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축구에 K3리그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K3리그를 아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이 프로축구 K리그 산하 3부리그 아니냐고 되묻는다. 국내 축구는 프로리그인 클래식(1부), 챌린지(2부) 그리고 세미프로인 내셔널리그(실업)가 있고 그 아래가 K3리그이다. 굳이 따지자면 4부리그요, 쉽게 말하면 엘리트 축구와 생활 축구의 중간에 위치한 아마추어 리그다.

풀뿌리 축구임은 분명하지만 동네 조기축구회쯤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K3리그는 2007년 출범해 1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10개 팀으로 시작해 올해 21개 팀으로 늘었다. 어드밴스와 베이직, 상·하위 리그로 나눠 승강제도 시행하고 있다. 지난 2월 말에 이미 올 시즌이 시작됐다. K3리그에서 뛰는 선수 중에는 낮엔 일하고 밤에 훈련하는 '주근야축(晝勤夜蹴)'도 있다. 이들의 롤모델은 잉글랜드 축구 8부리그에서 노동자 선수로 시작해 지난해 일약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선수로 도약하고 국가대표까지 발탁된 제이미 바디(레스터 시티)다.

부산에도 K3리그 소속팀이 있다. 올해 리그에 뛰어든 신생팀 부산FC이다. 시즌 개막전이자 리그 데뷔전에서 서울 중랑축구단과 비기며 만만찮은 전력을 과시했다. 선수들 가운데는 스페인 유소년리그 출신도 있고, J리그나 유럽 리그를 거쳐 컴백하는 등 각자 나름의 사연을 품은 이가 많다. 한 번씩은 좌절을 겪어봤기에 그만큼 온 힘을 다해 절박하게 공을 찬다.

부산FC는 이런 선수들이 마음 편하게 운동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환경을 제공한다. 프로와 실업팀에서 밀려난 선수에게 새로운 운동장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단순히 축구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선수생활이 끝나고 나면 갈 곳이 마땅찮은 이들을 위해 구단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미리 교육하고, 나아가 심판이나 코치, 에이전트 등 다양한 분야의 일자리를 찾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도 마련 중이다.

축구 미생들의 보금자리인 부산FC가 주목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부산FC는 기업구단이 아니다. 시민이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협동조합이다. 후원금을 내는 시민이 주인인 셈이다. 대표적인 클럽이 세계 축구의 최고봉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FC바르셀로나다. 바르셀로나는 지역주민인 조합원들이 대표를 선출하고 구단을 직접 경영하는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된다. 17만 명에 이르는 조합원의 후원금과 입장수입, 구단 물품 판매 수익 등으로 천문학적인 선수들이 몸값과 운영비를 감당한다. 부산FC는 한국의 바르셀로나를 꿈꾼다.

하지만 조합원들이 내는 1만 원 안팎의 후원금으로 살림 꾸리기가 쉽지 않다. 적어도 조합원이 3000명은 돼야 그럭저럭 운영할 수 있다는데 부산FC는 지금까지 600명 남짓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척박한 국내 축구 환경에서 시민들의 후원금으로만 운영하는 구단을 만든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처럼 보인다. 그것을 부산 시민과 지역 축구인들이 해낸 것이다. 성공 여부를 판단하긴 이르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받을 자격이 있다.

K3리그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박근혜와 최순실의 합작품 미르·K스포츠재단이 해체 수순에 들어갔다는 보도를 접해서다. 최순실은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을 통해 재벌에게서 774억 원을 뜯어냈다. 미르 재단이 486억 원, K스포츠 재단이 288억 원이다. 이뿐만 아니다. 최순실은 딸 정유라를 위해 삼성으로부터 말 세 필을 받았는데 몸값을 합치면 20억 원을 훌쩍 넘는다. 그 돈이면 K3리그 구단 수년 치 운영비를 충당할 수 있다.

미르·K스포츠 재단이 받은 돈을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얼마나 남았는지 밝혀진 바 없다. 문화체육부는 재단을 해체한 뒤 재단의 기금은 국고로 귀속시키든가 쓸 곳을 찾아본다고 밝혔다. 최순실 사태가 터진 이후에도 몇 달간 임직원 월급 등 운영비로 매달 2억 원의 아까운 돈이 꼬박꼬박 나가던 걸 생각하면 만시지탄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만들어지고 업무마저 중단된 재단이 비정상적으로 운영되고 기금으로 돈 잔치를 벌였던 셈이다. 앞서 재단설립에 깊숙이 개입했던 전경련은 사건이 불거지자 두 재단을 해산하고 문화체육재단을 설립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스스로가 해체될 위기에 처해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수백억 원의 기금을 국고에 귀속시키기보다는 원래 의도에 걸맞게 문화나 스포츠를 위해 쓰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K3리그에 기금의 100분의 1, 1000분의 1이라도 지원한다면 '주근야축'하는 축구 미생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다. 블랙리스트로 고생한 예술가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도 좋겠다.

다시 축구 이야기로 돌아가자. 부산FC의 창단 첫 홈 개막전이 이번 주말(8일) 부산 아시아드 보조경기장에서 열린다. 봄날 축구 미생들의 몸짓을 지켜보고 소액이나마 후원하는 건 어떨까. 한 달에 담배 두 갑 살 돈으로 내 구단을 가질 수 있다면 아주 남는 장사 아닌가.

편집국 부국장 dol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