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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칼럼] 아비의 죄, 무능

간언과 반역조차 구분 못 한 지도자의 무능이 빚은 격랑

아비라면 최소한 능력 있는 바른 벗이라도 찾아야 했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04-20 19:44:37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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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할 소리가 아니지만 아비의 무능은 죄가 된다. 청춘이 '금수저' '흙수저'로 분노와 좌절을 토할 때마다 세상 많은 아비는 가슴이 철렁하고 주변을 살피며 고개 숙이게 되니 말이다. 나부터 부인할 수 없는 죄인 아닌가. 그래도 아직 수감(?)되지 않고 '노릇'을 하려고 남은 힘이나마 다할 수 있는 것은 '크기' 때문이다.
큰 배에서 선장을 지내고 이제는 은퇴해 고향에서 그의 말대로 손바닥만 한 배의 선주 겸 어부로 낙조를 지켜보는 어떤 이가 이런 말을 들려줬다. '큰 배는 큰 파도를 만나고 작은 배는 작은 파도를 만난다.' 바다가 배를 가려서 파도의 크기를 달리할 리는 없는데 무슨 소리인가 의아했지만 촛불 파도를 지켜보며 비로소 그 의미를 알게 됐다.

자타공인 조선 최고의 성군은 세종대왕이다. 아주 유능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방 외교 문화 과학 등 다방면에서 쌓은 업적은 찬란하고, 태평성세의 역사 기록으로 보아 경제사정도 어지간했음이니 자연환경도 뒷받침해줄 만큼 운도 따랐던 셈이다. 그런 세종의 유능과 업적은 무엇보다 인재 발탁이 근원이다. 한글 창제의 실무를 주관한 집현전 학자들, 국방의 김종서 최윤덕, 과학의 장영실, 임금과 조정, 신하와 신하 사이의 갈등을 조정해낸 황희 등 무수하다. 한글 창제에 극렬히 반대한 최만리와 같은, '아니 되옵니다!'를 거두지 않는 완고한 신하도 능력에 따라 설득하고 끌어안았다.

유능과는 거리가 먼, 나라의 문을 닫게 한 왕도 있었다. 고종의 경우는 아무리 아버지 대원군의 그늘과 미증유의 서세동점(西勢東漸) 파도가 거셌다 하더라도 너무 무능했다. 인간적으로 자질이 부족하고 배움이 얕은 것은 아니었다. 오직 인재를 발탁하고 가려 쓸 줄 아는 혜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때의 중신들도 개별적으로 무능하고 처음부터 사악한 이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개개인의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엄중한 파도 앞에서 선장이 우왕좌왕하니 허둥거리던 선원들은 각자의 편견을 고집하고, 기어이는 사심까지 끼어들어 침몰시키고 말았다, 나라를. 훗날 주재(駐在) 외교관에 의해 매우 부패한 관리였다는 증언이 나왔지만 나라가 망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의기의 표상이 된 이를 생각하면 지도자의 무능이 바른 인재를 어떻게 망치는가 여실히 증명한다.

아버지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다. 하지만 다행은 아버지가 감당할 몫은 작은 배 정도라는 것이다. 한 아비의 무능이 초래할 불행은 한 가정의 흙수저 그만큼일 테니 체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라라는 큰 배를 운항하는 선장이 감당할 파도는 나라를 좌초시킬 수도 있고 국민 모두를 흙수저로 만들 수 있기에 결코 운명으로 체념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최근 우리가 겪은 불행은 단순히 정권의 좌초에 그친 것이 아니라 많은 국민을 좌절과 분노에 빠트린 희망의 침몰이었다. 끝내 지도자로서의 결기도 없었고, 감옥 안에서는 억울함이나 주장하고 있다니 어쩌면 사욕보다는 그 자신조차 아우라라는 허상에 취한 무능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무능은 큰 배일수록 무섭고 큰 죄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발군의 능력을 가진 이라도 혼자서, 더군다나 국가라는 거대한 배를 안전과 희망으로 운항해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어쩌면 선장보다 항해사 기관장 갑판장 등 저마다 소임을 맡은 이의 능력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지난 불행으로 감옥에 들어간 많은 이의 행태를 보면 더욱 절감한다. 수갑은 비켜 갔지만 경제 외교 안보 어느 한구석이라 국민이 희망을 보았더라면 좌절과 분노는 덜했을 것이고, 사태가 이 지경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지도자를 자임하고 나선 사람과 함께 그 주변을 꼼꼼히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사드 논란이 불거지자 느닷없이 중국으로 달려간 초선 국회의원들이 있었다. 저런 얼치기, 천둥벌거숭이들이 의정(議政)이라니! 혀를 찼다. 사드 배치가 현실로 다가오자 또 우르르 몰려간 중진들이 있었다. 친한 중국 당 간부에게 생각을 물었더니 그저 웃었다. 결과는 비굴한 모습과 국론분열로 국가 간이라 할 수 없는 치욕적 수모를 당하고 있다. 눈을 부릅뜨면 때리는 놈도 움찔하거늘, 하물며 억지야….

세계가 놀란 김정남 피살, 점점 강화되는 핵과 미사일 위협에도 북한 편들기를 멈추지 못하는 안보 관련 전직 장관들도 있다. 수준 낮은 막말도 나라라는 배 위에서는 금기이거늘, 항해와 기관에 치명적 위험을 끼칠 싹이 참모라는 이름으로 주위에 얼씬거린다면 참으로 아찔한 일이다.

정치는 세(勢)라니 그쪽에 발 담그지 않은 처지에서 굳이 목소리 높일 일은 못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해악과 반역의 싹을 어정쩡하게 지켜보는 자세에는 희망을 기대하지 못하겠다.

'아니 되옵니다!'에 '배신'으로 대응하다 한 정권이 거덜 났다. 간언과 반역을 구분하지 못하는, 소설 '삼국지' 판 의리에 젖은 무능이 빚은 결과이다. 그런 무능에 고개 처박고 받아쓰기로 부추긴 무능은 더한, 반역이다. 간언에 귀 기울이고 가슴 열 줄 아는 그릇이 유능이고, 거기에는 단호한 결기도 한 줄기 있다. 그 결기로 먼저 반역의 싹부터 자르지 못한다면 세 또한 허상일 것이고 다른 분노의 싹을 잉태하는 일이다.

한때 '차라리 무능이 낫지' 너그러운 척했다. 큰 해는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나태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흙수저의 분노를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비라면 최소한 목숨을 걸지는 못해도 능력 있는 바른 벗이라도 찾아야 했다.

무능하니 운도 따라주지 않아 사방의 격랑이 거세다. 어차피 작은 배로 버텨낼 상황이 아니다. 큰 배를 앞세워 파도의 기세를 꺾어 작은 파도로 맞아야 침몰하지 않는다. 허상의 아우라가 기승을 부리는 정치에 이미 한 번 속아보지 않았는가. 요지경에 빠지지 않으려면 그 주변을 살펴야 한다. 청춘아, 너희도 기어이는 아비가 될 터이니 분노로 눈멀어 허상에 속지 말지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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