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창업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가 IT(정보기술)붐을 이끌며 글로벌 인재들을 끌어모은 것처럼 지금 혁신적인 인재들은 영국 런던으로 몰리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영국은 창업하기 좋은 기업환경뿐 아니라 초등학교 단계부터 비즈니스 마인드를 심어주는 조기 창업교육에 힘을 기울여왔다.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는 2010년 런던에서 데미스 허사비스, 무스타파 슐레이만, 셰인 레그에 의해 창업되었다. 그런데 이들의 경력은 매우 흥미롭다. 허사비스는 일찍부터 취업과 학업을 반복하면서 창업에 어떤 지식과 기술이 필요한지를 정확히 파악한 인물이었다. 한때 체스에 빠진 어린이가 컴퓨터게임 개발자로 변신한 것도, 그 후 뇌과학자로 박사학위를 받고 세계적인 기업을 창업한 것도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15세 고교시절 게임회사에 취업한 허사비스는 수백만 부가 팔린 놀이공원게임 '테마파크'의 공동개발자로 이름을 날렸다. 영국에서는 고교 졸업 후 곧바로 대학에 가지 않고 1년간 취업 등 다양한 사회경험을 쌓는 경우가 많다.
직장경험을 쌓은 허사비스는 컴퓨터공학을 더 공부하기 위해 명문 케임브리지대학에 진학했다. 졸업 후에는 자신의 비디오게임개발사 '엘릭서 스튜디오'를 창업했다. 그러나 나홀로 기업과 게임산업의 한계를 느낀 그는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에 진학해 2009년 인지신경과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듬해 그는 다양한 경험의 동료들을 규합해 '딥마인드 테크놀로지'를 창업했다.
공동 창업자인 슐레이만은 19살 때, 아예 옥스퍼드대학을 중퇴하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전화상담을 해주는 '무슬림 청소년 헬프라인'이라는 비영리기관을 설립한 경험을 갖고 있다. 그는 일찍부터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던 사람으로 학창시절 어린 장애인들을 돕기 위한 병원 휠체어 임대사업 아이디어로 '영 엔터프라이즈' 상을 수상했다.
영 엔터프라이즈는 초·중·고교생부터 대학생까지 단계별로 창업을 독려하기 위한 영국의 교육프로그램이다. 정부와 3000여 기업들의 협조로 해마다 약 35만 명의 학생이 창업지식을 전수받고 있다. 이 프로그램 중에는 5~11살 어린이를 대상으로 '5파운드의 도전'이라는 경연대회도 있다. 학생들은 5파운드의 자본금을 갖고 팀을 구성해 사업 아이디어를 구체화한다. 뒤이어 한 달간 실제 만든 물건이나 서비스를 팔아 본다. 그리고 어린 기업가는 그 이익을 어떻게 유용하게 쓸 것인지를 정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그 위의 연령대에는 '10파운드 도전 프로그램'이 있다. 여러 팀이 경쟁을 벌여 '참신한 아이디어상' '최고 수익상' '사회적 영향력이 큰 창업기업상' 등이 주어진다. 대학생 이상의 과정에서는 학업과 병행해 받을 수 있는 '창업 프로그램'이 있다. 비즈니스 경험을 가진 자원봉사자가 학생들의 후견인이 되어 학교 밖에서의 경험과 네트워크를 쌓도록 도와준다. 학생들은 이를 통해 창의성과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분석을 통해 사업화하는 능력, 자본조달 및 회계, 팀워크와 의사소통 등의 관리능력, 끈기와 순발력 등 오늘날 비즈니스 현장에서 요구되는 다양한 기술과 태도, 행동을 몸에 익히게 된다.
'딥마인드' 창업에는 뉴질랜드 출신으로 스위스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런던에 와 있던 셰그 버그 박사도 참여했다. 그 이후 딥마인드는 케임브리지대학 컴퓨터공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한 데이비드 실버 박사와 대만 출신으로 바둑 프로그램에 능통한 아자 황 박사 등의 인재를 영입했다.
2014년 구글은 창업한 지 불과 4년도 채 안 되는 딥마인드를 4억 파운드(약 6800억 원)에 인수했다. 당시 딥마인드는 알파고라는 상품이 완성되기 이전이라 별다른 매출도 이익도 없던 회사였다. 구글이 거액에 이 회사를 인수한 것은 딥 러닝 분야에서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는 혁신적 창업인재들이 여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낮은 성장률과 높은 실업률로 골머리를 앓는 세계 각국은 경제부진의 돌파구로 창업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창업에는 큰 위험이 따른다. 창업교육이 미약한 우리나라 실정에서 사회경험이 없는 대학생들에게 곧바로 창업에 나서라고 하는 것은 너무도 큰 모험이다. 젊은이들에게 창업을 권장하려면 영국처럼 초등학교 때부터 조기 교육을 통해 철저한 사전준비와 역량, 지식을 갖춰주는 일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IR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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