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당나귀가 소금자루를 지고 냇물을 건너다 빠지고 말았다. 허우적거리다 겨우 물을 건너니 짐을 벗은 듯 가벼웠다. 며칠 뒤 당나귀는 다시 소금짐을 지고 냇물을 건너면서 일부러 빠져 소금을 녹여버렸다. 소금장수는 이번엔 솜을 가득 지워 냇물을 건너게 했다. 당나귀는 또 다시 풍덩 넘어졌으나 이번엔 달랐다. 물 먹은 솜을 지고 죽을 힘을 다해야 했다. '이솝우화'의 한 장면이다.

최순실 사태를 맞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권력의 단맛이 가져다준 말로다. 당나귀의 우화에서 보듯 단맛의 끝은 비극이다. 국정 농단을 주도했든, 그걸 도왔든, 또는 곁불을 쬐었든 결말은 추락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현상이 아니라 본질이다. 우선은 청와대부터 보자. 대통령 집무실은 운동장만 한 크기에 책상과 회의용 탁자만 덩그렇게 놓였다. 타인을 위압해 권력의 권위를 높이기 위함이다. 10보 거리 내 접근을 허용하지 않은 진시황을 연상시킨다. 참모들의 방은 집무실에서 무려 500m. 장관급 참모들이 보고하려고 허겁지겁 뛰어가는 꼴이라니…. 권력 심장부는 왕조시대에 머물러 있다.

대통령은 어둠 속에서, 침묵으로 세상을 지배했다. 암흑과 침묵은 권위주의의 두 얼굴이다. 1년을 봤더니 일정 없는 날과 해외 순방이 절반이었다. 그러고도 대면 보고는 기피했다. 세월호 침몰로 국민의 생명이 경각에 달린 7시간. 비서실장도, 국가안보실장도 대통령이 어디 있는지 몰랐단다. 대통령의 소재를 모른다? 이게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국가 비상사태다.

권위주의 시대의 구조와 행태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아예 구시대를 청산하는 건 어떨까. 청와대는 박물관으로 개조해 미래의 거울로 삼아야 옳다. 그러면 청와대는? 이름도 바꾸고 기능도 뜯어 고쳐 딴 데로 옮기면 된다. 서울은 비좁고 하니 차제에 세종시로 가면 될 듯하다. 이미 지력이 쇠했으니 천도라도 해야 할 판이다.

청와대의 권력 구조도 기억해야 한다. 김영한 전 정무수석의 비망록에는 권력 핵심부의 행태가 고스란히 담겼다. 세월호 7시간, 통진당 해산과 헌재 대책, 예술계 좌파 대응, 종교인 사찰…. 7개월 200쪽의 기록은 검찰, 법원, 헌재, 정부부처, 언론, 기업 대책이 망라된 권력의 속살이었다. 메모의 내용은 공작정치의 방아쇠가 어디인지 드러낸다. 곰팡내 나는 진실이 그 속에 있다.

이번엔 또 대법원장 사찰 문제까지 불거졌다. 국가 권력기관의 합작품일 텐데, 사찰이 아니라 동향 보고라 한다. 청맹과니가 손금 보는 꼴이다. 최순실 PC와 관련한 위증 모의 논란, 세월호 수사 방해와 보복 인사, 현직 부총리급 인사 정윤회에 7억 뇌물설…. 논란과 의혹이 끝이 없다. '권력과 모략으로 얻은 부귀와 명예는 화병의 꽃처럼 오래 가지 못한다.' 채근담 이야기를 기억해야 한다.

보수의 타락도 잊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을 등에 업고 권력을 전횡한 그들은 버티기로 일관했다. 7월 말부터 게이트 조짐을 보이더니 10월 24일 최순실 PC 보도로 결정타를 맞았다. 대통령의 수차례 사과에도 그들은 꿈쩍도 않았다. '혁신과 통합'을 건다짐하더니 또 다시 친박계를 새 원내대표에 앉혀 부아를 돋우었다. 환하게 웃는 이정현 전 대표의 모습은 새누리당의 현주소다. 갈 때까지 가겠다, 그런 이야기밖에 더 될까. 물에 빠진 솜 진 당나귀가 끝까지 그걸 지고 가겠단다.

그런데도 주저하는 비박계는 또 무엇하는 사람들인지. 이번엔 소금이 아니라 솜을 지고 냇물을 건너겠다고? 당 재산 565억 원, 당원 300만 명은 솜이다. 재벌 등쳐 만든 돈이라니 당장은 달콤하지만 결국은 몸을 망친다. 이대로 가다간 모두가 개구멍받이 신세다. 건더기 먹은 놈이나, 국물 먹은 놈이나 뭐가 다를까.

길을 잃고 나서야 자신을 찾는다고 했다. 새누리는 그것조차 모른다. 당 윤리위원회가 대통령의 징계를 추진하자 위원을 친박계로 교체하는 잔꾀를 부렸다. 위원들이 전원 사퇴하고 사무처 직원들이 당무를 보이콧해도 콧방귀다. 거미줄로 동여 맨다 하여 얼음집이 무사할까. 새누리에, 친박에 민주주의를 논하는 건 거북이 털을 구하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인가.

이제 아니다는 이야기는 그만 끝을 내자. 세월호 신속한 현장 지휘, 최순실 국정 개입 1% 미만, 최순실은 주방내각, 이권 개입 몰랐다, 헌법상 연좌제, 탄핵은 증거 없이 이뤄진 것…. 모두 합치면 무죄란 이야기. 대통령은 법률 반격, 국무총리는 권한 반격, 새누리당은 당권 반격이다.

'아니다 송'은 듣기에도 지겹다. 이건 이렇다, 이렇게 하겠다고 이야기를 하라. 이다는 없고 아니다만 반복하니 국민을 지치게 만든다. 지구전은 그들의 전술이다. 그러니 지치지 말자. 천천히 걷는 자에게 먼 길은 없다. 개미는 아흔아홉 번 넘어진 뒤에야 보리 한 알을 얻는다고 했다. 참된 민주주의라는 보리 한 알은 그렇게 얻기 힘들다.

논설고문 aiwi@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