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초순 황금연휴 기간, 사교육 열병으로 얼룩진 우리나라 교육계의 현실을 신랄하게 꼬집은 조정래 작가의 소설 '풀꽃도 꽃이다'를 읽었다. 다른 이들은 모처럼 찾아온 긴 연휴를 맞아 여행계획을 짜며 들떠 있었건만, 나에게는 사치였다. 입시학원과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중학교 때만 해도 연휴나 방학이 되면 여행을 가자고 조르던 아이들도 이제는 아예 '여행'이라는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대학입시를 앞둔 고등학생은 물론이고 중학생에게도 휴일은 없어진 지 오래된 듯싶다.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농담처럼 내뱉는 '아빠의 무관심'이 진정한 덕목처럼 와 닿는 현실 앞에서, 나 또한 긴 연휴를 조용하게 보낼 방법을 찾다가 서점을 들러 몇 권의 책을 샀다.

대학 시절 대하역사소설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작가 조정래를 처음 만났다. 그때 그의 생동감 있는 문체와 서사시 같은 줄거리에 감명을 받은 때문인지 30여 년이 지나 우연히 서점에서 그의 신간을 마주한 순간, 어떤 주제를 다룬 건지도 모른 채 자석에 이끌리듯 소설을 집어 들었다. 집으로 와서 '세 번째 소망'이라고 시작하는 작가의 말을 읽고서야 그의 집필 의도를 가늠할 수 있었다. 작가는 교육문제에 대한 오랜 연구와 성찰을 통해 작심한 듯, 학교 폭력과 왕따, 성적 위주의 교육시스템과 입시 위주의 사교육 열풍, 공교육의 붕괴, 주입식 교육의 폐해, 아이들의 가출과 자살, 외국어 열풍이 불러온 문화식민지 현상 등 우리 교육이 당면한 문제점들을 낱낱이 파헤쳤다.

특히 소설 속에 인용된 11살 이순영 어린이의 '학교 가기 싫은 날'이란 시는 어린 나이부터 학원 생활에 찌든 어린 학생들의 고된 일상이 아프게 와 닿았다. 주인공 '강교민' 선생의 이름이 암시하는 '강한 교육 민주화', 자세히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예쁘고 각자의 빛깔을 가진 '풀꽃'처럼, 우리 아이들에게도 성적이라는 획일적 기준이 아니라 다양한 소질을 계발하여 그 꿈을 펼칠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게 작가가 독자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였다.

사교육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학교 교육이 채워주지 못하거나 예체능 특기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작가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나라의 사교육 시장은 심각하게 왜곡, 과열되어 있다. 당연히 학교에서 배워야 할 '국영수과' 과목이 '선행학습' 등의 미명 아래에 사교육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게 현실이다. 심지어 학생 스스로 작성하여야 할 '자기소개서'를 대신 써주는 학원도 있다고 한다. 자연히 빈부 격차에 따라 사교육 서비스의 양과 질에서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개천에서 용이 안 난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닐 게다. 과외비를 벌기 위해 엄마들까지 식당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실정이다. 그 결과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가족공동체의 유대감이 약해질 수밖에 없고, 가출이나 이혼 등 사회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심지어 사교육비 걱정 때문에 출산마저 주저한다고 하니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작가는 말한다. "이제 사교육은 '졸업장은 학교에서, 공부는 학원에서' 할 정도로 그 위세가 난공불락이 되었다. 그 폐해의 심각성은 너무 심해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되는 극한에까지 와 있다. 연간 40조를 넘는 사교육 시장의 병폐는 누구의 책임일까. 그건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정부의 책임이고, 교육계의 책임이고, 사회의 책임이고, 학부모의 책임이다. 이제 이들 모두가 똑같이 공동 책임을 지고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으면 우리의 내일은 점점 나락의 길로 치달아갈 수밖에 없다."

국제신문 지난 3월 15일 자에 교육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결과를 토대로 부산의 사교육비가 학생 수 감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증가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 원인은 학원비와 사교육 참여율 상승에 기인한 것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휴일도 학원 뺑뺑이… 아이들을 쉬게 하자'는 제목으로,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지난 26일 총회를 열고 유치원·초등학생 대상 학원 운영을 제한하는 '학원 휴일휴무제' 입법화를 국회에 건의했다는 27일 자 1면 기사를 접하니 반가웠다. 교육시민단체는 초중고생에 전면적으로 적용하도록 촉구하고 있다고 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 중에도 일부 내용이 들어 있다고 한다. 새 정부에서는 학생들에게 휴일이라도 돌려주는 따뜻한 교육정책을 펼쳐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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