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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부즈맨 칼럼] 숫자에 가린 본질에 주목하자 /우동준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01-31 18:44:37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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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가방 속의 컵라면과 나무젓가락·스테인리스강 수저.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아니, 고작 그게 전부야?" 읽다 만 소설책, 쓰다 만 편지, 접다 만 종이학, 싸다 만 선물은 없었네.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덜 위험한 일을 택했을지도."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망각은 결코 이성 능력의 부족이나 단순한 타성력이 아니라, 삶에 필요하고 삶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라 말했다. 그렇다. 잊는다는 것은 삶을 가능케하고 동시에 생을 살아가기 위한 신의 축복이면서 내 숨을 조여오던 아픔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출구이기도 하다. 이토록 개인에게 있어 잊음은 진정 축복이지만 때때로 한 사회의 맥락과 함께할 때의 '잊음'은 그 내포된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 특히 우리에게 있어 '잊음'은 지난 4년을 통과하며 자유롭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는 단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뒤덮었던 포스트잇에 빼곡히 적혀있던 말이다. 그저 도시철도를 이용했을 뿐인 시민들은 왜 포스트잇에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적었을까. 그것은 지켜줄 수 있었음에도 바삐 지나쳤던 과거에 대한 미안함이며, 스크린도어를 수리하기 위해 바삐 뛰어갔던 청년노동자에게 밥은 먹었느냐는 안부 인사보다, 더 빨리 고치지 않는다고 불평했던 과거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 테다. 이렇게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 안에는 내겐 널 지켜줄 힘이 있었다는 '가능'과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지 못했던 '거리', 이 두 가지의 함의가 담겨 있다.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덜 위험한 일을 택했을지도." 이 구절이 담긴 모두의 시는 작년 6월 8일 구의역 참사 이후 스크린도어에 붙여져 있던 심보선 시인의 시 '갈색 가방이 있던 역'의 일부이다. 시인은 괴로워하며 시를 썼고, 그 괴로움을 잊지 않기 위해 시를 썼다. 시민들은 울음과 자책이 담긴 포스트잇을 붙였고, 서울시는 늦게나마 포스트잇을 하나씩 떼어내며 도시철도 안전 관련 업무를 하나씩 시 직영체제로 전환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고작 8개월이 지난 부산의 모습이다.

부산교통공사는 2000억의 적자를 이유로 '외주화'와 '인력감축'을 골자로 한 재창조 프로젝트를 선언했다. 국제신문 1월 20일 자 3면 기사에선 "정규직 일자리는 줄어들지만 아웃소싱을 통해 일자리 수는 그대로 유지된다"는 부산교통공사의 담담한 답변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경영효율 극대화와 재정안정을 이유로 행해졌던 그간의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를 잊지 말아야 한다. 기획재정부에서 확정한 '2017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편람'을 살펴보면 모든 공기관 공통으로 청년미취업자 고용 등 채용확대 노력,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경력단절 여성 고용, 합리적 노사관계 등과 관련된 지표의 배점을 확대한 걸 볼 수 있다.

숫자는 때때로 본질을 가린다. 부산교통공사가 동일하다고 말하는 일자리의 '숫자' 안에는 김 군을 쉬는 시간 없이 현장으로 보냈던 외주화 업무환경이 담겨 있고, 1년 단위의 고용 계약서가 빽빽이 담겨 있으며, 2000억이란 압도적인 적자 금액 안엔 65세 이상의 무임승차 금액 1500억이 담겨 있다. 수는 편집된 결과이고 깔끔하고 압도적인 숫자일수록 본질은 감추어진다. 우리는 드러난 숫자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선을 가져야 하며, 언론은 숫자 안에 감춰진 진실에 집중해야 할 책임이 있다. 국제신문은 지난 한 달간 사흘 간격으로 관련 내용을 균형 있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도해왔다. 사실을 통해 '거리'가 좁혀지고, 문제가 드러남을 통해 해결 '가능'한 지점이 생기면 더는 잃음이 아닌 '지킴'이 가능해진다.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덜 위험한 일을 택했을지도." 다시 시인의 시로 옮겨간다. 시인이 말하고 싶던 것은 결국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서로의 여유를 되찾는 동시에, 삶의 위험을 줄여나가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에게 위험한 일을 하고 싶지 않으면 네가 더 많은 능력을 갖추라는 말은 이제 한물가고 지겨운 레퍼토리다. 시인의 마지막 구절은 이러하다. "누군가 제발 큰 소리로 '저런!'하고 외쳐주세요! 우리가 지옥문을 깨부수고 소년을 와락 끌어안을 수 있도록." 끊임없는 보도와 지속적인 시민의 관심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외치는 "저런!"이란 큰소리라고 믿는다. 많은 것이 변해야 할 새해가 밝았다.

청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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