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정사상 두 번째인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 두 달이 지났다. 헌법재판소와 국회, 박근혜 씨 측의 법률 대리인단이 치열한 법리 공방을 벌이는 사이에 자천타천으로 대통령 후보군에 오르내리던 분들이 작년 말부터 앞다투어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통상의 대통령 선거가 12월 중순에 치러졌고, 과거의 대통령 후보들이 선거 출마 의사를 연초부터 이렇게까지 강력하게 밝히지는 않았다는 것을 감안할 때, 아마도 이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고자 하는 분들은 모두 박근혜 씨의 탄핵 인용 가능성을 매우 높게 점치고 있고, 4~5월 벚꽃 선거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선거에 출마하고자 하는 후보는 주로 자문단을 통해 정책을 개발해서 공약화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고, 학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전문성을 공인받은 대학교수 그룹을 활용하는 것 또한 매우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교수들이 어느 정도까지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그동안 이에 대한 많은 의견이 개진되어왔지만 명확한 정답은 없는 듯하다.
교수치고 대통령·국회의원·광역단체장 선거 등에서 후보자들의 러브콜 한두 번 안 받아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러브콜은 단순한 정책 자문부터 당선 후 공직 등용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필자 또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동안 대통령 선거만 5차례, 국회의원·광역단체장 선거까지 합하면 수없이 많은 선거를 경험했는데 그 과정에서 몇몇 후보로부터 정책 자문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워낙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제안을 정중하게 사양해왔지만 자문 또는 자문의 차원을 넘어 공직에 진출하는 지인 교수도 적지 않게 봐왔다.
교수 입장에서 전공 분야에 대한 연구 결과를 국가와 국민을 위해 쓸 수 있다면 제자들을 가르쳐 국가의 동량으로 만드는 것 이상의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어떤 교수가 정책 자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해당 분야에 대해 교수만큼 많이 공부한 사람을 찾기는 힘들 테니 후보 입장에서는 그의 전문성이 절실하게 필요할 것이다. 마땅히 도움을 줘야 한다. 다만, 정책 자문 활동이라는 미명 아래 교육 및 학생지도를 해야 하는 자신의 현 신분을 망각하거나 소홀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이번에는 자신이 도운 후보자가 당선된 후 공직으로 진출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자신이 제안한 정책의 최종 단계까지 책임지고 마무리한다는 차원에서는 바람직할 수 있지만 이 경우는 조직 관리라는 현실적 문제 때문에 단순히 정책을 자문하는 차원과는 다르다. 그동안 교수가 공직에 진출한 많은 사례 중에 성공사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봐서는 아마도 녹록지 않은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교수는 조직 관리 경험이 없어서 관료사회를 움직이는 노하우를 터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한국의 정치 상황을 감안했을 때 그나마도 요령을 터득하기도 전에 자리를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과의 교감에 필요한 정무적 감각 또한 익숙하지 않을 것이고, 이론적으로는 해박하지만 구현에 대해서는 다소 책임감이 결여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공직으로 진출하는 것을 자신의 입신양명에 활용하고자 하는 그릇된 마음이라도 품는다면 박근혜 씨가 등용한 많은 현직 교수 출신 관료가 최순실 국정 농단사태에 연루된 것과 같은 국가적 재앙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대한민국은 직업과 직장 선택의 자유가 있는 나라이니 대통령의 요청에 의해 교수들이 공직에 진출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으리라. 문제는 공직에 진출하는 대부분의 교수가 소속 대학에서 휴직하고 공직에 진출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공직에서 퇴임한 후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본래 소속의 대학으로 복귀하여 다시 강단에 선다. 현직 교수가 공직에 진출하는 것은 본인의 자유지만 소속 대학에서는 퇴직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퇴로가 있다는 것에 안심되어 소신껏 자신의 역량을 펼치는 교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절실함이 결여되어 실험적 또는 전시적인 정책 추진으로 그칠 가능성도 있고, 이런저런 청탁에 휘말릴 가능성도 매우 높다. 따라서, 교수는 자신의 전문성을 자문 형태로는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지만, 현직을 퇴직하고 갈 용기와 각오가 없다면 공직으로의 진출은 삼가는 것이 국가와 본인 모두에게 더 바람직하리라는 생각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가 벚꽃 선거가 되었든, 정규 선거가 되었든, 후보들을 돕는 많은 교수의 활동이 진정 국가와 국민을 위한 책임성 있는 활약이기를 기대해본다.
부산가톨릭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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