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실의에 빠져 있던 서애 류성룡에게 충무공 이순신이 글귀를 적어 보냈다. '재조산하(再造山河)'. '나라를 다시 만들다'는 의미이다. 폐허가 된 나라를 다시 만들지 않으면 죽을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던 이순신 장군의 마음. 새롭게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이 '재조산하'라는 사자성어를 강조하며 부패를 청산하고 나라를 깨끗한 반석 위에 다시 올려놓겠다는 다짐을 바로 했다. 이번 19대 대선은 부정부패와 국정 농단의 중심에 승마가 있어 마음이 못내 불편했던 나에게도 썩은 부위를 도려내고 승마계의 역사를 새로 그리고 바로 쓸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오늘은 '말'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승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말이 아닌 사람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여태껏 우리 승마인은 '승마'를 사람의 문제로 결부시키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항상 '말'을 우선시 여겨 왔고 항상 공정한 상황에서 공정한 경기를 임하려고 하는 '운동선수'로서 살기를 지향해왔다. 주변의 표현할 수 없는 묘한 사람과 사람 간의 스트레스, 마필 거래에 개입된 몇몇 사람의 '거래'들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때로는 유혹을 당하면서도 우리 승마인은 오로지 우리들의 시합만 꿋꿋하게 임해왔다.

승마는 절대로 '말' 위에 타고 있기만 하면 만사형통 되는 시합이 아니다. 내가 가장 경계하는 가르침도 '좋은 말 타면 다 된다'라는 것이다. 초보 운전자가 성능이 뛰어난 F1 레이싱카를 타면 우승할 수 있는가?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실력은 턱없이 부족하면서 좋은 말만 타면 다 된다는 환상은 승마인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착각이고, 또 가장 조심해야 할 망상이다. 좋은 말일수록 소화해내기는 더더욱 어렵고, 더욱더 많은 연구를 해야 한다. 내가 유럽에서 올림픽 퀄리파이를 뛰었던 말은 항상 사나워 탈 때마다 긴장되고 무서웠으며,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말처럼 내 생애 그렇게 공주처럼 대해 본 말도 없다.

그리하여 승마의 불모지 '한국'에서 우리 승마인은 유럽 승마인의 비웃음을 이겨내고 내로라하는 선수들을 제치고 라이더스 투어, 선샤인 투어, 올림픽 퀄리파이 등 손꼽히는 국제 시합에서 경이로운 성적을 내어 왔다. 아테네 올림픽에도 태극기를 달고 참가했으며,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으며, 세계 선수권 대회라는 높은 문턱을 뚫었고, 리우 올림픽에도 마장마술 종목 시상식에서 국기 게양대에 태극기를 올렸다. 우리 승마인이 그동안의 모멸감과 노고, 역경을 한순간에 씻어낼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링 안에서, 그리고 말 위에서 흘린 땀이었다.

그렇게 피와 땀을 흘려 고생해온 덕에 이제는 유럽에서도 한국의 승마를 무시할 수 없는 단계까지 올려놓았다. 말산업 육성법과 각종 캠페인 그리고 내가 지금 소속되어 있는 회사에서도 그동안 국내에서 전무후무한 국제경기를 유치해 가며 승마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있었는데 저번 국정 농단의 사건에 승마가 오르내리며 우리의 노력은 한순간에 국민 앞에 물거품이 되었다. 몇몇 사람의 사적인 욕심과 이기심으로 우리 승마인 모두가 제자이자 후배가 될 다음 세대의 승마인에게 부담을 주고 과오를 남긴 셈이 되었다.

이제는 승마도 '재조산하'의 시기가 왔다. 새로운 대통령, 새로운 정권이 이 나라에 새 바람을 불어오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나도 승마에 새 바람이 불기를 염원한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우리 승마인은 다시 초심을 다잡고 피와 땀으로 만들어 놓은 한국의 승마를 더욱더 발전시켜 나가야겠다.

대명소노펠리체 승마단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