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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칼럼]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을 생각하며

소녀상은 과거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인류의 염원

관광객 왕래 잦은 부산 여객부두에 세워 역사의 장 열리기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03-16 19:16:47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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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역사학자가 인류 역사는 전쟁의 역사였다고 설파한다. 아득한 고대 수렵과 채취로 연명하던 시절에도 내 사냥의 구역과 동패를 지키기 위해 동류(同類)를 죽임에 거리낌이 없었다. 인류가 인류를 인식하고 무리를 지어 정을 나누면서도 다툼은 멈추지 않았고 마침내 대규모 살육으로까지 커져 '전쟁'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니 과연 사실이다. 그러나 한 번 갈라진 사이라고 영원한 적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죽임과 전쟁이 끝나고 채 당사자로서의 기억이 잊히기도 전에 화해의 손을 잡고, 심지어는 동무가 되어 다른 적을 상대하기도 했으니 낯부끄럽기도 하고 죽음과 살아남음이 무의미하기도 하다.
담을 맞댄 이웃이라고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가까울수록 그 나누는 이(利)와 정만큼 화(禍)와 미움도 쌓여 이웃인지 적인지 분간하기 어렵기 일쑤다. 오늘 발등의 불이 된 '사드 배치'에 따른 이웃 중국의 치졸하고 몰상식한 우악스러움은 그 생생한 사례이다. 더하여 진작 불이 붙어 자글거리고 있는 또 다른 이웃 일본과의 갈등은 우리의 손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더 다급한 위험인지도 몰라 안타깝다.

일본의 도발과 악의, 몰염치의 배신은 천 년이 넘는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니 새삼 거론할 바도 못 된다. 더구나 지난 강점기 그들의 패악은 아직 생존하는 체험세대를 통해 완전한 과거에 이르지도 못했으니 사무침이야 여간하겠는가. 그래도 담을 맞댄 이웃이니 화해의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한때 사과 비슷한 언사가 있었어도 이내 그 동생이나 자식이 불거져 염장 지르기를 주저하지 않으니 내민 화해의 손이 머쓱해지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특히 우리의 곱고 착한 누이들을 감언이설, 기만과 억압으로 유인하고 끌고 가 유린하고 생지옥으로 내몬 가장 추잡하고 악랄한 범죄에 대해서도 뻔뻔하거나 부인함으로 일관하는 후안무치에 대해서는 더 말해 무엇하랴!

사무치는 원한과 자존만 생각하면 당장 담을 뛰어넘어 멱살을 잡고 패대기를 쳐도 속이 풀리지 않을 지경이다. 그러나 담이 무너지면 모두가 가산을 잃고 피를 보게 될 것은 피할 수 없는 이치이고 무엇보다 졸렬한 이웃에 다르지 않은 우격다짐이나 뻗댐으로 응하는 것도 볼썽사납기는 매한가지이다. 더군다나 이제는 전쟁의 양상이 너무 달라진 데다 터전인 동북아시아의 정세 역시 새로운 국면이고, 무엇보다 오늘 우리는 대륙의 끝자락 작은 나라나 은둔의 왕국이었던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당당한 위상이 아닌가.

지난 박근혜 정부는 대일외교의 실마리를 위안부 문제에 두었다가 안팎으로 낭패를 보았고 그 후유증은 여전하다. 언젠가 한 언론의 보도를 통해 일본의 독특한 일면을 보고 어안이 벙벙했던 기억이 있다. 그것은 남극 과학기지에 파견된 그들 연구원을 위해 일본 정부인지 공공기관인지에서 자위용 여성 인형까지 공급한다는 내용이었는데 단박에 연관되어 떠오른 것은 태평양전쟁 시기의 성위안소였다. 어쩌면 그들에게 전쟁터로 내몬 군인은 인격체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전쟁 수행을 위한 도구이고, 그 도구의 욕구 배설은 임무 수행을 위한 윤활적 요소로 여긴 것이 아닐까. 국가뿐 아니라 개인 또한 군인으로서의 역할 수행 시에는 그저 군인이었지 인격체의 개인이 아니라는 생각에 수치나 죄를 인식하지 못한 것이라면, 우리의 분노는 애초 출구를 잘못 찾은 하소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일본인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촛불시위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아무리 절박한 이슈에도 수만 명을 넘겨 모이기 어려운 '다테마에'의 그들이니 소수의 목소리가 더욱 극성을 부리는 것일 뿐 양심과 지성을 갖춘 이가 다수일 것이다.

다만 억지 극성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보편적 지성에 의문이 드는 현안이 그들을 더욱 외면과 침묵에 빠트려 지루한 평행선의 갈등에 활로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 같다.

또한 어찌 보면 일본인에게 진심 어린 사과는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특히 극성스럽고 목청 높은 그들일수록 잘못의 인정은 할복이라는 전통이라도 따라야 하는 것일 테고, 국가의 부속품으로서와 인격체를 따로 생각하는 입장이라면 더구나 두렵고 뭔가 억울한 일이 되지 않겠는가. 만에 하나 그런 입장이라면 지금의 이 갈등은 영원히 치유되지 않아 거칠고 우악스러운 또 다른 이웃을 둔 우리 처지는 헤어나기가 난망하다.

어휴, 조심스러운 현안이라 에둘러 말하려니 참 어렵다. 터놓고 말하련다.

부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에 관한 나름의 생각이다. 애초 잘못 잡은 실마리가 문제를 꼬이게 했고 끝내는 보상금도 배상금도 아닌 어정쩡한 몇 푼 돈으로 얼버무리는 꼴을 만든 아둔한 관료들이 피멍 든 국민감정에 불을 질러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렇지만 시민의 지성으로 좀 더 어른스럽고 미래지향적인 해법은 없는 것인가.

이미 위안부 문제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인 화두로 되어있는 바다. 이러한 때 우리의 원한으로 사과에만 매달려서는 공론의 확산이 더디고 위축될 수 있으니 보편적 인권과 분쟁에서의 여성안전의 문제로 큰길을 잡아 양심과 지성을 가진 일본인들의 공감과 동참도 더불어 유인하는 것은 어떨까.

어쨌거나 담만 맞댄 것이 아니라 이웃임을 인정하고 왕래가 빈번한 처지이다. 그런 이웃이 허락을 받고 내 집 마당에 펼쳐놓은 작은 소도(蘇塗) 앞에 그들도 치욕임을 모르지 않는 상징을 세워둔다면 반성보다는 조롱으로 받아들이기 십상일 것이다. 소녀상은 이제 과거의 분노가 아니라 묻혀 사라질 뻔한 범죄를 고발한 용기와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세계 여성의 함성과 인류의 동의를 나타내는 상징이다.

지난 역사 내내 그들이 한반도에 드나들던 문턱이자, 이제 세계 모든 자유인이 밝은 기대로 드나드는 부산 여객선부두 어디쯤 옮겨 세워 모두가 함께 기억하고,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각오하는 큰 장(場)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혹여 곡해할까 염려되어 사족을 붙이자면 이미 '안중근, 아베를 쏘다'라는 소설로 일본의 좀스러운 이들에게는 공적이 된 필자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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