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사자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때 모기 한 마리가 날아와 콧등을 찔렀다. 화가 난 사자는 모기를 잡으려 자기 콧등을 쳤지만 허사였다. 모기는 사자의 온몸을 물어뜯었다. 사자는 연거푸 주먹을 쳤지만 얼굴과 몸만 피투성이가 될 뿐이었다. 지친 사자가 결국 쓰러져 항복했다. 의기양양해진 모기는 숲속을 날아다니며 자랑하다 거미줄에 걸려 먹잇감이 되고 말았다.

'최순실 대란'은 이솝우화의 사자와 모기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그러면 모기는 누굴까. 대략 최순실 정도로 짐작할 것이다. 그러면 사자는? 이 부분에서 좀 막연하다. 사자를 대한민국이라 풀면 어떨까. 모기 한 마리에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진 대한민국. 어쩌면 그 모기는 최순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면 누구? 일단 상상에 맡긴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심각한 일은 뭘까. 물론 분노의 초점이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한데 그걸로 끝일까. 더 큰 문제는 거미줄에 걸린 모기가 아니다. 만신창이가 된 사자다. 이번 사태는 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만의 비극이 아니다. 대한민국 70년이 쓰러진 것이다. 쌓이고 쌓인 적폐가 와르르 무너졌다.

참담하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말이다. 사과와 감회는 울림이 없었다. 인연, 특정 개인의 이권, 위법 행위라? 책임을 회피하고 국가 대란을 개인사로 치부하는 몰이해, 경제와 삶에 도움이 될 일이란 허망한 인식을 드러냈다. 국정이 중단돼선 안 되며 소통하겠다는 말에선 문제의식을 찾을 수 없다. 버티는 건 나라를 망치는 일이다. 다 놓아 버리고 2선으로 후퇴하면 그만인 것을.

국민은 모든 사태가 대통령에게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다. 이번 일이 나라를 망가뜨렸다고 본다. 하야를 요구하는 건 그런 이유다. 한데, 국정은 내가 맡겠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다. 5%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그렇다. '이게 나라가?' 국민의 물음은 절망의 다른 표현이다. 온 세계가 라스푸틴이니, 스벵갈리니 대한민국을 조롱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외치니, 내치니 하는 자체가 허튼 소리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등장하는 예수와 유다의 모델 이야기는 흥미롭다. 교회의 성가대원을 예수 모델로 삼았는데 유다의 모델을 찾지 못해 세월을 보냈다. 수소문 끝에 모델을 찾아 그림을 완성했다. 한데, 그 두 모델은 같은 사람이었다. 어제의 대통령과 오늘의 대통령은 다르다. 같은 사람이라 우긴다 하여 될 일일까 싶다.

정작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현상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작용이다. 측근 비리는 늘 있어온 일이다. 이번엔 대통령이 그 중심에 있고 대한민국의 뿌리가 흔들린다는 점이다. 위법 행위는 법대로 징치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한 번 망가진 나라의 시스템은 복원이 어렵다. 작용이 멈추면 모든 게 끝이다. 나라의 근간이 황폐화되고서야 더 이상 무엇이 남을까.

황폐상을 한 번 보자. 청와대는 대통령의 개인 용병으로 전락했다. 최순실이 국정을 농단하며 권력을 휘두르는 사이 그들은 눈을 감고 입을 닫았다. 기업을 후려치고 사태를 호도하는 데 앞장섰다. 아예 숨은 권력의 심부름꾼, 비서, 운전수로 전락했다. 청와대는 국가 최고 권력기관이다. 온갖 이견과 이해 상충을 조정해 나라를 이끌어가는 두뇌다. 그 두뇌는 지금 뇌사 상태다.

정부라고 다를까. 최순실의 딸은 온갖 특혜의 산물이었다. 학사 관리와 훈련 등에 국가 권력이 동원됐다. 그러는 동안 모두가 침묵했다. 불의에 대한 침묵은 암묵적 동조로 유죄다. 동계올림픽은 물론이고 미르, K스포츠 재단의 무법 천지에 공범 역할을 했다. 심지어 대기업 사주가 괘씸죄에 걸려 경영권과 기업의 운명이 갈렸다. 정부와 관의 책임은 엄중하다.

여당은 더 가관이다. 지금이 당 대표가 물러납네, 맙네로 다툴 시기인가. '대통령의 국정을 뒷받침하는 데 당력을 집중하겠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취임 일성이다. 세상에, 공당의 대표인지, 대통령 비서실장인지…. 지금 객석에선 야유만 가득하다. 연극을 망친 건 주연만의 탓인가. 여당 대표, 친박근혜계는 책임을 져야 한다. 몰랐다? 그게 말이 될까. 청와대든, 정부든, 여당이든 책임질 자 물러나야 사태가 해결된다.

야당이 주장할 건 하야가 아니다. 법치의 탈을 쓴 인치다. 인치의 역사를 여기서 끊어야 한다. 행동으로 보여야 할 건 거리 투쟁이 아니다. 흔들리는 나라의 근간을 지탱하는 일이다. 이미 힘은 야당에 있다. 무너진 삼권분립, 견제와 균형, 경제 불균형, 누더기가 된 국격, 망가진 국가 시스템…. 그런 걸 고민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건 날선 비난이 아니다. 이미 엎어졌는데 밟는 건 무의미하다. 어떻게 다시 국가를 일으켜 세울 것인가. 그런 원모심려가 있어야 한다. 가장 넘기 어려운 산은 문턱이라고 한다. 그 턱이 삶과 죽음을 가르는 선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그 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논설고문 aiwi@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