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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월호라는 역사의 언어 /전성욱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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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7-04-04 19:36:51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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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되었던 것은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그때 되돌아온 것은 이전의 그것에 대한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프로이트의 용례를 따르자면 그것은 기이한 낯섦(unheimlich)으로 귀환한다. 그러니까 억압되었던 것이 돌아올 때, 그것은 나태하고 무감각한 우리들의 일상을 고통스럽게 일그러뜨린다. 세월호의 인양을 지켜보면서 나는 바로 그 기이한 것의 낯선 귀환을 목도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선체가 수면 위로 그 모습을 드러내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입을 모았다. "박근혜가 내려오니 세월호가 올라오는구나!" 나에게 이 말은 지금 우리 사회의 짙은 암연을 암시하는 어떤 징후처럼 여겨졌다. 지난 삼 년의 시간 동안 세월호를 억누르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 인용된 뒤에 세월호의 인양이 이루어졌다는 것, 인용이 인양을 견인하는 그 사태 앞에서 나는 짓밟은 자들에 대한 분노에 앞서 짓눌린 자들의 비통함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쳤다.

거리로 나선 시민들이 비리에 연루된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했고, 대의기관인 국회는 탄핵안을 가결했으며, 헌법 수호의 최고기관인 헌법재판소가 그것을 인용하였다. 이 일련의 과정은 대한민국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대단히 성숙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지금까지 시민들의 절박한 정치적 요구는 정당정치의 담합 논리에 번번이 묵살되어왔다. 이 때문에 대의민주주의는 그것이 이 나라에 제대로 자리를 잡기도 전에 이미 그 신뢰를 크게 잃고 말았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서구적 민주제에 대한 착실한 비판과 더불어, 또 다른 정치의 방법에 대한 사색과 궁리로 치열하였다.

대통령을 파면시킨 그 역사적 결정을, 이른바 광장의 정치와 의회의 정치가 서로 협치하여 이루어낸 민주주의의 위대한 승리로 바라보는 이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의 정치 제도가 탄핵 이후의 삶을 새롭게 변혁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는 기대 난망이다. 누군가의 주장처럼 그것이 개헌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지도자가 문제라면 그 사람을 교체하면 되고, 제도가 문제라면 그것을 뜯어고치면 된다고 하는 간단한 발상은 어쩐지 낯설지가 않다.

탄핵의 전후 과정은 우리를 억눌러왔던 그 무엇, 저 세월호를 깊은 바닷물 속에 방치해두었던 어떤 사악한 힘의 정체를 어렴풋하게나마 가시화시켜주었다. 그러니까 억압되었던 것의 귀환을 통해 우리는 진정으로 정치적이며 역사적인 입사식(入社式)을 거치게 된 것이 아닐까. 최근 들어 자주 쓰이는 '적폐(積弊)'라는 말이 바로 그 억압과 탄압의 사악한 힘을 함축한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라는 선고를 들었을 때, 나는 그것이 '박근혜'라는 한 개인에 대한 처분으로서가 아니라 지금껏 나를 힘들게 했던 그 모든 부조리한 것에 대한 처분으로 여겨졌다. 박정희 패러다임이 그 오욕의 역사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고, 마치 망령처럼 기이하게 회귀했던 것이 박근혜 정권이었다. 용공조작으로 간첩 만들기에 앞장서 출세했던 사람이 다시 돌아와 '블랙리스트'를 만들었고, 그것으로 문화예술인들을 탄압했다. 이 휘황찬란한 21세기에 그런 구태의연한 행태는 얼마나 기이하고 낯선 것이었는가.
나에게 '박근혜'는 일개 고유명사가 아니라 적폐를 함의하는 역사적 상징의 언표이다. 탄핵의 심리가 이루어지는 와중에 극우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기를 방어하던 대통령의 모습, 헌법재판소에 보였던 대통령 측 변호인단의 기행, 촛불집회의 안티테제로 등장한 태극기집회의 살풍경, 우리는 합리적일 것이라고 믿었던 엘리트들의 반지성적 선동주의를 똑똑히 보고야 말았다. 가짜 뉴스가 진실의 대변자를 자처하고, 소외된 자들의 울분을 이용하는 모리배가 애국적인 정치가 행세를 하는 그런 노골적인 위선의 사태들이 생생하게 펼쳐졌다. 합리와 지성을 초월한 저 광기의 정념들이 쌓아온 폐악, 그것을 지금 우리는 적폐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세속의 언어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사악한 힘, 그 힘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진도의 심해에서 올라온 세월호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세월호는 그 어떤 어휘로도 환원 불가능한 가장 강력한 정치의 언어이자 역사의 언어이다. 봉준호의 '괴물'이나 안노 히데아키의 '고질라'는 우리의 과오가 만들어낸 자화상이다. 괴수는 대체로 포효와 발악의 몸부림과 함께 최후를 맞는다. 세월호가 올라오자 괴수의 마지막 포효가 천지를 진동한다. 그 포효와 함께 새로운 민주주의가 서광을 비춘다.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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