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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페라리의 역설 /정선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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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7-04-12 19:40:26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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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명차 페라리(Ferrari)는 '부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페라리는 디자인뿐 아니라 오감을 만족하게 하는 화려한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다. 페라리의 마케팅 전략은 '꿈을 판다'는 것이다. 예금잔고 500만 달러를 넘어야 이 차를 살 수 있다고 하니 보통 사람들이 이 차를 갖기란 꿈같은 얘기일 듯하다. 하지만 페라리는 거기까지다.

일본의 대표적인 코미디언이자 영화감독인 기타노 다케시의 사례는 씁쓸함을 준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다케시는 명성을 얻으면서 큰돈을 번 뒤 가장 먼저 페라리를 샀다. 그는 페라리를 산 첫날 친한 친구를 불러 자기 대신 페라리를 몰고 시내를 질주하라고 부탁했다. 정작 자신은 택시를 잡아타고 자신의 페라리를 쫓았다. 그를 태운 택시기사가 '저렇게 좋은 차를 왜 직접 몰지 않고 택시를 타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다케시는 "그래야 내 페라리를 볼 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어쩌면 페라리는 타는 대상이 아니라 보고 즐기는 대상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도 연간 수백 대의 페라리가 수입되지만, 막상 거리에서 이 차를 보기란 쉽지 않다. 개당 수천만 원대에 이르는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보다 사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하니 아이러니하다. 명품을 사는 사람들의 심리 속에는 실용적인 측면보다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만족을 채우기 위한 허영이 자리 잡고 있는지 모른다.
최근 국내에 들어와 장사를 하는 해외 명품업체들의 순이익 빼가기 행태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명품 바람을 타고 호황을 누리는 해외 명품업체들이 막대한 이익을 배당이나 로열티를 명분으로 고스란히 본국으로 가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사회기부금이나 고용 수준은 국내기업의 평균 수준을 밑도니 도덕적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다. 산업자원부의 통계자료를 보면 2015년 기준으로 국내에 들어와 사업을 하는 외국 법인은 1만 개가 넘는다. 이 중에서 3분의 1 정도는 국내에 제조 기반을 두지 않은 금융회사이거나 단순 판매법인이다. 상당수 해외 명품업체들도 실제 제품은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에서 생산한 뒤 국내로 가져와 판매하는 형태의 판매법인들이다. 그러니 우리 입장에선 제품에 투입되는 원자재나 시설투자 같은 경제적 실리는 얻지 못하고 판매수익만 올려주는 봉 노릇을 하는 셈이다.

해외 명품업체의 돈벌이에는 일부 국내 대기업도 가세하고 있다. 거액의 로열티를 제공하면서 해외 명품수입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국내 대표 유통업체들은 이탈리아의 명품을 수입하기 위해 서로 공방전을 벌이는 바람에 로열티만 천정부지로 치솟아 결국 국내 소비자들만 가격부담이 커지는 풍선효과를 가져왔다. 글로벌 경제시대에 해외 명품업체들의 국내사업을 막을 수는 없다. 우리 기업들도 좋은 제품을 만들어 해외시장에서 막대한 돈벌이를 하는 마당에 외국기업의 국내시장 진입을 규제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하지만 판매 규모나 시장점유율이 일정 수준을 넘어설 경우에는 적어도 국내 기업에 적용하는 최소한의 규제책은 필요하다.

가장 급선무가 외국기업의 경영 내역을 공개하는 것이다. 국내기업은 자산 100억 원을 넘으면 외부감사를 받게 되어 있고, 상세한 기업경영 내역도 감사보고서를 통해 밝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연간 수백억 원의 막대한 이익을 남기는 해외 명품업체 중 상당수는 기업경영 공개의무가 없는 유한회사로 법인형태를 전환한 뒤 '깜깜이 경영'을 하고 있다. 자유무역 시대에 정책적 규제가 어렵다면 일정한 규모를 넘어선 외국 법인에 대해서는 유한회사일지라도 반드시 외부감사를 받게 하고, 기업경영 내용을 공개하도록 하면 규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까닭인지 외국 법인의 기업공개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수년째 잠자고 있다고 한다. 올 초에도 국회에서 이 법안이 다루어진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대통령 탄핵, 대선일정과 맞물려 아예 뒷전으로 밀려나 버린 듯하다. 과거 다른 사례를 보면 이 법안도 슬그머니 사라질 것 같아 안타깝다. 경제정책은 어느 한 편이 일방적으로 특혜를 누리는 불공정 행위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이는 경제적 왜곡현상을 가져와 경제참여자들의 불법행위를 조장하게 된다. 최근 국세청이 뒤늦게 오라클을 상대로 3000억 원대 법인세 추징에 나선 것도 따지고 보면 기업경영 내역의 비공개에서 빚어진 결과라는 생각이다. 정부의 모든 정책은 선제적이고, 공정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와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정부의 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더욱 높일 수 있다.

재벌닷컴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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