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문상을 가서 70대에만 돌아가셔도 호상이라고 위로하곤 했는데, 요즘 문상을 가보면 80대 중반에 돌아가셔도 "너무 일찍 가셨다"고 위로를 전하곤 한다. 이처럼 수명이 길어지면서 건강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병원쇼핑족'이나 '병원마케팅'과 같은 새로운 용어나 학문이 생겨난 것은 오래전 이야기고, 건강과 관련된 아이템이 최근 가장 유망한 사업아이템으로 각광 받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신문과 방송, 서적, 그리고 인터넷 등의 매체에서도 기다렸다는 듯이 무차별 건강정보를 쏟아내고 있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각 언론사는 건강기사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의사 출신의 의학전문기자들을 뽑기 시작했고 암부터 가벼운 질병까지 전방위적으로 건강 관련 기사들을 매일 쏟아내고 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인터넷 지식검색에 물어보면 된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건강 관련 지식창고에는 하루에도 수백 개의 질문과 답변이 올라온다. 또 하루에도 수십 명의 의사가 방송이나 신문, 잡지 등을 통해 건강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치는 매체인 TV의 경우,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늘어난 종편에서 앞다투어 의학 건강프로그램을 방송하다 보니 전 세계에서 의사들이 가장 방송에 많이 나오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하다 하다 오락프로그램에까지 의사들을 출연시켜 건강을 얘기하고 있다.

인류의 삶을 가장 크게 변화시켜 놓았다는 인터넷, 하지만 건강 정보를 제공하는 데 있어서는 아직도 아날로그만 못한 상황이다.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의학 정보의 대부분은 수많은 병원의 광고성 정보제공 및 홍보 배너와 천편일률적인 질환 이야기들뿐이다. 대형 인터넷 포털사이트들도 덩치에 걸맞은 검증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보다는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정작 필요한 정보는 유료로 전환하기에 정신이 없다.

이처럼 집에 앉아서 손쉽게 궁금한 것을 알아볼 수 있게 되어 환자의 입장에서 편의성은 극대화되었지만, 부정적인 면 또한 동시에 존재한다. 잘못된 정보에 노출된 경우 의사와 환자의 신뢰에 금만 가게 될 수도 있으며. 정확하지 않은 정보로 자칫 건강을 해치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 조사에 의하면 현재 나오고 있는 의학·건강 관련 기사의 30% 가 과학적 근거가 없거나 잘못된 사실을 전달한다고 한다. 지식검색의 경우에도 답변들을 살펴보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엉뚱한 치료를 권하거나 검증되지 않은 민간치료법의 선전장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일반 국민은 어떤 것이 정확한 정보이고 어떤 것이 엉터리인지 구별해 낼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더구나 정보를 만들어 내는 주체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태에서 서로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하기 때문에 옥석을 가리기는 더욱 힘들다. 외국의 경우에는 국가기관인 질병관리센터, 식품의약품안정청, 보건의료담당관실, 의사협회 등이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도 의학 정보의 질 관리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여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보화사업단', 대한의사협회 산하의 '국민의학지식향상위원회 모니터링분과위원회' 등이 활동하고 있지만 미미한 수준이다.

우리는 지금 '정보(Information)'를 가진 사람이 헤게모니를 쥐게 되는 '정보화 사회'로 진입해 있다. 하지만 그 사회가 과연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는 알 수가 없다. 정보(Information)의 홍수 속에서 혼란을 겪는 현상을 "엑스포메이션(Exformation)이라 하는데 요즘 한국사회는 너무 많은 의료 정보로 인해 이러한 엑스포메이션에 처해 있는 것 같다.

인간의 생명과 직결된 의료영역에서 엉터리 의학 정보는 국민건강에 치명적 해악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정보의 질 관리에 더욱 많은 관심과 투자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하루속히 국민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공정하고 정확하며 권위 있는 의학 정보 질 관리 기구가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래로병원 소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