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2014년 2월 "파벌주의, 줄 세우기, 심판 부정 등 체육계 저변에 깔린 부조리를 밝혀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에 체육계에는 강한 자정의 움직임이 일어나는 듯했고, 김종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위원장을 맡은 '스포츠 4대악 신고센터'가 개설됐다. 그해 여름, 고교 축구선수 학부모 수십 명에게 서울 소재 대학 체육 특기생으로 자녀를 입학시켜 주겠다며 11억7000만 원을 받아 가로챈 전직 대학 축구감독, 대학교수, 브로커 등 22명이 입건되었다. 이러한 체육계 입시 비리는 그 이전, 이후에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으며, 지금도 체육 특기생 입시와 국가대표 선발 등에 금품이 오가며 부정이 난무하고 있다.
스포츠 꿈나무라면 누구나 국가대표를 꿈꾼다. '국가대표'라는 이름처럼 국가를 대표해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과 같은 국제대회에 출전해 좋은 결과를 거두면 영광스럽기도 하거니와 연금과 포상금 그리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커다란 혜택, 바로 병역 면제까지도 받을 수 있다.

또한, 국가대표 경력은 대학입시에도 커다란 가산 요인으로 작용한다. 체육 특기생 제도가 있는 대부분 대학이 수시전형에서 국가대표 상비군 청소년대표 출신 학생을 우대하며, 국제대회에서 메달까지 획득했다면 합격의 길은 더욱 가까워지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각 종목의 연맹은 국가대표 선발 권한을 갖고 있다. 주요 세계대회를 앞두고 대표 선발전을 개최해 순위대로 뽑기도 하지만, 대개는 연맹에서 선수의 전년도 성적과 성장 가능성 등을 고려해 국가대표를 선발한다. 실력이 좋은 고등학교 1, 2학년 선수들은 대학 진학을 해야 하는 고3 선수를 위해 전국체전 출전이나 국가대표 자리를 양보하라는 부탁 내지는 강요를 연맹 관계자들에게 받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녀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국가대표 선발이 무엇보다 간절한 학부모들이 연맹에 무조건 잘 보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비단 선수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국가대표 감독, 코치를 선발하고 임명하는 것 역시 연맹이다. 따라서 감독과 코치들도 연맹에 '충성'해야 한다. 연맹의 요구를 거역하는 것은 자리를 내놓아야 함을 의미한다.

모든 종목이라 할 수는 없지만 많은 종목의 코치는 국가에서 받는 급여와 훈련비 일부를 연맹에 헌납하는 관행을 따르고 있다. 특히 국가대표팀 외에 맡은 소속 팀이 있는 감독이나 코치는 월급을 중복해서 받으니 둘 중 하나를 연맹에 고스란히 낼 것을 강요받는다.

연맹은 소속 선수와 회원을 징계하거나 자격 정지, 또는 영구 제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이는 곧 선수, 코치, 심판의 목줄을 죄는 막강한 힘을 지녔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체육계 내의 갈등과 부조리를 알고는 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모두 쉬쉬하고 넘어가는 오랜 관행과 비리들을 이제는 수면 위로 끄집어내 공론화시켜야 한다. 힘 있는 부모와 막강한 연맹의 도움으로 실력이 안 되는 학생이 '국가대표 역할' 잠깐 하고 대학에 진학하고, 그 대학에서는 교수들이 합심해 좋은 성적을 주고 졸업을 시켜 준다.

이러한 체육계의 문제로 피해를 보는 것은 어린 스포츠 꿈나무들이다. 파벌과 갈등과 비리를 어릴 때부터 보고 자라며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정정당당한 스포츠 정신을 요구할 수 있을까? 부모와 연맹의 결탁으로 다른 학생들의 기회를 빼앗아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의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인격은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까? 그들은 결국 승부 조작, 불법 도박, 금지약물 복용 등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스포츠에는 꿈과 감동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 스포츠에는 꿈이 없다. 대학 진학이라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목표 그리고 금메달 수와 권력 키우기라는 연맹의 목표만 있을 뿐이다. 각종 부정부패 사건에 휘말린 작금의 스포츠계 상황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임을 우리 모두는 직시해야 할 것이다.

동서대학교 레포츠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