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원전에서 방사선 누출 등 중대 사고가 발생하면 반경 20㎞ 내 주민이 차량을 이용해 안전 지역인 20㎞ 밖으로 대피하는 데 22시간이 걸린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부산, 울산시와 경남 양산시 등 3개 지역 94개 읍·면·동 인구 170만 명이 가족 3명씩 차량에 동승해 대피하는 것을 가정했을 때 걸리는 시간이다. 고리원전 반경 10㎞를 벗어나는 데도 12시간이 걸렸다. 만약 초속 2~3m로 바람이 불 경우 2시간 이내에 20㎞ 밖으로 대피하지 못해 25만 명이 집단 피폭됐다.
민간연구기관인 원자력안전연구소와 환경운동연합이 공개한 '동적 대피 시뮬레이션' 결과는 충격적이다. 영화 '판도라'에서 도로가 주차장이 돼 버리는 현상이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난다니 끔찍하다. 차량 정체로 도로에 갇혀 꼼짝달싹 못하게 된다는 게 연구결과다. 주민들이 빠른 시간 안에 대피할 도로망과 대피소가 턱없이 부족한 데 따른 참사라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원전 측과 자치단체가 연구결과를 부정만 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원전 인근부터 단계적으로 대피가 이뤄지고 대피 시간도 5시간 반 정도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어불성설이다. 실제 상황에서 주민들이 냉정을 유지하면서 대피 순서를 지킬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또 원자력안전연구소의 연구는 폭발사고 30분 후에 경보가 울리는 것을 가정했는데 이보다 더 늦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피해는 오히려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원전 주변에서 시 외곽으로 통하는 도로망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 대피 시간이 늘어지는 건 차량 정체 때문이다. 공포에 질려 있는 주민에게 차량을 놔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하는 건 하나 마나 한 얘기다. 최적의 대피 경로로 빠른 시간 안에 위험지역을 벗어날 수 있는 도로망과 가까운 곳에 몸을 피할 수 있는 대피소를 충분히 설치해야 한다. 이와 함께 주민을 대상으로 한 지속적인 반복 훈련과 교육도 필요하다. 특히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체계적인 대피 시나리오를 마련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