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정치권만 애가 탄다. 애초 예정된 오는 12월보다 한참 당겨져 선거가 치러질 가능성이 커지는 등 2017년 대선 바람이 일찍 분 탓이다. 대권 후보군과 그 주변 인맥들은 사활을 걸고 표심 얻기에 주력하고 있다. 사상 초유의 여당 쪼개기로 새 정당도 출현했으며, 때가 되면 정당 간 뭉치기도 진행될 전망이다. 5년마다 반복되는 대한민국 정치권력의 새판짜기는 이미 시작됐다.

이번 새판짜기에서 부산 정치권의 변화상에 주목한다. 1990년 2월 여야 3당 합당으로 출현한 민주자유당(민자당) 중심의 정계개편이 이뤄진 이후 굳어진 부산의 1당 집중체제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그동안 부산은 지역사회는 물론 공직사회와 경제계 등 모든 분야가 정치권력의 1당 집중체제를 근간으로 돌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지금의 야당이 1997년 새정치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자민련) 공동전선인 'DJP연합'과 2002년 노무현-정몽준 대선후보 연합을 통해 통치권력을 쥔 뒤 10년간이나 여당으로 군림했어도 그 근간은 흔들리지 않았다.

민자당이 1996년 1월 신한국당으로 간판을 바꾼 뒤, 1997년 11월 한나라당, 2012년 2월 새누리당으로 당명이 변경되는 부침을 겪어도 부산 정치권력의 1당 집중체제의 생명력은 질기게 유지됐다. '십 년 가는 권세 없고 열흘 붉은 꽃 없다'다는데도, 30년 가까이 부귀영화를 누린 셈이다. 이 현상이 득이 됐든 실이 됐든, 지금 와서 그 잘잘못을 따질 계제는 아니다. 어차피 지울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부산 정치사의 한 단면이다.

이면에는 부산만의 특수성을 남겼다. 정치권에 진입하려는 인사 중 특정 정당만 바라보고 공을 들이면 그 자질과 상관없이 정치인 반열에 오른 경우가 허다했다. 부산시장과 기초단체장, 시의회와 일선 기초자치단체 의회 구성도 권력집중이 된 터라 행정기관은 한 당의 눈치만 제대로 살피면 견제받을 일이 없어 좋았다. 지역 경제인들은 정치권력 구도가 시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서울 등 수도권과 달리 정치권 보험 들기가 단순해 '영업활동'이 한결 수월했다. '미워도 다시 한 번'에 익숙한 유권자들은 선거 때마다 선택의 고민이 덜한 편이었다면 좀 과한 표현일까.

그 같은 지역 특수성은 광주와 대구, 대전에서도 유사하게 일어나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하지만 부산 정치권의 새판짜기 바람은 예사롭지 않다.

부산의 권력집중 현상에 지난해 4·13총선을 기점으로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다. 대선 시계가 빨라진 올해는 그 질긴 생명력을 다한 느낌이다.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든,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든 부산 특유의 권력집중 구도가 깨지기 직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 수밖에 없다.

지난해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 국회의원이 5명이나 탄생한 것은 예고편이었다. 일부는 지난 총선 결과를 놓고 여당의 실정으로 야당이 반사이익을 누렸다는 시선을 던지고 있지만, 선거 결과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리고 본편이 절찬리에 상영 중이다.

본편은 여당 분화에서부터 첫 장을 열었다. 이 땅의 보수 가치를 새롭게 다지겠다는 여당 내 일부 국회의원이 '바른정당'을 선언하고 딴 살림을 차렸다. 부산에서도 5명의 여당 국회의원이 새 둥지를 텄으며, 덩달아 기초단체장과 부산시의원, 기초의원 등이 동참했다. 이제 부산 정치판은 여당, 제1야당, 제1야당에서 분화된 또 다른 야당, 아직 여당 냄새가 가시지 않은 새 야당 등 다자 구도로 재편됐다. 이 구도가 얼마나 오래갈지 당장은 가늠할 길이 없다. 하지만 부산 정치판은 새로운 실험기에 접어들었다.

이제 구청장과 부산시의원 등은 내년 지방선거를 걱정해야 할 판이 아닌가. 이들은 유권자 선택이라는 본선보다 당 공천이라는 예선에 더 치중했던 앞선 선거문화와는 판이한 상황과 맞닥뜨릴 운명이다.

지금의 야권은 그동안 아득한 꿈이었던 자당 후보의 선출직 구청장과 시의원 배출이 현실로 성큼 다가왔다고 자평하는 분위기다. 부산 야권에 사람이 몰린다고 하지 않는가. 시민의 정치적 선택 폭이 넓어질 부산은 지금 정치실험 중이라고 하면 어떨까. 지역사회도 전례와 달리 흐르는 부산 정치권력의 새판짜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으로 본다.

단지 뒷맛이 개운치 않다. 1988년 4월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소야대 구도가 형성된 뒤 민자당이 출현했을 당시 보수연합구도를 구축하려는 목적에서 국민의 의사와 배치되는 위로부터의 정계개편이 이뤄지고, 역시 시민의 의사와 무관하게 부산의 권력 집중현상은 이어졌다. 지금의 새판짜기도 위로부터의 정계개편에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본편 뒤에 이어질 부산의 정치권력 구도 변화를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을 지켜볼 뿐이다.

부산에서 대한민국 정치 발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실험이 진행됐으면 좋겠다.

편집국 부국장 겸 뉴미디어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