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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진 칼럼] 회복력이 작동하는 좋은 도시들

전주 개량한옥·종합운동장 투쟁 등 창의적 도시실험

부산시 '옛 해운대역 환수'처럼 후손들 위한 혁신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6-08-25 19:33:18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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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전주를 찾았다. 전주 이씨, 비빔밥, 모주 정도로만 기억되던 전주가 언젠가부터 완전히 다른 도시가 되어 버렸다. 그 중심에 풍남동의 한옥들이 자리한다. 진짜 한옥도 아닌 개량한옥(20세기 초중반에 건설된 집합주택형의 도시한옥)이 상당수임에도 고즈넉한 분위기와 고운 회색빛의 기와 지붕선들이 뿜어내는 아름다움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도시 전통의 현장이 되었다.
전주 한옥들은 문화재가 아니기에 그냥 보존되지 않았다. 용적률에 취약한 한옥의 비효율성에 대응하고, 개발의 광풍을 비켜가기 위한 전주시의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일본 제2의 역사도시로 불리는 가나자와에 공무원을 파견 근무시켜 한옥 보존·관리의 정책과 기술을 습득했다. 한옥을 지키기 위해 호당 5000만 원이라는 당시(10여 년 전) 여건으로는 상상치도 못할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한(韓) 브랜드'를 다루는 부서를 별도로 만들어 한옥과 관련된 전통문화의 총체적인 발전을 도모했던 선진정책도 한몫을 했다. 그래서 한옥 덕분에 한 해 약 1000만 명이 찾는 역사관광도시가 된 것이다. 전주 인구가 65만 정도니 무려 15배가 넘는 관광객이 전주를 찾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상업화로의 변질, 지가 상승, 교통체증과 부족한 숙박시설 등 문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니 한옥지구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이 몰려드니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전주시는 그 문제들을 잡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 중이다. 자본주의사회서는 손 댈 수 없다고 여겼던 '둥지 내몰림'(젠트리피케이션·낙후된 원도심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을 막기 위한 그들만의 상생협약제도에 대한 실험은 참으로 신선하고 놀랍다.

그들이 하고 있는 수십 가지의 창의적인 도시실험을 접하면서 가장 가슴에 와 닿는 것은 1963년에 건설된 전주종합운동장의 복합상업단지 재개발을 막기 위한 법정투쟁이었다. 그 투쟁의 슬로건이 'AGAIN(어게인) 1963!'이다. 궁금했다. 1963년에 제44회 전국체전을 개최하기 위해 종합운동장 건설비의 부족분을 시민 모금, 그것도 환갑잔치 비용, 넝마주이, 구두닦이, 교도소 재소자들까지 한마음으로 성금을 모았던 당시의 시민정신을 다시 회복하자는 것이었다.

"도시는 기억의 집합이고 시민의 삶을 담는 그릇입니다. 모든 것을 허물고 새로 짓는 그런 복제도시가 아니라 전주만의 정체성을 담은 공간으로 종합경기장을 구상하고 싶습니다." 김승수 전주시장의 생각이다. 이미 대형쇼핑몰들로 인한 지역 상권의 해체가 급속도로 진행 중인 가운데, 국비 70억 원을 얻기 위해 대형 쇼핑몰을 입점시켜 연 수천억 원에 이르는 전주의 지역 자본이 그냥 대기업의 수입으로 유출되는 것을 가만히 볼 수 없다는 그의 말이 백번 타당해 보인다. 그래서 그는 시민의 꿈이 담긴 경기장을 부수고 쇼핑몰을 세우려는 대기업과 법정투쟁까지 하며 도시재생의 관점에서 경기장의 기억과 문화가 녹아 있는 새로운 스타일의 미래공간을 시민들과 함께 찾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 동해남부선의 부분 폐선으로 남겨진 해운대역을 민간개발이 아닌 시민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한 부산시의 환수계획이 발표되었다. 정말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코레일로부터 그 땅을 매입하려면 상업개발을 위해 이미 매매계약을 체결한 측과의 법정투쟁 등 여러 고비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해운대역의 제자리를 찾아주기로 한 부산시의 판단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사실 박수 정도가 아니라 대대적인 환영을 해야 하는 일이다. 경직된 과정에서 벌어졌던 오류를 돌이킬 수 있다는, 또 회복할 수 있다는 유연함을 우리도 가지고 있음을 확인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요즘 회복력(resilience)이란 단어가 화두다. 기후변화시대와 시민사회시대에 걸맞은 시대철학이자 도시이념이다. 회복력을 시민사회시대에 초점을 맞춰보자. 왜 회복하려 하는가. 왜 문제가 없었던 원상태로 되돌리려 하는가. 양극단으로 치닫지 않고 모두를 포용하고 다독거릴 수 있는 회복만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균형과 불공정을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회복력은 '모든 얘기를 듣고 합리적인 중심을 택하는 것'이란 의미를 가진 중용(中庸)과 한 점에 맞닿아 있다. 그렇다. 시민사회시대에서의 회복력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잡힌, 즉 빈곤과 약자, 미래와 후손을 배려하는 마음인 것이다. 중용의 가치가 지배하는 도시나 365일 회복력이 작동하는 도시는 어떤 도시일까. 공정과 균형을 모토로 삼으며, 현실에 얽매이기보다 미래의 꿈을 위해 절제하고 포기할 수 있는 그런 도시 아닌가. 지금 당장보다는 다음 세대와 후손들에게 더 큰 혜택을 줄 수 있는 그런 도시 아닌가. 가만히 따져보니 너무나 상식적인 도시다. 삼척동자도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도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리도 간단하고 쉬운 상식적인 도시에 살지 못하고 있다.

도시는 매일 변한다. 새로운 시대적 요구와 수요에 따라 변하지 않으면 버텨낼 수 없는 것이 도시다. 그 변화를 도모하기 위한 계획을 바꾼다는 것. 우리 사회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계획권자의 자존심, 소수(수혜자)의 극렬한 반대, 기존 계획 수립자들에 대한 징벌 등이 그 이유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틀린 것을 뻔히 눈앞에 보면서도 바꿀 수 없고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되돌릴 수 없는 우리의 현실. 우리는 늘 앞만 보고 달려왔다.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은 퇴보와 실패라 여기고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그래서 원래 가졌던 것보다 못해지고 얻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음에도 그 속도를 늦추거나 방향을 틀지 못했다.

이제 우리는 변해야 한다. 혁신해야 한다. 혁신은 IT산업이나 경제 분야에서만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의 살아온 지난 오류와 관습을 깨는 것이 지금 시대의 진정한 혁신이다. 스스로의 혁신이 진정으로 느껴질 그 즈음, 우리 사회에는 회복력이란 엔도르핀이 활성 있게 돌며 중용의 철학이 기본 상식이 되어 있을 것이다.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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