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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일기일회와 임기응변의 사회 /김홍희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03-20 19:10:17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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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되어 포털 사이트의 사전을 찾아보았다. 한글 사전에는 이 낱말이 없고 중국어 사전에도 없었다. 한 포털 사이트의 한자 사전에는 나와 있었지만 다른 포털 사이트의 한자 사전에는 소개되어 있지 않았다. 다만 두 포털 사이트 모두 일본어 사전에는 등재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일기일회는 일본말인 것이다.

그중 한 포털 사이트에서는 이 말의 내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리큐(利休)의 제자인 소우지(宗二·1544~1590)의 '산상종이기(山上宗二記)'에 일기(一期)에 일도(一度)의 참회(參會)라는 말이 나와 있다는 것이었다. 일기일도의 참회라는 말을 줄여 일기일회라는 사자성어로 바꾸어 쓰게 된 듯하다.

일기일회는 '일생에 단 한 번의 만남' 또는 '일생에 한 번뿐인 어떤 일'을 나타내는 명사이다. 하지만 그 내용은 평생에 한 번밖에 없는 만남이니 마음과 정성을 다하라는 뜻과 인연과 조우할 때마다 평생에 한 번밖에 없는 만남처럼 대하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인연과 만남의 소중함을 비유하는 말로 이보다 더 좋은 말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요즘 이 말이 한국 사회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이유가 꽤 궁금하다. 이 말은 새기면 새길수록 일본적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단 한 번의 기회는 단판 승부로 승자를 가리는 그들의 전통 씨름인 '스모'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한국의 씨름은 삼판양승제이다. 한 번 지더라도 아직 기회가 있다. 한 번 지고 한 번 이겨야 이때부터 참 승부가 벌어진다. 1승 1패는 권투의 오픈 게임쯤 되고 세 번째 판이 승부를 가르는 진정한 한 판이 된다. 야구로 치면 9회 말 만루에 투 아웃, 투 스트라이크를 맞이한 타자와 투수의 절체절명의 타이밍이다.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으로 몰아가는 절박한 순간에도 우리는 승부에 '흥'을 돋우고 '뜸'을 들인다. 이것이 바로 삼판양승제의 재미이자 우리 문화의 여유이다.

그런데 일본 스모는 상대와 맞붙는 순간 9회 말 만루에 투 아웃, 투 스트라이크 상태로 바로 몰고 들어간다. 승부도 순식간에 나고 승자와 패자의 입장도 단숨에 갈라진다. 일기일회와 스모는 한 번밖에 없는 승부나 인연을 위해 항상 진지하고 최선을 다하는 긴장을 요구한다.

우리가 시험을 보거나 시합에 나갈 때 '어깨 힘 빼고, 마음 편하게'라고 말하는 반면, 일본 사람들은 '정신 잘 차리고'라는 말을 흔히 한다. 어떤 일이나 인연을 대하는 두 나라 사람들의 입장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일본에 일기일회라는 문화적 용어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임기응변(臨機應變)이라는 문화적 표현이 있다. 뜻이야 알다시피 '그때그때 처한 뜻밖의 일을 재빨리 그 자리에서 알맞게 결정하거나 처리함'이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알맞게 결정하거나 처리'라는 말이다. 예를 들면 빨간불이 들어 온 건널목의 좌우에는 달려오는 차도 없고 지금 건넌다고 해서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도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건널목을 건너는 것이다.

어떤 규칙이나 자극에 대해 유연하게 잘 반응하고 대처하는 힘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우리나라 공무원이 법을 다 잘 지키면 대한민국에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라는 말도 법을 다루거나 해석하는 데 탁월한 유연성이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준칙운행을 하면 데모 행렬이 되고 마는 버스 데모대의 해프닝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이런 점에서 임기응변은 우리 문화를 표현하는 긍정적 언어 중의 하나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아무튼 일기일회라는 일본말이 요즘의 한국 사회에 들어와 성행하고 있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회가 필요로 할 때 새롭게 만들어지거나 수입이 되거나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 말이 한국 사회로 유입되었다는 점과 이 말이 요즘 한국 사회에 즐겨 쓰이고 있다는 점이 대단히 흥미롭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도 있으니 우리에게도 인연을 소중히 하는 마음가짐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그렇다면 일기일회라는 말은 '평생에 단 한 번'이라는 '일회성'을 의미하는 바 임기응변으로는 대처 불가능한 인연이나 룰에 대한 우리 사회의 욕구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것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단 한 번의 평등한 기회'로 나라를 지탱하는 헌법이든지, 개개인의 삶을 규제하는 법률이나 규칙이든지 간에.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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