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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4차 산업혁명, 누구를 위한 혁명인가 /정철진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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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7-03-07 18:59:03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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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으로 '4차 산업혁명' 이란 단어가 요즘 경제 쪽보다 정치권에서 더 많이 회자되고 있다. 올 대선에선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을 것 같다. 난 이 4차 산업혁명이란 단어를 들을 때마다 속이 편치 않다. 가슴이 탁 막히고 공포 비슷한 감정에 빠져들기도 한다. 난 이 4차 산업혁명을 결코 '혁명'으로 인정할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의 사전적 정의는 '제조업을 비롯한 다양한 산업이 정보통신기술(ICT)과 융합해 새로운 형태의 제품과 서비스 및 비즈니스를 만들어 내는 차세대 산업혁명'이다. 대체 무슨 말인가. 확실한 개념정리를 위해 과거 '산업혁명'이라 불렸던 경제적 모멘텀들을 봐야 할 것 같다.

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을 통한 기계적 혁명을 가리킨다. 18세기 영국의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하면서 방적산업에서 시작된 저비용 대량생산 시기이다. 2차 산업혁명은 1900년대 초, 미국 전역에 전력이 보급된 이후 공장에서 펼쳐진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대량생산 시기를 말한다. 포드자동차 공장을 생각하면 되겠다. 3차 산업혁명은 매우 친숙하다. 컴퓨터와 인터넷 발명을 통한 정보화 혁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아직 3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고 있는 건데, 훗날 2017년 3월은 4차 산업혁명 시대로 분류될 수 있겠다.

그럼 다시 4차 산업혁명의 개념 정리로 돌아가 보자. 난 이에 대해 '3차 산업혁명의 주체인 컴퓨터와 인터넷이 인간의 일상과 혼연일체가 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3차 혁명이 디지털의 시작이었다면, 4차 혁명은 디지털의 완성이다.

가령 비행기에 컴퓨터 자동조작장치를 달아 운행하는 게 3차 혁명이라면 4차 혁명은 드론이 생활에 들어와 택배도 운반하고, 인명구조까지 하는 모습을 말한다. 테슬라의 전기자동차가 3차 혁명이라면, 구글맵과 결합해 혼자 달리고 멈추는 자율주행차는 4차 혁명이다. 인터넷을 통해 의학지식을 습득하고 원격진료를 했던 게 3차 혁명이라면 4차 혁명은 AI 의사인 '왓슨'이 직접 환자를 치료하는 세상이다. 그래서 4차 혁명은 필연적으로 사물인터넷(IoT)과 공존하고, 당연히 AI(인공지능)시대와 만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우린 4차 혁명의 본질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가령 1차 산업혁명을 보자. 혹자는 이때부터 빈부의 격차가 시작됐다지만 그래도 인간을 혹독한 맨몸노동에서 벗어나게 해줬다. 2차 산업혁명은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묶이며 인간의 존엄성이 말살됐다지만 '고용'이란 효용을 줬고, 중산층이란 계층을 만들어냈다. 3차 산업혁명도 비슷하다. 정보화 혁명을 만들어냈고, 금수저가 아니라도 아이디어 하나로 대박을 터트릴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의 4차 혁명은 결코 앞서 3번의 산업혁명과 비슷한 반열에 올려놓을 수 없다. 한 가지 핵심 이유를 말하라면 바로 '노동 소외'이다. 1~3차 산업혁명까지만 해도 혁명의 주체는 인간(노동)이었지만 4차 혁명에서 인간은 완전히 배제됐다. 노동이 힘을 못 쓰니 당연히 고용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창업을 해도 기존 시스템(플랫폼)의 종속체가 돼 버린다. 생활이 편리해졌다고? 이건 단편적인 생각이다. 4차 혁명의 베스트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돈이 있어야 할 텐데 4차 혁명은 노동과 고용을 소외시켜 자본축적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때문이다. 직물기계로, 컨베이어벨트로,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모습을 바꿔가며 '노동'을 야금야금 빼앗아갔던 거대자본은 이제 4차 혁명이란 명분으로 인간 노예화 작업의 마지막 쐐기를 박으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1차 산업혁명 때는 배고파 굶어 죽던 영국의 중북부 직물 공업지대 수공업자들이 한밤에 공장기계를 부숴버린 '러다이트 운동'이 있었다. 컨베이어벨트 시대에도 임계점을 벗어날 땐 어김없이 인간은 존엄성을 외쳤다. 자동차가 뚝딱뚝딱 만들어지는 건 좋지만 그것이 비인간적인 노동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는 '주인정신'이었다.

이제 우리도 새로운 러다이트를 고민해야 한다. 최선은 입법적 접근이다. 전기자율주행차가 대중화되더라도 택시기사는 있어야 한다든지, '왓슨'이 완벽해져도 일정 이상 인간 의사를 고용해야 한다든지, 개인 정보를 유출 또는 악용했을 때는 삼대(三代)를 멸한다는 법률로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이다. 그리고 인간의 노동에 대한 진지한 담론을 시작해야 한다. 더는 하루 4시간만 자고 공부해도 AI보다 더 많은 학습을 할 수 없다. 디지털의 괴물적인 학습능력과 지루한 패턴 플레이, 냉정한 빅 데이터 분석을 깨부술 수 있는 인간 고유의 노동에 대해 고민하고 쟁취해야 한다. 우리가 이런 능력을 갖출 때 디지털도 우릴 두려워할 것이고, 그 뒤에 숨은 자본세력도 한 발 뒤로 물러설 것이라 확신한다.

경제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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