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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봉 칼럼] 스산하고, 애잔하고, 아린···

우리 앞에 선 세월호, 진실은 고통스럽지만 남김없이 드러내야

거친 말·행동은 금물, 자중하고 또 자중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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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이렇게 상상해 보자. 아버지나 어머니, 또는 아들이나 딸의 손가락 하나가 부러졌다고 치자. 아마 모르긴 해도 한 가정이 와글와글할 것이다. 비상연락망이 가동되고 가족들은 오금에 불이 나게 달려올 게 뻔하다. 남들이 보면 우스꽝스럽지만 가족들은 심각하다. 무엇 때문에 사고가 났는지, 사고의 후유증은 없는지, 행여나 마음에 상처는 입지 않았는지….

정작 당사자는 덤덤한데 주변에서 더 난리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가족이란 연대감 때문이다. 가족은 눈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돼 있다. 이 끈을 통해 감정의 증폭이 일어난다. 안타까움이나 기쁨과 슬픔, 미움조차도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집안에 우환이 있으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정신이 혼란스럽다. 잊고 지내던 가족의 소중함을 일이 있고서야 깨닫는다. 그리고는 또 까마득히 잊는다.

가족만 연대감을 갖는 것도 아니다. 가까운 친구나 이웃, 또는 스쳐 지나간 사람들 사이에도 연대의 끈은 작용한다. 이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신경과학계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뇌와 뇌 사이에 보이지 않는 끈이 형성된다고 보고 있다. 전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연대감은 작용한다. 세월호로 온 국민이 안타까워하는 건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시야를 좁히면 개인의 안녕이 국가의 안녕이다. 개인의 불안정은 가정을 흔들고, 사회를 흔들고, 나아가 국가의 불안정성으로 이어진다. 하물며 집단적인 비극이라면 말해 무엇 하겠는가.

다시, 세월호다. 스산하고, 애잔하고, 아린 상처가 되살아난다. 세상 그 어떤 비애와 아픔을 이에 비할까. 대통령이 탄핵되니 세월호가 금방 올라오네. 그런 말이 정말 아프다. 대통령이 탄핵되고 구속하니 마니로 설왕설래하는 것 자체가 서글프다. 게다가 세월호의 사고 원인과 사후 처리에 대한 책임론도 감당해야 한다. 외로 몰린 짐승의 슬픈 눈빛을 보는 건 가슴이 휑한 느낌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쉽게 늙지만 분노하는 마음은 바래지 않는다. 20년에서 30년으로 늘린 선령 제한, 낡은 배의 마구잡이 증축, 얼뜨기 선장에 400여 명의 생사를 맡긴 선사, 승객을 버린 선장과 승무원. 젖은 돈을 말린 선장, 안전행정부 국장의 기념촬영, 통닭을 시켜먹은 대책반, 유병언의 토끼몰이 수사. 허술한 운항 관리와 안전 점검, 느릿한 사후 대처. 대통령의 7시간, 눈물의 사과와 국가 대개조 약속. 국가안보실, 안전행정부, 해양수산부, 해양경찰, 한국선급, 한국해운조합, 진도 VTS. 세월호는 교통사고, 국회 노숙자, 라면에 계란을 넣은 것도 아닌데…. 어느 것 하나 분노 없이는 바라볼 수조차 없다.
재물을 잘 쓰면 악덕이 가려진다지만 그렇다고 사라지지는 않는다. 눈꼽만 한 미덕은 의심으로 사라지고, 곤궁할수록 의심은 그 깊이를 더해간다. 의심이 있는 곳엔 진실이 설 수 없다. 빈 부대가 똑바로 설 수 없듯이. 갖가지 의혹을 낱낱이 밝혀야 하는 이유다. 의심은 부랑배처럼 들이닥친다고 했다. 거지처럼 달려들어 할켜 버린다고 했다. 인양된 세월호가 대한민국을 삼키기 전에 곰팡내 나는 진실을 햇빛 아래 쬐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세월호의 늪에서 벗어나려면? 우선은 냉정이다. 얼음처럼 차갑게 착 가라앉혀야 한다. 그런 후에 찬찬히 진실을 직면해야 한다.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우병우 전 정무수석의 수사방해가 무언지. 악천후에 왜 서둘러 운항을 강행했으며, 왜 갑자기 선장이 교체되고 무리하게 맹골수로를 지났는지. 세월호 밑바닥에 실은 과적 화물의 실체는 무엇인지, 왜 세월호 인양이 1072일이나 걸렸는지. 선장은 왜 가만히 있으라고 지시했고, 현장에 출동한 구조선들은 왜 손발을 묶고 있었는지.

세상에서 가장 아픈 것은 진실과 맞닥뜨리는 것이다. 진실은 늘 고통스럽고 혐오와 분노를 자아낸다. 그 불쾌하고 쓰리고 따가운 고통을 감내해야 평화를 찾을 수 있다. 진실은 끝까지 밝히되 자극적인 행동, 거친 말은 삼가야 한다. 분노와 갈등을 조장하는 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분노하기 전에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이다. 또 다시 편을 갈라 싸움박질만 해서는 사태 규명도 재발 방지도 물 건너간다. 자중하고 또 자중할 일이다.

다시는 비극은 없어야 한다. 부와 명예도, 온갖 가지 꿈과 희망도 가정이 무너진다면 무슨 소용이랴. 가정은 평화고, 행복이며, 구원이어야 한다. 문 밖엔 황량한 바람이 불어도 집안에 들어서면 눈 녹듯 풀리는 온기여야 한다. 가정의 평화만이 진정한 평화다. 손가락 하나의 아픔에도 온 세상을 잃은 듯한 게 가족이라는 이름이다. 자식을 잃음은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다. 시간이 멈춰서 버리는 고통이다. 물 한 모금, 밥 한 술조차 죄스럽다. 국가는, 정부는, 사회는 적어도 그 아픔만은 어루만질 수 있어야 한다.

논설고문 aiwi@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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