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BIFF)를 너무나 사랑해 'BIFF 그 자체'로 불리던 그가 유명을 달리했다. 김지석 BIFF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 프로그래머가 프랑스 칸에서 지난 18일 오후(현지시간)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고인은 칸영화제에 참석하려고 프랑스로 출장을 갔으며, 몸에 이상을 느껴 진료를 받은 뒤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부산은 영화와 결혼한 토박이 영화인, BIFF를 아시아 최고 영화제로 키운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을 어이없이 잃었다.

1996년 BIFF 출범에 기여한 고인은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BIFF 김동호 현 이사장,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 전양준 전 부집행위원장과 오석근 박광수 영화감독 등과 창설 멤버였던 고인은 아시아 영화에 주력했다. 아시아 영화와 동반 성장하는 BIFF가 목표였고 아시아 영화 전문 프로그래머를 고집했다. "고인은 최고의 프로그래머였다. 세계 영화계는 귀중한 사람을 잃었다"는 칸영화제 티에리 프리모 집행위원장의 애도는 영화인이나 시민의 마음과 다를 바 없다.

고인은 2015년 BIFF 20주년을 맞아 이뤄진 미국 영화 전문지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내 인생을 들여다보면 BIFF가 겪어온 격변의 세월을 볼 수 있다"고 했다. BIFF의 눈부신 성장 이면에 독립성과 자율성에 위협을 가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2014년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을 상영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으면서 불거진 일련의 사태다. 이 와중에 고인은 과로와 심적 부담이 겹치며 건강이 나빠진 것으로 전해져 안타까움을 더한다.

오는 10월 열릴 제22회 BIFF 앞에 두 가지 과제가 놓였다. 먼저 아시아 영화계와 폭넓고 끈끈한 네트워크를 형성했던 고인의 공백을 메우는 일이다. 또 하나는 BIFF가 '다이빙벨' 사태로 빚어진 정치적 논란을 극복하고 제자리를 찾는 일이다. 김동호 이사장, 강수연 집행위원장, 프로그래머를 비롯한 모든 BIFF 관계자는 물론이고 부산시의 어깨가 그만큼 무겁다. 고인을 기리는 사업을 통해 BIFF가 아시아 영화와 영원히 함께하는 길을 찾아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