의 진통이 시작됐다. 동남권(영남권) 신공항 입지선정 발표가 임박하면서 영남이 요동치고 있다. 이해가 걸린 광역 지자체장들은 오로지 '우리 지역으로'를 외친다. 사생결단이다. 구도는 '4(대구·경북·경남·울산) 대 1(부산)'이다. 세 불리를 의식한 서병수 부산시장은 일찌감치 '시장직'을 걸었다.
중간지대는 없다. 합리적 토론이나 대안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지역이익을 위한 소지역주의가 영웅심리를 부추긴다. 정치권은 정치공학적 셈법, 표 계산에 몰두해 있다. 토건세력들은 천문학적 예산에 빨대 꽂을 궁리만 한다. 가덕도냐 밀양이냐, 오로지 양단간에 선택만 남았다. 선택은 벼랑 끝에 설 것을 강요한다. 올 오어 낫씽(all-or-nothing)이다.
신공항은 메가톤급 후폭풍을 부르는 뇌관이다. 어느 한 곳이 결정되는 순간, 탈락한 쪽은 자동폭발한다. 신공항이 어디로 결정되든 영남은 벼락처럼 두쪽으로 쪼개질 게 분명하다. 신공항에 모든 것을 걸고 유치전을 편 결과다. 누가 이런 프레임(틀)을 만들었는가. 나라 망조다.
영남은 이미 상처를 입고 있다. 대구와 부산의 지역언론들은 유리한 여론 조성에 올인하고 있다. 유리한 것은 취하고 불리한 것은 버린다. 이곳의 장점이 저곳의 약점으로 둔갑한다. 무엇이 진실이고 어떤 게 사실인지 헷갈린다.
용어부터 신경전이다. 부산은 '동남권 신공항', 대구는 '영남권(혹은 남부권) 신공항'이란 말을 쓴다. 명칭에 지역의 이해관계가 반영돼 있다. 지난 8일 자 본지 사설은 '짜맞추기식 불공정 용역이 불복선언 부른다'라고 썼지만, 대구 매일신문은 '정부는 부산의 불복 움직임에 추호도 흔들리지 말아야'라고 정반대로 썼다. 눈치 빠른 일부 중앙지는 양비론적 보도를 하며 신공항 무용론 또는 백지화 가능성을 흘린다.
이 와중에도 정치권은 표 계산에 분주하다. 공항 후보지 인근 지자체별 인구수를 보면 가덕도 찬성 쪽은 부산 340만, 양산 김해 창원시 일부지역 60만을 더해 400만 내외. 밀양 찬성 쪽은 대구 240만, 경북 250만, 울산 110만, 경남 기타 250만 해서 약 850만 명이다. 청와대와 여권이 어디를 먼저 보겠는가.
부산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건 이것만이 아니다. 정부 여당의 포스트와 국토부의 항공정책 결정 라인을 TK가 장악하고 있다. 서병수 시장이 '보이지 않는 손'을 언급하며 경고를 날렸지만 국토부는 꿈쩍도 않는다. 신공항을 대선 공약으로 걸고 표몰이를 한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은 뭘까. 새누리당을 잃어도 'TK 친박'은 지키겠다는 게 지난 총선의 결과 아니었나.
PK는 최근 청와대와 국회 포스트에서도 모두 밀려났다. 청와대 수석 비서관 10명 중 TK 출신이 6명인데 PK 출신은 이제 한 명도 없다. 게다가 PK 정치권은 서병수 시장과 홍준표 경남지사의 갈등에서 보듯, P(부산)와 K(경남)까지 쪼개진 형국이다.
PK와 TK, PK 내의 분열은 곧 영남권 분열을 뜻한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서 발화된 신공항 갈등은 이처럼 영남을 갈갈이 찢어놓고 있다. 그것도 5년을 주기로 두 번이나 똑같은 형태로.
영남 갈등은 국론분열이다. 갈등은 분열을 낳고 분열은 불통을 낳는다. 국론분열 상태에서 21세기 새로운 하늘을 열 신공항이 가능하겠는가.
악마의 진통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정치공학적 판세가 밀양 쪽으로 기울면서 부산은 초비상 국면이다. 불공정, 음모, 불복, 정권 심판, 민란 같은 극단적 단어가 난무한다. 자칫 잘못하면 부산은 이미 갖고 있는 김해 국제공항마저 잃을 판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판을 깨고 독자추진으로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한국갤럽'의 6월 둘째주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31%, PK지역 지지율은 전주에 비해 12%포인트나 급락했다. 신공항 갈등에 따른 민심이반이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주 부산녹색당은 색다른 목소리로 논평을 냈다. 논평은 "토건 마피아의 앞잡이가 된 소지역 정치세력이 합리적 토론과 대안적인 정책 논의 없이 오로지 자기 지역에 신공항이 들어서야 한다는 막무가내식 소지역주의를 확산시키고 있다"면서 "생태파괴, 지역경제를 멍들게 하는 신공항 논의를 멈춰라"고 주장했다. 대세에서 비켜나 있는 견해지만, 귀담아 들을 부분이 있다.
신공항 논의 과정에서 합리적 토론과 대안적 정책 논의가 배제된 것은 참으로 뼈아픈 부분이다. 부산이 제시한 '대구 K2비행장 이전 지원'이란 상생카드를 대구가 본체만체한 것도 아쉬움이다. 지역 내·지역 간 소통과 상생 협의는 어느 한 곳에 신공항을 유치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정치공학에 치여 우리가 신공항보다 더 큰 것을 잃고 있는 건 아닌지 냉정히 돌아봐야 한다.
대기자 chpar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