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쳤는데도, 어른들은 "또 거짓말일 게다"며 묵살했다. 그래서 양 떼는 유린되었고, 소년의 거짓말은 그 유책 사유로 간주되었다. 알고 보면 그게 아니다. 이번에는 소년이 거짓말한 것이 아니었다. 전에 거짓말했지만, 그 고의성이나 문책은 그때 따졌어야 할 일이니 그동안 방치한 책임은 마을 사람들에게 있다. 더구나 늑대가 진짜로 나타났는데도 외면한 책임은 크다. 그동안 우화는 독자를 오도해 온 것이다. 지금 그 후유증 하나가 국정에서 나타나고 있다.

신년 초 10여 명의 국회의원과 100여 명의 가뭄 전문가가 모여 '또 가뭄이 올 것 같다'는 세미나를 열었다. 가뭄이 왔다고 요란을 뜬 적은 전에도 많았다. 2012년과 2015년 강수량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심한 가뭄이라고까지 했다. 그런데 실제 피해는 제한 급수지역이 생긴 것과 4대강의 보에서 지역 댐으로 물을 옮기는 공사가 시작된 정도뿐이었다. 마치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한 꼴이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4대강 정비사업 덕분에 피해가 안 났다는 해석도 있었고, 그 사업을 미화하기 위해 가뭄을 과대 포장한 사례라는 해석도 있었지만, 양쪽 다 증거가 없었다.

이런 일들은 가뭄을 객관적으로 진단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생긴다. 그동안 비가 얼마나 적게 왔는지를 가늠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제시되었으나, 모두 과학적 판단이 되진 못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가뭄뿐만 아니라 홍수 산사태 등의 많은 수자원 재해의 이론이 발달하지 못한 원인이기도 하다. 가뭄의 사전적 정의는 '강수량이 적어서 물이 평균보다 모자라게 되어 피해가 생기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얼마 동안의 강수량을 따져야 하는가? 어제 온 빗물은 많이 남아있고 작년에 온 빗물은 적게 남아있는데 이것을 어찌 고려하는가? 이 두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계산한 수자원 지수들은 허구일 수밖에 없다. 이 점을 제대로 인식한 흔적은 학계에서나 관계에서나 만나기가 어렵다.

가뭄 토론회의도 가뭄이 심할 때 구색을 갖추는 형식 수준이었다. 6년에 한 번 정도 열렸으니 다음 가뭄이 나타날 때면 이미 정부 담당자가 바뀌어 있다. 한 번도 전후 연결된 종합장기대책이 수립된 적이 없다. 목동이 사슴을 보고 늑대라고 소리치곤 하는데도 그냥 방치해 온 것이나 다르지 않다. 이런 상태에서 건국 이래 최초로, '가뭄이 발생했다'가 아니라 '발생할 것 같다'는 주제의 토론회가 열린 것이다. '늑대가 정말로 나타났다'는 고함과 비슷하다. 우화처럼 모두가 외면한다.

지금 경기도 이천과 충남 보령지역에서는 2013년 이후 연속 4년간 장마가 실종되는 유례없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2017년의 장마가 늦어지기라도 하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최근의 기후변화와 더불어 특이하게 겨울 강수량이 늘어난 것도 수상하다. 역사도 들추어 보자.

가뭄으로 국정혼란이 왕조 멸망까지 이어진 사례는 많고도 많았다.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니다. 1901년 전후에 29년 동안 산발적으로 발생한 가뭄과 유관하게 대한제국은 멸망으로 몰렸고 중국에서는 수천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했다. 당시에 태양흑점이 극감했었는데 지금 다시 급감하고 있다. 그렇게 124년 간격으로 극대가뭄이 있었는데, 지금 그 주기가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6년 주기로 보면 2018년에 한국 어딘가에 심한 가뭄세력이 추가될 확률은 80% 이상이다. 이런 이론들을 깡그리 다 무시한다고 해도, 대한민국은 가뭄이 빈발하는 나라이니 가뭄은 반드시 다시 발생한다. 시기가 문제 될 뿐이다.

어느 국가나 매년 발생하는 홍수에는 잘 대비하나 6년마다 발생하는 가뭄에는 대비가 거의 없다. 100여 년 간격으로 발생하는 가뭄에는 거의 무방비 상태이면서 '또 늑대냐?' '내 임기 중에만 무사히' 또는 '100분의 1의 확률'이라며 외면한다. 그래서 대한제국이나 마야문명과 같은 극단적 결과도 발생했다. 지금까지 모든 가뭄은 이솝우화처럼 '불행한 앤딩'이었다. 미래의 가뭄 또한 같을 것이다. '가뭄의 객관적 진단'이 안 되는 것이 근본 이유이다.

우선 이 진단만이라도 정부가 유권해석해 놓으면 일이 풀리기 시작할 것이다. 현존 가뭄지수들을 모아 각각의 물리적 의미와 장단점을 비교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아니, 이미 답은 나와 있다. 검토는 안 하면서 '또 늑대냐?'고 비웃기만 하는 것이 문제다. 늑대 피해가 마치 목동만의 책임인 양, 2000년 이상이나 사람들을 속여 온 이솝우화 때문으로 돌리자.

부경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