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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시험의 홍수, 미래의 유실 /김찬석

공인중개사 주택관리사…중년들의 자격시험, 10월이 성할 날 없다

전 국민의 수험생화…살림살이 나아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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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토요일은 쉴 틈이 없다. 나들이하기 좋은 계절이라 그렇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당장 다가오는 8일은 손해평가사 2차시험일이다. 15일은 주택관리사 2차시험일. 22일은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고, 29일은 공인중개사 1, 2차 시험이 있다. 한국사시험을 제외하면 40, 50대의 인생 이모작 시험이다. 인디언 표현에 10월은 시냇물이 얼어붙는 달이다. 우리의 중년들에게도 10월은 자격증을 수확해 추운 겨울에 대비하는 시기다.

그런데 수확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올해 공인중개사 응시자가 19만1000명이다. 지난해 수능 응시자 63만1000 명의 30%에 이른다. 응시자 수만 놓고보면 '중년의 수능'으로 불릴 만하다. 그에 걸맞게 올해 응시자의 57%가 40, 50대다. 지난해 합격자 1만4913명 중에도 40, 50대가 65%를 넘었다. 역대 시험 합격률이 20%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5명 중 4명은 공인중개사 재수생이 된다.

공인중개사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다. 자격증을 쥐어도 문제다. 그런데도 올해 응시자가 지난해보다 4만 명이나 늘었다. 노후를 위해 뭔가 해야겠는데 자영업은 퇴직금 말아먹는다고 이구동성으로 말린다. 결국 자격증이다. 자격증 중에서 그래도 만만한(?) 것이 공인중개사다. 인터넷 백과사전의 공인중개사 항목에 이런 내용이 있다. '법률계 자격증 시험 중에서 가장 쉬운 시험으로 수험생들이 가장 많이 응시하고 있다'. 주택관리사 시험에 중년세대가 몰리는 것 역시 상대적으로 공부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중년 세대는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더라도 개업하겠다는 의지가 딱히 없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자니 불안하다. 책을 들여다보는 순간만큼은 불안을 잊는다. 자격증이라도 따놓으면 만약의 경우 호구지책이라도 되지 않겠느냐 하는 자위감도 있다.

신생 자격증이라고 덤벼들 것도 아니다. 손해평가사 시험은 지난해 처음 실시됐다. 기상 재해 등으로 농수산물 피해가 발생했을 때 피해 사실을 확인 조사하고 보험가액 및 손해액을 산정하는 일을 맡는다. 그런데 1회 합격자 430명 가운데 27%인 112명이 장롱면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소속 박완주 의원(더불어민주당·충남천안을)이 그저께 국감에서 공개한 내용이다.

어쨌든 중년은 중년이라서 그렇다고 치자. 내 집 마련이나 자녀 학비와 결혼 등에 번 돈을 쏟아붓느라 노년 대비를 제대로 못 했으니 늦게나마 자격증 시험에 매달린다고 말이다. 그런데 20대마저 그런다면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서울대가 약대 입시 개편안을 내놨다. 대학 2학년 과정을 마친 학생들을 상대로 한 편입 방식을 그만두고 고졸자 선발로 되돌아가겠단다. 예전에는 의대가 이공계 인재들의 블랙홀이었다. 이제는 약대가 그 역을 물려받았다. 이공계 학부생 인재들이 약대 편입이나 진학을 위해 줄줄이 휴학하거나 자퇴한다. 이공계 연구인력이 되기보다는 동네약사로 편하게 살겠다는 것이다.

젊은층을 나무랄 수도 없다. 현직 변호사가 9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고, 외국어고 전교 2등의 인재가 학교를 중퇴하고 9급 공무원 된 것이 자랑인 세상이다. 명문대를 나온 고급인력들이 9급 공무원으로 동사무소 창구에 앉아 민원서류를 떼주는 세상이다. 아르바이트생이나 자판기로 해도 충분한 허드렛일이다.

이웃 일본이 또 노벨상을 받았다. 역대 수상자가 25명이며 그 가운데 과학 분야가 22명이란다. 대단하다. 그런데도 일본 언론은 앞날을 걱정한다. 오늘날의 성공은 장기간의 연구 성과가 축적된 결과다. 그런데 미국에 이어 2위를 자랑하던 국가별 논문발표 건수가 2010년대 들어 중국 등에 밀려 5, 6위로 떨어졌다. 그 결과가 10~20년 후 노벨상에서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다.

일본은 현재의 준비가 부족하다며 미래를 걱정한다. 우리는 장래에 대한 준비가 없다며 현재를 걱정한다. 어른아이 없이 죄다 당장 먹고살 것만 챙긴다. 아들은 수능시험장으로 가고, 아버지는 자격증 시험장으로 가는 나라. 자격증 시험으로 학교가 쉴 틈이 없는 나라. 전 국민이 이토록 시험에 매달리면 살림살이도, 노후도, 국가도 나아져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미래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붉은 여왕이 말하는 아무리 힘껏 달려도 제자리 걸음인 사회다.

정부가 얄팍하다. 중년들의 불안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이런저런 자격증을 쏟아낸다. 시험을 통해 중년들의 불만을 해소하고, 일자리 창출 성과로도 잡는다. 그 틈바구니에서 돈을 버는 이는 자격증 시험 대비 학원이나 인터넷 강의 사이트, 교재 출판사들이다. 시험을 주관하는 산업인력관리공단은 땅 짚고 헤엄치기다. 자격증 1차시험 평균 수수료가 2만 원이다. 재주는 제주도가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 정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수험산업을 운영하는 모양새다. 나라가 말이 아니다.

수석논설위원 chans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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