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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부즈맨 칼럼] '청와대 게이트'와 언론보도 프레임 /양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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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6-11-08 19:04:11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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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가 남긴 유명한 명제다. 사람은 언어를 통해 생각하고 사고한다는 의미다. 사실 사람은 실제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고 경험하지 않는다. 언어를 통해서 인식한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사회현상을 인식하는 주된 경로는 언론이다. 따라서 언론의 언어 선택은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언론이 특정 사안을 다루면서 어떤 언어나 이미지를 선택하는가를 두고 언론학에서는 보도의 '프레임'(frame)이라고 한다.

언론은 자극적인 언어를 활용한 강렬한 프레임을 선호한다. 국민의 뇌리에 깊이 박히기 때문이다. '쓰레기만두' 사태가 쉬운 예다. 2004년에 일어난 이 사태는 많은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폐기해야 할 중국산 단무지를 재료로 쓴 만두가 대량 유통됐다는 언론보도가 시발점이었다. 그 후 만두 소비가 급감하면서 만두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했다. 하지만 이후 식약청이 해당 만두에 큰 문제가 없다고 발표한다. 이어 해당 업체들은 무혐의 판정을 받게 된다. 언론학에서 이 사태는 언론의 선정주의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다루어지곤 한다. 언론은 '만두 업체 위생 불량' 정도로 언급할 일을 '불량만두'를 넘어 '쓰레기만두'라는 표현으로 묘사했다. 1995년의 '고름우유' 사태, 2005년의 '기생충김치' 사태도 거의 같은 맥락이다. 듣기만 해도 식겁하는 이런 용어들은 언론의 선정주의가 결합된 자극적 프레임들이다.

언론보도 프레임에서 본질을 비껴가는 언어선택은 더 큰 문제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가는 사안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2007년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했다. 삼성중공업 예인선이 홍콩 선적 유조선과 충돌해 원유가 유출되었다. 그런데 당시 사건은 '태안 기름유출사고'로 불린다. 대부분의 해양 기름유출사고는 사고 원인을 제공한 선박이나 기업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다. 그런데 유독 이 사건은 그렇지 않았다. 태안이라는 지역명만 강조되었다. 이름을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책임 주체가 불명확해질 수도 있다. 그것이 문제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도 마찬가지다. 언론의 작명은 '두산전자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청와대를 배경으로 한 국정 농단과 국기문란 사태가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다시 한 번 언론보도의 프레임을 생각하게 하는 요즘이다. 의혹이 발생하고 초기에 야당은 이번 사태를 '최순실 게이트'라고 명했다. 많은 언론사도 이번 사태를 이런 이름으로 칭하고 있다. 국제신문의 경우 박근혜 대통령의 1차 대국민 사과 때까지는 '최순실 게이트'라고 쓰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부터는 '최순실 국정 농단'이라고 부르고 있다. 국제신문뿐만 아니라 실제로 많은 신문이 '최순실 국정 농단'이라고 두루 쓰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든 '최순실 국정 농단'이든 최순실을 핵심에 놓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과연 이 사태의 책임 주체가 최순실 개인인 걸까. 검찰이 청와대의 '왕수석'이라고 불리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구속했다. 그런데 안 전 수석은 검찰에서 밝혔다고 한다. 미르·K스포츠 재단 모금은 대통령의 뜻에 따른 일이었다고. 지금까지 알려진 정황만으로도 이번 사태의 핵심에 박근혜 대통령이 있음은 분명하다.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와 관계없이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스캔들의 당사자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11월 4일 대국민 담화에서 이번 사건을 '최순실 씨 사건'이라고 명했다. '최순실 게이트'와 실질적으로 동일한 프레임이다. 언론이 '최순실 게이트'라는 프레임을 유지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고민해보았으면 한다.

청와대의 개입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야3당은 이번 사태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고 부르는 데 합의했다. 사태의 책임 주체를 명확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훨씬 나은 작명이다. 하지만 이번 국기문란과 국정농단이 박 대통령과 최순실이라는 두 인물에서 그치는 것 같지도 않다. 어쩌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이름도 본질에 완벽하게 접근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다. 대형 스캔들에 주로 붙는 '게이트'란 말은 본디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왔다. 이때 워터게이트는 호텔 즉 건물 이름이었다. 이번 사태를 '청와대 게이트'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닌지도 모르겠다.

경성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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