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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욕망에 찌든 '트럼프 호텔 인터내셔널' /김미경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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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7-02-21 19:16:26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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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건 참 힘든 일이다.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 트럼프라는 문제적 인물의 존재를 근거리에서 느낀 건 작년 11월의 일이었다. 일 때문에 워싱턴에 도착한 첫날 숙소로 이동하던 중 택시 기사가 '트럼프가 호텔 개관식에 와서 길이 막힌다'고 투덜거렸기 때문이다. 당시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의 치열한 선거운동이 정점에 달한 상황이었다.

개인사업인 호텔의 개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선거유세를 중단했다는 사실에 '이건 이상해도 너무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대선후보라면 승리를 거두기 위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거늘. 정치적으로 책임감을 조금이라도 느꼈다면 그가 있어야 했던 곳은 워싱턴이 아니라 힐러리와 사투가 벌어지던 중서부지역이었다. 만에 하나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사익을 챙기기 위해 정치를 이용할 거란 확신이든 건 바로 그 택시 안에서였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꼭 한 달이 되었고 그동안 설마, 설마 하던 공약들이 실현되면서 미국은 힘만 센 웃기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주로 트위터를 통해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편협하고 무지한 지도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지구촌 곳곳이 숨을 죽이며 바라보고 있다.

멕시코 국경의 장벽 설치와 그 비용을 멕시코에 부담시키겠다는 트럼프의 반(反) 이민정책에 저항하는 '이민자 없는 날' 시위가 2월 16일 워싱턴, 필라델피아, 댈러스, 오스틴 등을 포함하는 미국 전역에서 일어났고 저임금과 장시간노동으로 미국경제에 공헌하고 있는 이민자들을 범죄자로 취급하지 말라는 슬로건이 곳곳에 나붙었다.

한인사회도 이런 한파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애틀랜타 지역의 경우 15만 명에 달하는 한인 인구의 3분의 1이 불법 이민자로 알려져 있고 그중 경중에 상관없이 범죄기록을 가진 한인들이 대낮에 경찰에 잡혀가서 강제송환 당하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과 함께 한인사회 전체가 위축되고 있다.

대통령령으로 내려진 중동 7개국 출신자들의 미국입국 금지령도 세계 곳곳을 흔들어 놓았다. 대테러 조치의 일환이라는 명분도 테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제재대상국에서 빠지면서 트럼프가 개인적으로 투자한 나라들은 봐준다는 의혹이 제기돼 설득력을 잃고 있다.

졸지에 공항에서 구금당하고 승선이 금지된 수많은 사람 중에는 미국에서 유학 중이거나, IT나 의료분야에 종사 중인 전문직, 그리고 응급수술이 필요한 환자들도 포함되어 있어 트럼프의 조치가 미국의 헌법위반일뿐만 아니라 심각한 인권침해행위였고 더 나아가 중동지역의 무슬림 과격파들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어처구니없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저질러진 트럼프의 실책은 그 정도만이 아니다. 우방인 호주 총리와의 정상회담 중에 전화를 끊어버리는 결례를 범했고, 일본 총리의 방미 중에는 보안 조치가 없는 열린 공간에서 군사기밀이 논의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런 변별력 없음은 측근들도 예외가 아니다. 트럼프의 딸이 경영하는 의류브랜드를 보좌관이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정말 예쁘니 한번 사보세요'라고 띄우는가 하면, 주미 러시아대사와의 비밀회담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보좌관은 해임을 당했다. 점입가경이다.

석 달 만에 다시 오게 된 워싱턴에서 가장 궁금했던 건 트럼프 등장 이후의 변화였다. 가장 먼저 들러본 백악관 주변의 모습은 말 그대로 살풍경이었다. 취임식 연단 해체 작업이 1달째 계속되고 있어 정원 앞의 블록 전체가 막혔고 다음 블록의 공원마저 방문객들이 접근할 수 없게 철조망으로 싸여 있었다. 가시 박힌 철조망과 경비대에 가려진 백악관은 멀고도 멀게만 보였고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을 일들과 그 파장을 생각만 해도 눈앞이 캄캄했다.

트럼프 호텔 인터내셔널은 백악관에서 도보로 10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있다. 넓은 로비의 금색과 청색의 모티프는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하우스의 내장을 그대로 베껴와 욕망에 찌든 워너비(wannabe)의 속내를 부끄럼 없이 드러내고 벽에 걸린 텔레비전 화면에 계속 비치는 스포츠 프로는 잘 가려지지 않는 가벼움을 토해낸다. 씁쓸한 뒷맛으로 걸어 나오는 입구 오른쪽에 대통령 무도실(Presidential Ball Room)이라는 간판을 단 별관이 보인다. 씁쓸함이 절망으로 바뀐다.

하지만 아직 절망하기엔 이를지도 모른다. 70세 역대 최고령자 대통령인 트럼프가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명을 달리할 수도 있고, 사익과 공익을 분별하지 못해 탄핵당할 수도 있고, 아니면 아무리 길어봤자 4년 임기로 끝날 수도 있으니. 억세게 운 좋은 트럼프라는 사람의 진짜 운은 그의 삶이 끝나는 마지막의 순간에 달렸지 싶다.

히로시마 시립대 평화연구소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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