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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대나무 숲이 울면 /박은경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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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7-03-19 19:06:42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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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가 활짝 핀 계절이 되었다. 경북 경주에는 곳곳에 산수유가 많다. 그 이유를 혹자는 신라 경문왕 때 대나무 숲을 베고 산수유를 심어서라고도 한다. 경문왕은 왜 대나무 숲을 베었을까.

경문왕(재위 861∼875)의 성은 김씨, 이름은 응렴이다. 신라 제47대 헌안왕의 뒤를 이어 제48대 왕위에 오른 자이다. 그의 대를 이어 아들 2명도 왕이 되었고, 딸도 왕위에 올라 진성여왕이 되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응렴은 18세 때 화랑도의 대표인 국선이 되었다. 당시 신라 귀족 출신 중 덕행을 갖춘 뛰어난 자를 뽑아 화랑이라 하였고, 그 중 탁월한 자를 국선이라 하였다. 대표적 국선으로는 신라 제26대 진평왕 때 김유신을 들 수 있다.

헌안왕이 하루는 응렴을 궁중 연회자리로 불러 국선이 되어 사방을 유람하면서 무엇을 보았는가 물었다. 응렴은 답하기를 아름다운 행동을 하는 세 사람을 보았는데, 첫째는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낮은 사람들보다 겸손하게 사는 이요, 둘째는 세력을 지닌 부자이면서 검소하게 옷을 입는 자이며, 셋째는 존귀한 힘을 지녔으나 그 위세를 쓰지 않는 이라고 답하였다.

이에 헌안왕은 그의 어진 성품을 알아차리고, 나에게 두 딸이 있으니 그중 한 명을 아내로 맞이하라 하였다. 응렴과 그의 집안에서는 맏공주는 용모가 별로이니 아름다운 둘째 공주와 맺는 게 좋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를 전해 들은 낭도의 우두머리 범교사가 응렴에게 맏공주를 선택하면 반드시 세 가지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조언하였다. 그러자 응렴은 맏공주를 선택하였다. 그 후 석 달이 지나 헌안왕이 병으로 위독해지자 왕은 군신들에게 일러 아들이 없으니 맏딸의 남편 응렴이 왕위를 이어받도록 지시하였다. 드디어 응렴은 헌안왕의 유조를 받들어 즉위하였다. 그가 바로 제48대 경문왕이다. 이후 범교사가 왕에게 "제가 말씀드린 세 가지 좋은 일이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맏공주를 선택하였기 때문에 왕위에 오른 것이 하나요, 이제 아름다운 둘째 공주도 얻을 수 있으니 그 둘이요, 그리고 맏공주를 선택함으로써 전왕과 부인이 심히 기뻐했으니 그 셋입니다"고 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다. 경문왕이 즉위한 뒤 그의 귀가 갑자기 당나귀 귀처럼 자라났다. 왕후나 궁인들은 일절 몰랐고, 오로지 왕의 관을 담당한 복두장 한 사람만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평생 남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지내다가 죽기 전에 그 비밀을 간직할 수 없어 도림사 인근 대나무 숲에 가서 힘껏 외쳤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고 말이다. 이후 바람이 불어 대나무 숲이 울면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는 소리가 났다. 이 소문이 퍼지자 왕은 대나무를 일체 베고 대신 산수유를 심게 하였다. 그 이후 바람이 불면 '우리 임금님 귀는 길다'라는 소리만 났다고 전한다.

이외에도 삼국유사에는 경문왕에 대한 기이한 이야기로, 왕의 침전에 무수한 뱀이 모여들어 궁인들이 두려워 쫓아내려 하자, 왕이 뱀 없이는 편히 잘 수 없으니 그대로 두라고 일렀다. 매일 잠을 잘 때면 혀를 날름거리며 왕의 가슴을 덮었다고 한다. 즉, 산 뱀을 이불 삼아 가슴에 덮고 잠을 잤다는 것이다. 이 같은 뱀을 왕의 사병으로 보는 설도 있으나, 이 모두 경문왕 대의 혼란한 사회상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경문왕은 신라 하대 진골 간의 내분이 끊이지 않았던 정치 사회적 혼란기에 헌안왕의 사위로서 왕위에 즉위한 자였다. 그는 혼란한 신라를 다스리기 위해 왕권 강화와 치국에 힘썼던 왕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일반 사람들보다 귀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연계하여 그는 즉위 후 궁궐 안팎의 소식에 귀를 기울였고 정보를 집결하는 데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어진 성품을 지니면서 남의 말을 경청하는 자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그의 재위(861∼875) 기간에 모반이 여러 차례 일어나기도 했다. 대나무 숲이 왕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운다는 해괴한 소문은 결국 쇠락해가는 신라 하대의 사회를 반전시키지 못하고 막을 내린 정권의 허약함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대나무 숲은 여론형성을 뜻한다. 여론의 추이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반면 사실이 아닌 여론몰이는 의외의 결과를 낳는다. 사람을 학살하거나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근래 '탈(脫)진실화'가 국지적 현상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시대적 특성이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그게 요즘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가짜뉴스(Fake News)를 말한다.

그런데 미래의 알파고는 페이크 뉴스에 어떻게 반응할까.

동아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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