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공영방송 뉴스에서 병원 경영이 어려워져서 문을 닫으면 병원이 1차 손해를 보지만 직원들도 직장을 잃고 근처 주민들도 의료 접근성이 저하되어 손해를 본다는 내용이 보도되었다. 필자가 알기로는 병원이 문을 닫으면 국민도 불편하고 힘들다는 내용을 직접적으로 보도한 것은 처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공공재란 국방·경찰·소방 등과 같이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고 대가를 치르지 않더라도 소비를 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말한다. 사유재는 일반적으로 시장을 통하여 공급되지만 공공재는 보통 시장가격이 존재하지 않으며 수익자부담의 원칙도 적용되지 않는다.

의료는 어떤가? 대부분의 국민은 의료가 공공재라고 생각할 것이다. 의료가 공공재인 것은 개인이 돈이 없다고 하여 건강권을 위협받지 않아야 한다는 복지 국가의 명제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의료는 국가 부담이 크지 않다. 2017년 보건의료 관련 예산은 10조 원에도 못 미치고, 전체 예산의 2.5%가 되지 않는다. 영국, 캐나다, 핀란드, 우즈베키스탄 등의 국가는 기본적으로 무상의료 국가이다. 우리나라는 병·의원의 약 10%만이 공공 의료기관이고 의료보험의 대부분 금액을 국민이 부담하고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정부나 정치인 대부분은 의료는 산업이 아니고 국민에게 베푸는 시혜 정도로 생각하고, 병원이나 의사는 정부가 관리해야 하는 대상 정도로만 생각을 하고 있다.

의약품 실거래제는 병원에 납품하는 의료보험 적용이 되는 약품이나 재료는 이익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제도인데, 우리나라 그 어떤 다른 산업에도 이런 제도는 없으므로 우리나라 의료는 산업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병원의 10억 원 매출당 취업자를 나타내는 취업 유발 계수는 20 이상으로 제조업보다 배 높다. 최근 정부 발표는 비급여를 제외하면 의료수가는 원가에 미치지 못하고 있고 비급여를 포함하면 원가의 109%라고 하였다. 정부 발표 그대로라면 몇 군데를 제외한 전국 대학병원은 모두 적자인지 의문이며 또 비급여를 사용하기 어려운 의료 취약지역의 병원은 당연히 적자라는 말이다.

이런 지역의 병원이 문을 닫거나 문을 닫지 않더라도 경영이 어려워져서 병원 시설, 장비, 인력 등에 대해 투자를 하지 못하게 되면 병원 직원과 지역 주민도 피해를 보게 된다. 의료가 공공재라고 하면 적자로 도산하는 병원은 정부에서 막아줘야 한다. 그러나 망해가는 병·의원을 정부가 살렸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은 없다.

정부 스스로가 의료가 공공재인지 사유재인지 구분하지 못한다는 증거는 또 있다. 영리병원을 허가하는 문제로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이 있고 이는 국민도 대체로 반대하고 있다. 영리병원은 그 이름 자체로 지금까지 병원은 영리를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개인이든 재벌이든 주체가 국가가 아닌 영리병원을 허가하여 돈을 벌도록 한다면 이것은 의료가 공공재라는 명제에 어긋난다. 원격의료도 마찬가지이다. 대기업이 한국에서 원격의료에 대한 노하우를 쌓은 후 시스템과 기기들을 수출하면 우리나라 전체에 좋은 일이다. 그러나 정부는 의료는 공공재라고 해놓고 의료 접근성이 그 어느 나라보다도 좋은 우리나라에서 원격의료를 추진해서 대기업을 도와주는 것은 모순이다.

영리병원과 원격의료는 대부분의 의사가 반대하고 있다. 수입이 줄어든다는 걱정도 한 원인이지만 지금까지 정부에서 국민을 세뇌했듯이 의사들도 의료는 공공재라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는 산업으로서 의료를 인식하려면, 의료의 주체인 의사를 공공재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말고, 세금을 내면서도 많은 직장을 만들어 국민을 취업시키는 산업의 한 주체라는 생각을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박원욱병원 대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